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적인 연말 인사 개편을 단행한 삼성그룹 주변에서 사업구조 개편설이 흘러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이재용-이부진 남매의 사장 승진을 필두로 젊은 인사들이 사장단과 고위 임원진에 대거 포진된 데다 ‘기획통’인 김순택 부회장이 새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이끌게 되면서 대대적인 조직 개편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몇몇 유사 계열사의 통합 논의가 고개를 들고 있는데 여기에 이재용-이부진-이서현 오너 일가 삼남매의 향후 입지 관련 전망이 맞물리면서 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우선 IT서비스 업체인 삼성SDS와 홈 네트워크 전문 기업 서울통신기술의 합병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비상장사인 두 회사는 업계의 합병 관측을 발판 삼아 지난 11월 장외시장에서 신고가를 경신하기도 했다. 최근 사장단 인사를 통해 지난 2003년부터 7년간 삼성SDS를 이끌었던 김인 사장이 삼성 라이온즈로 옮기면서 고순동 신임 사장 체제가 들어서자 조직 체계에 변화가 있을 것이란 전망도 대두되고 있다.
삼성SDS와 서울통신기술에 대한 합병 관측은 계열 IT업체 통합에 따른 시너지 창출 기대감 외에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두 회사의 대주주란 점 때문에 더 큰 주목을 받아왔다. 지난 11월 공시된 분기보고서 기준으로 이재용 사장은 삼성SDS 지분 8.81%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21.67%) 삼성물산(18.29%)에 이은 3대주주이며 개인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서울통신기술은 이 사장이 지분 46.03%를 보유한 개인회사나 다름없는 곳이다. 그밖에 삼성전자도 이 회사 지분 35.73%를 갖고 있다.
만약 삼성SDS와 서울통신기술이 합병해 사업 시너지 효과를 낼 경우 최대 수혜자가 이재용 사장이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두 회사가 합병 이후 상장 수순을 밟는다면 이 과정에서 거액의 상장이익을 얻게 될 이 사장이 삼성전자 지분 매입을 통한 ‘책임경영’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는 ‘이재용→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 순환출자구조를 통한 그룹 장악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릴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사장 여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도 삼성SDS 지분 4.18%씩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삼성SDS의 서울통신기술 합병과 상장을 통해 이부진-이서현 자매가 누릴 이익이 향후 이들의 분가 자금이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삼성그룹 내 건설부문 통합 관측 역시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부터 업무 연계가 깊었던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삼성에버랜드를 중심으로, 삼성중공업 건설부문, 삼성엔지니어링 등이 통합될 가능성이 점쳐지곤 한다. 이 경우 주택 건설과 토목은 물론 플랜트 사업까지 아우르는 초대형 건설사 설립이 가능해진다. 지난 4월 삼성물산 건설부문에 대한 강도 높은 경영진단에 이어 지난 10월엔 삼성중공업 건설부문 경영진단이 이뤄지며 그룹 내 건설업 구조 변경 관측을 낳기도 했다.
건설부문 통합 시나리오는 삼성에버랜드와 삼성물산 경영에 깊이 관여해온 이부진 사장 때문에 더욱 주목받는다. 이부진 사장이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을 겸하게 된 지난해부터 두 회사의 업무 연계가 잦아졌다. 이부진 사장이 삼성물산에 곧잘 모습을 드러내면서 갖은 추측이 제기되자 삼성 측은 “삼성에버랜드의 일부 사업이 건설업과 연계되면서 (이부진 사장과) 삼성물산과의 업무 공조가 이뤄진 것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해왔다.
그런데 최근 사장단 인사를 통해 이부진 사장이 아예 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직을 꿰차면서 삼성물산 경영에 대한 이 사장의 입김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 사장이 삼성물산과 삼성에버랜드를 아우르는 통합 시나리오의 주체가 될 가능성도 거론되기 시작했다. 향후 이재용 사장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를 위한 계열분리 과정에서 이부진 사장이 건설업을 자기 몫으로 챙기려 할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일각에선 그룹 내 건설업 조정 작업이 이재용-이부진 남매의 신경전을 부를 것이란 관측도 고개를 든다.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삼성에버랜드, 삼성중공업 건설부문, 삼성엔지니어링을 아우르는 합병이 이뤄질 경우 그룹 주력인 전자와 금융에 필적할 소그룹군이 될 것이란 평가다. 계열사 합병으로 덩치가 커질 대로 커진 건설업을 이부진 사장이 자기 살림으로 온전히 챙길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다.
삼성물산은 고 이병철 회장의 창업 기반이 된 곳이다. 삼성에버랜드는 이재용 사장이 지분 25.10%를 보유해 이를 토대로 그룹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이재용 사장의 주 무대가 된 삼성전자가 지분 17.61%를 보유, 최대주주로 있는 곳이다. 이런 회사들이 합쳐질 경우 그 사업 주체 자리가 이부진 사장보다는 ‘황태자’ 이재용 사장에게 돌아갈 것이란 관측에도 귀가 기울여지는 것이다.
이부진 사장이 삼성물산의 건설부문이 아닌 상사부문 고문직을 맡은 점이 변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지금까지 이부진 사장은 삼성물산의 상사부문보다는 건설부문 경영에 더 깊이 개입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학수 전 전략기획실장을 삼성물산 건설부문 고문으로 보낸 이건희 회장이 이부진 사장 활동 영역을 ‘상사부문 고문’ 직함에 묶어둘지에 대한 관심 또한 커지고 있다.
건설 계열사 사업조정 과정에 삼성엔지니어링이 포함될 경우 이 회장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의 영향력 확대 가능성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이서현 부사장의 제일모직이 삼성엔지니어링 지분 13.10%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기 때문이다. 이서현 부사장은 지난해 말 전무로 승진하면서 광고계열사 제일기획의 기획담당까지 겸하게 된 지 1년 만에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하면서 삼성가 3세 경영의 한 축으로 당당히 주목받고 있다.
이부진-이서현 자매는 건설업 통합 시나리오의 한 축인 삼성에버랜드 지분 8.37%씩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삼성에버랜드를 중심으로 한 건설업 조정 과정에서 이서현 부사장이 언니만큼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는 셈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