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한 장면. |
직장생활이 항상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방향으로만 흘러가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상사의 불호령은 언제 어디에서 터질지 예측 불가능하다. 상사의 취향에 따라, 때로 기분에 따라 이리저리 불려가는 게 말단 직원의 비애다. 출근하면 일단 ‘깨지고 본다’는 직장인도 있다. 야단을 맞는 이유는 다양하다. 실상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입사 전까지 알고 있던 상식이 통하지 않을 때도 많다. 트집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 이유들, 어이없는 지시 때문에 야단을 맞은 직장인들의 경험담과 속내를 들어봤다.
상사들 중에는 유난히 자기 기준에 충실한 사람들이 있다. 그 잣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날카로운 화살이 부하 직원에게 날아온다. 기계 관련 회사에 근무하는 O 씨(29)는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부장 앞으로 가 우렁차게 인사를 한다. 눈도장을 찍으면 그제야 출근이 ‘인정’된다.
“아무리 일찍 출근해도 부장의 기억회로에 제가 없으면 안 온 겁니다. 보통 8시 30분쯤에 사무실에 도착하는데요, 한번은 들어가면서 인사를 하고 부장의 대답까지 들었어요. 그런데 그날 9시쯤 한참 업무 계획을 짜고 있는데 시계를 본 부장이 갑자기 저를 책상 앞으로 불러서 야단을 치더군요. 언제 왔느냐면서, 왜 들어올 때 인기척을 안 하느냐고 하는 겁니다. 분명히 대답까지 들었는데 말이죠. 그러면서 일찍 다니라고 세워놓고 면박을 주는 겁니다. 그동안 지각 한 번 한 적 없거든요. 속으로 정말 억울했지만 어쩌겠습니까. 그 다음부터는 일단 부장한테 확인을 받아야 제 자리로 갑니다.”
유통회사에 근무하는 N 씨(28)도 직속 상사 앞에서는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신입 사원의 흐트러진 모습은 한 치도 용납하지 않는 ‘호랑이’ 상사이기 때문이란다.
“입사해서 나름 군기가 바짝 들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상사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봐요. 정신없이 일을 배울 때 가끔씩 멀리 출장 가는 상사를 따라가기도 했는데요, 처음엔 사무실을 벗어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좀 좋기도 했는데 지금은 가까운 거리의 외근도 같이 나가는 게 꺼려집니다. 긴장의 연속이거든요. 3시간 거리의 협력업체에 갈 때였는데 전날 야근도 하고 피곤한 상태라 저도 모르게 운전석 옆에서 깜빡 졸았어요. 그것 때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한참 서서 야단을 맞았어요. 상사가 운전까지 하는데 옆에서 어떻게 개념 없이 잠을 잘 수가 있냐면서요. 정말 잠깐 졸았을 뿐이거든요.”
N 씨는 외근이나 출장 등 상사와 단 둘이 있게 되는 상황을 되도록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는 “상사와 둘이 있을 때 배울 점도 있겠지만 지금의 상사와는 같이 있다 보면 긴장 때문에 온몸이 쑤신다”고 토로했다. 성격이 까다로운 상사도 직장생활의 복병이다. 물류 회사에 다니는 L 씨(여·28)는 입맛 까다로운 팀장 때문에 골치다.
“팀장은 항상 정해진 원칙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상식에 따라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는 사람이에요. 커피는 무조건 여직원이 타야 하는데, 그것도 1회용 커피 믹스는 안 됩니다. 늘 커피와 설탕, 크림이 2:2:2 비율이어야 하죠. 조금만 맛이 달라도 귀신같이 알아챈다니까요. 언젠가 갑자기 외부에서 손님이 여럿 왔을 때 취향도 제각각이고 시간도 없고 해서 믹스 커피를 사용했거든요. 손님들 가고 한참 혼났어요. 그것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일을 하느냐고 긴 연설을 들었죠.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커피는 항상 정해진 커피 잔, 물은 유리컵에 담아야 합니다. 이것도 어겼다간 바로 호출이죠.”
L 씨가 친구들에게 이런 이유로 혼났다고 이야기하면 다들 어이없다며 혀를 찬다고. 그는 “일을 못해서 야단을 맞으면 모를까 대다수 직장인들이 애용하는 1회용 커피믹스 좀 썼다고 혼나긴 처음”이라며 “이런 말도 안 되는 원칙 때문에 수없이 깨졌다”고 말했다.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H 씨(30)의 상사도 까다롭고 까칠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럽다. 처음에는 자신한테만 일종의 트집을 잡는 줄 알았는데 원래 성격이더라고.
“제가 볼 땐 (상사에게) 약간의 편집증이 있어요. 바닥에 머리카락만 봐도 제대로 치우라고 난리도 아니에요. 물건들은 항상 딱 그 자리에 있어야 하고요. 문서 양식에도 얼마나 까다로운지 모릅니다. 항상 보고서를 올릴 땐 가슴이 조마조마해요. 아, 오늘은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까 속으로 수없이 되뇌죠. 바로 얼마 전에도 오타 하나 때문에 15분 동안 잔소리를 들었어요. 아, 줄맞춤도 제대로 안 되어 있었다고 하더군요. 정말 티도 안 나서 보통 사람은 발견도 못하는 것들입니다. 점 하나 때문에 깨지는 직장인들 얘기 듣고 남 일이거니 했는데 이건 뭐 제 일상이네요.”
입사하기 전에는 도저히 직장에서 할 업무라고 생각지 않던 일들도 야단맞는 ‘거리’가 된다. 황당하지만 업무의 연속이라고 주장하는 상사들 때문이다. 외식업체에서 일하는 Y 씨(여·27)는 길가다 꽃집만 봐도 속이 부글거린다.
“회사에서 화분관리를 제대로 못한다고 엄청 혼났거든요. 이 회사는 들어왔더니 화분이 엄청 많더라고요. 게다가 여직원들은 직급에 관계없이 다 화분관리에 목숨 걸어야 돼요. 화분마다 이름표를 붙여놨더라고요. 이전에 다녔던 회사도 사무실 이전하면서 화분이 엄청 들어왔는데 자꾸 물을 주라고 시켜서 식물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일부러 커피를 붓거나 뜨거운 물을 부어서 시들게 했거든요. 그 다음부터는 안 시켜서 ‘옳거니, 이 회사에서도 그렇게 해야지’ 했는데 제 화분이 시들자마자 이사 방으로 불려가서 한참 혼났어요. 이것도 업무인데 다른 건 제대로 하겠느냐면서요. 더 어이없는 건 죽은 난 대신 새로운 걸 사와서 다시 이름표를 붙이는데 황당 그 자체였어요.”
제조회사에 근무하는 P 씨(31)도 해외 지사에 근무할 때 어이없는 일을 맡았다가 된통 혼난 기억이 있단다.
“현지 공장 관리 업무 때문에 파견을 나갔었는데요, 보안 때문에 사납고 큰 개를 키우더라고요. 그 나라는 모든 개를 등록해야 하기 때문에 거금을 주고 등록해서 애지중지 키우던 개였어요. 근데 단지 개가 저를 좀 따른다는 이유로 제가 ‘개밥’ 담당이었죠. 연휴 때문에 회사를 쉬었는데 깜빡 잊고 밥을 안 준 거예요. 연휴 끝나고 와서 개가 쫄쫄 굶었다고 어찌나 혼났는지…. 그간 주말에도 개밥 주러 회사에 왔었는데 말이죠. 그렇게 깨지고 나니 서럽기도 하고 이러려고 대학 나왔나 별 생각이 다 들고 그랬어요.”
잘나가는 선배 직장인들은 ‘멋지게 혼나는 법’이 있다고 말한다. 잘못한 걸 인정하고 밝히면서 야단치는 사람과 야단은 별개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6시에 혼나도 7시에 상사에게 밥 사달라고 할 수 있는 ‘뒤끝 없음’도 권장한다. 하지만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이유나 순전히 상사의 개인적인 이유로 수없이 깨지면 ‘작렬하는 뒤끝’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