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삼성이 계열사를 통해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사진은 이건희 삼성 회장. | ||
삼성그룹은 주요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해 2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발표,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중간고리인 삼성물산에 대한 삼성SDI의 7백억원어치 주식매입 발표 등 외부의 적대적인 인수합병에 대한 방어 준비에 들어갔다. 그 한편으로 정기국회가 열리고 있는 국회에서 삼성의 소유지배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놓고 관련 법안이 상정된 정무위 회의장에서 야당이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재벌계열 금융사가 소유하고 있는 계열사 지분의 의결권 허용폭을 놓고 재계의 주장을 적극 수용한 야당과 소유지배구조 투명화를 외치고 있는 여당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는 것.
일단 증권가에선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과 삼성SDI의 삼성물산 주식 매집을 삼성그룹의 대주주 경영권 방어와 연결시켜 보고 있다.
물론 삼성에선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은 주주들에 대한 이익 소각용으로, 삼성SDI의 삼성물산 주식 매입은 ‘투자’라고 공식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삼성의 취약한 대주주 지분과 공정거래법의 재벌금융계열사 의결권 허용 범위 축소로 인한 경영권 방어 목적이라고 보고 있는 것. 그만큼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에버랜드를 기점으로, 삼성물산과 삼성생명, 삼성전자가 중간고리 역할을 한다. 이중 이건희 회장 등 오너의 직접적인 지분은 거의 대부분 계열사에서 한자릿수대에 불과하다. 그 나머지를 계열사들이 커버하고 있는 것.
삼성SDI는 지난 9월20일 이사회를 열고 삼성물산 주식 7백억원어치를 사들이기로 했다. 이를 9월17일 종가 1만5천8백원을 적용하면 2.85% 정도 된다.
이번엔 삼성SDI가 출자를 한 삼성물산의 경우 삼성전자(3.48%), 삼성테크윈(4.28%), 제일기획(12.64%), 삼성정밀화학(5.59%) 등 상장 계열사와 삼성의 핵인 에버랜드(1.48%), 삼성SDS(17.96%), 삼성카드(3.12%) 등에 지분출자하고 있다.
반면 이렇게 중요한 삼성그룹의 연결고리인 삼성물산에 대해 삼성그룹의 지분은 우선주를 다 더해도 12.88%에 불과하다. 이중 이건희 회장의 지분은 고작 1.38%, 그에 반해 외국인 지분은 44.85%에 달한다.
때문에 증권가에선 삼성이 외국계 금융자본의 비판적인 시각(이번 삼성물산에 대한 출자는 삼성SDI의 주주들에게 주당 1천4백54원의 부담을 주는 것-UBS증권)에도 삼성SDI의 삼성물산 출자를 강행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고 있다. 취약한 지배구조의 강화가 바로 그것인 것.
게다가 이미 적대적인 기업인수 합병이 중소규모 기업이 아닌 재벌기업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지난 봄 SK(주)에 대한 소버린의 공세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이번 삼성SDI의 지분 매입이 끝나게 되면 삼성의 우호지분은 15%로 뛰게 된다. 하지만 올해 들어 삼성물산의 지분 5% 이상을 보유해 주요주주로 부상한 외국계 투자기관 지분율만 해도 10.8%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의 수익성 제고를 위해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라”는 의안을 상정할 경우 삼성의 근본적인 지배구조가 흔들리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때문에 삼성그룹으로선 어떻게든 삼성물산에 대한 의결권 주식을 늘려야 하고, 그래서 계열사 주식매집에 들어간 것.
때문에 증권가에선 삼성에서 계열사를 동원해 추가출자를 할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삼성물산의 주가와 삼성전자의 주가는 ‘경영권 방어’라는 재료로 당분간 더 오른다는 얘기다.
▲ 삼성 본관과 태평로 빌딩. | ||
일각에선 이런 외국인 투자자들의 행태와 삼성그룹의 방어를 외국계 자본의 ‘성동격서’식의 투자이익 환수로 보기도 한다.
삼성그룹의 기둥인 삼성전자에서 최근 10조원대가 넘는 막대한 영업이익을 비축하고 있자, 이를 끌어내기 위해 ‘적대적 인수합병설’을 띄우며 관련 계열사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인수합병설에 시달리는 삼성 계열사에 대해 삼성그룹에서 주식매집 결정이 내려지면 삼성전자 등 돈이 많은 삼성 계열사들이 ‘오너의 지분 방어용’이라는 따가운 시선에도 주식 매집에 나서고 이 과정에서 주가가 올라 투자차익을 환수해 간다는 시나리오다.
이 설명이 사실이든 아니든 오너그룹의 지나치게 낮은 지분율의 허점을 외국인들이 정확하게 파고든 것만은 사실인 셈이다.
이와 관련, 주목할 만한 것은 국회의 공정거래법 개정 움직임.
정기국회가 열리고 있는 국회 정무위에선 회의장을 야당 국회의원이 점거하는 파란이 일기도 했다. 정부와 여당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자 야당이 육탄저지한 것.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출자총액 제한’, ‘공정거래위 계좌추적권’과 ‘재벌 금융계열사의 다른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제한’이지만 일각에선 삼성을 겨냥한 법 개정이 아니냐는 논란을 빚고 있기도 하다.
삼성그룹 문제는 세 번째인 재벌금융계열사의 다른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제한에 걸려있다.
여당에선 이번 개정안에서 현행 30%까지 허용하는 재벌금융사의 의결권을 2008년까지 15%로 축소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전경련 등 기업쪽 입장은 ‘외국 금융기관은 의결권 행사를 제약하지 않으면서 대기업 금융계열사 의결권만 제한하는 것은 형평성에 위배되고 외국 자본의 인수합병을 부추긴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 법안 개정으로 직격탄을 맞는 쪽은 삼성그룹이다. 삼성생명을 통한 그룹지배구조가 위협을 받는 것.
하지만 여당에서 최근 ‘애초의 15% 범위 내 축소에서 20%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재계의 반발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는 얘기다.
만약 20%안이 적용되면 삼성전자 호텔신라 제일기획 등은 의결권 제한대상에서 제외되고 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도 제한폭이 크게 줄어들어 삼성그룹으로선 지배구조 문제에서 당장은 한숨 돌리게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으로선 경영권 방어를 위해 전면전에 나서야 할 만큼 그룹 안팎의 환경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는 얘기다.
외국계 자본, 국회와 증권가, 시민단체, 일반여론의 움직임에 대해 삼성이 어떻게 반응하며 이 문제를 풀지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