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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4일 인천 주안역 앞 광장에서 가진 민주당의 ‘이명박 정부 규탄대회’에서 손학규 대표 등 지도부와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수은주가 영하를 찍어도 두툼한 점퍼를 껴입은 채 난로의 온기에 기대어 잠을 청하는 불편한 잠자리, 예산안 처리를 막지 못한 죄인이 호의호식하면 안 된다며 도시락으로 끼니는 때우는 식사, 위아래로 서너 겹씩 껴입고도 어느 지지자가 줬다는 자주색 목도리를 두른 복장, “그나마 아침마다 농성장 근처 대중목욕탕에서 굳은 몸을 풀고 나올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손 대표의 요즘 일상은 야당 당 대표로서 보여줄 수 있는 투쟁성을 넘어 종교인의 ‘수도’에 가깝다.
이어지는 ‘풍찬노숙’에 주변 측근들이 먼저 지쳐 나자빠질 지경이고, 손 대표의 건강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런 모습을 놓고 “손 대표가 고생을 하긴 하는데, 그만큼 성과가 나올지 의문”이라는 눈초리와, “이번에는 확실하게 달라진 야성의 손학규가 재탄생한 것만 놓고도 성과”라는 관측이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손 대표가 ‘승부수’를 던졌다는 데는 대체적인 의견이 일치한다. 한나라당 전력, 중도우파적인 정체성, 대여투쟁성 등 그를 에워싼 갖가지 논란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장정에 나섰다는 얘기다.
손 대표도 이런 평가를 부인하진 않는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시민들이 날치기 예산 무효청원에 서명하면서 ‘예산안 진짜 막을 수 있냐’고 묻더라”면서 “서명운동 후에 뭘 할지 결정 못했지만, 당대표로서 민주당의 결연한 자세와 지향점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서명운동을 시작만 해놓고 흐지부지 끝나는 것 아니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지만, 결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번 장외투쟁에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각오가 신념의 수준까지 굳어져 있는 것 같다. ‘정치인 손학규’의 행적을 놓고 보면 이번 장외투쟁이 최대 분수령이 되는 셈이다.
민주당의 전체 분위기도 손 대표의 도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집회마다 쏟아지는 언사들이 총선이나 대선을 방불할 정도의 수위에 올라 있다. 손 대표는 지난 17일 전주 집회에서 노골적으로 지역정서를 자극했다.
그는 “KTX를 타고 영남 쪽에 가려면 특실이 꽉 차 있는데, 이쪽에 오는 KTX 특실은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비행기도 자주 없다”면서 “언제나 호남 지역, 국민을 먹여 살린 곡창지대고 민주주의 일으켜 세운 민주주의 본산인 이 지역이 잘 살고 번영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곳에 오려고 했던 LH 본사가 영남으로 간다더라”며 “가장 어려운 지역 중 하나인 전북에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영남에 모는 것은 이 정부가 지역차별을 계속 더 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쏴붙였다.
손 대표는 최근 군인사의 영남 편중을 지적하며 “이 정부에 들어 있었던 것은 차별과 특권이고 짓밟은 것은 균형발전이고 서민복지”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이명박 독재를 쳐부수고 정권교체를 이룩할 가장 큰 힘을 바로 전북에서 만들어줄 것을 간곡히 호소하고 그렇게 믿는다”고 마무리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도 “오늘 민주당의 지도자 손학규 대표가 연설하는데 여러분의 열기를 보니 저는 확실히 2012년 총선, 대선에서 민주당이 이겼다고 생각한다”고 거들고 나섰다. 그는 이어 “28명의 호남 국회의원이 ‘형님’보다 못하다는 것을 죄송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다음 대통령은 형님 없는 사람으로 선출하자. 그런데 우리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될 사람들이 전부 형님이 있지만 우리 민주당의 형님들은 이명박 대통령 형님과 다르다”고 비꼬아 청중을 뒤흔들었다.
박 원내대표는 “잔인무도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어린이들, 초등학생, 대학생, 여성, 노인 예산만 전부 깎아버리고 형님, 영부인, 국회의장만 예산을 먹었다”는 발언도 했다. 정동영, 정세균, 박주선 최고위원도 모두 ‘이명박 독재정권 타도’ ‘정권교체’를 부르짖었다. 이미 선거전에 접어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대중 유세와 청중의 호응이 이어졌다.
민주당은 장외투쟁의 명분으로 ‘불법적인’ 예산안과 단독처리 법안들의 철회를 내걸고 있다. 그 요구조건을 한나라당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기대하는 당직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면서도 현재의 정국경색을 풀 수 있는 현실적인 조건들이 거론되고 있다. 추경예산 등의 방법을 통한 복지예산의 확충과 직권상정처리에 대한 정치적인 유감표명과 재발방지 선언 등이 당직자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 장외투쟁이 막바지에 이를수록 실체 있는 성과를 걱정해야 하는 사정을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핵심 당직자들은 이번 장외투쟁의 ‘출구’가 여야 관계의 정상화보다는 내부적인 야성(野性) 회복에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한 당직자는 “집권 10년의 관성 때문에 지난 2년 반 동안의 정세균 체제에서 완전히 야당체질로 전환되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로 투쟁다운 투쟁을 통해 일체감을 높이고, 민주당이 야당다운 야당으로 거듭난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당의 체질이 야당성을 갖게 되면 지도부 내 경쟁과 계파 간 갈등관계도 많이 바뀌게 될 것이다. 이미 손학규, 정동영, 정세균의 사이에서도 그런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민주당으로서도, 손 대표에게도 이번 장외투쟁은 국민을 상대로 한 승부수이면서, 당의 체질 바꾸기를 위한 승부수인 것이다.
박공헌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