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생 예산이 대폭 삭감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자 한나라당과 재정부가 서로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윤증현 재정부 장관.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한나라당은 지난 8일 예산안을 단독 처리했을 때만 해도 자화자찬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9일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과 춘천-속초 고속화 철도사업 예산 전액 삭감, 서민 복지 예산 삭감이 논쟁의 중심으로 올라서면 여론의 역풍을 맞게 됐다. 당·정·청이 12일 저녁 긴급 회동을 갖고 고홍길 정책위 의장이 사퇴하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형님’(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 예산은 늘어나고 서민 예산은 깎였다는 비난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태가 이렇게 흐르자 갑자기 여당의 포화가 재정부로 옮겨졌다. 당에서 템플스테이나 서민 복지 예산을 챙겼는데 예결위 과정에서 재정부가 정부 입장을 강조하며 삭감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전개에 재정부의 분위기는 격분 상태로 흘렀다. 한나라당에서는 13일 윤 장관이 안 대표를 만나 사과 의사를 밝힐 것이라는 이야기를 흘렸지만 재정부에서는 유감은 몰라도 사과는 절대 없을 것이라며 반발했다. 실제 윤 장관은 안 대표가 험한 소리를 쏟아냈음에도 “정부도 재정원칙이 있는데, 존중해 달라”고 말하며 유감이라는 단어조차도 명시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에는 재정부가 예산안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복지예산 관련 자료를 내고 예정에 없던 브리핑까지 했다. 재정부는 특히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증액 의결한 사업이라고 모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에서 반영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상임위에서 의원이나 부처가 증액을 하더라도 총괄하는 예결특위에서 전체 예산 등을 맞춰본 뒤 삭감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예산 편성권은 국회가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재정부 관계자는 “여당이 당 차원에서 이 예산은 꼭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면 재정부에서 그것을 반대할 수 있겠느냐. 각 부처가 요구한 예산이 재정부에서 깎이는 일이나, 상임위에서 늘어난 예산이 예결위에서 깎이는 일은 다반사”라면서 “이번 사태는 여당과 재정부 간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재정부 관계자는 “공무원을 정말 영혼 없는 이들로 만들려는 행위다. 예산안 통과 때까지 한마디 안 하고 있다가 잘못되니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분개했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재정부 간 이전투구가 결국 책임 떠넘기기에 불과하다는 자성론도 나오고 있다. 헌법 57조에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 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다. 국회가 정부 제출 예산안에서 삭감은 임의대로 할 수 있지만 증액하는 것은 재정부 장관의 동의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증액에서 드러났듯이 재정부 장관의 동의가 요식행위이기는 하지만 국민들 눈에는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재정부도 자유로울 수는 없는 셈이다.
또 양육수당이나 방학 중 급식아동 지원사업 같은 경우 서민 복지와 관련한 민감한 사안이었음에도 예산을 정하면서 사전에 국민들을 상대로 설명을 제대로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내년 예산을 ‘서민 희망 예산’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을 하고서도 논란이 예상되는 사안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점은 미숙했다는 내부 비판도 있다.
재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확정된 예산안을 손대기 어려운 만큼 문제가 되는 예산은 예비비나 기금을 동원해 처리하겠다는 말이 나왔을 때부터 이미 재정부도 이번 사태의 공범이 된 셈이다. 예비비나 기금으로 처리하겠다면서 서민 예산은 삭감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 모순이다. 버스 지나간 뒤 손 흔드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