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현상은 친이계 대권 주자 부재론 때문에 더 증폭되고 있다. 친이계는 갈수록 위용을 떨치는 박근혜 전 대표와 맞설 자파 주자의 부상이 여의치 않자 결국 ‘세와 조직’이 막강한 이 장관이 ‘대타’로 나서야 한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굳어지고 있다. 이 장관은 이미 대권주자로서 노출이 많이 된 김 지사나 오 시장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인물이라는 점에서 경쟁력이 더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재오=이명박’의 등식이 성립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현 정권과의 차별화가 쉽지 않다는 큰 약점도 있다. 내년 상반기쯤 여권의 대권 경쟁구도가 본격화될 때 이 장관도 숨겨 논 발톱을 드러낼 것이다. 이재오 특임장관의 비밀 대권행보를 추적해 봤다.
한때 여권에서는 이재오 특임장관이 ‘킹메이커’가 될 것이냐 아니면 본인이 직접 ‘킹’이 되기 위해 나설 것이냐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그가 지난 7월 재·보궐 선거에서 극적으로 생환하기 전만 해도 킹메이커 쪽에 무게가 실렸다. 이명박 대통령 다음 가는 최고의 실세였지만, 역시 원외의 한계 때문에 운신의 폭이 상당히 좁았기 때문이다. 친박계에서 강하게 그의 복귀를 반대하는 것도 장애물이었다.
하지만 재·보궐 선거에 그는 모든 것을 걸었다. 정계복귀와 대권을 염두에 둔 건곤일척이었다. 90도 인사와 ‘낮은 포복’으로 재·보궐 선거에서 극적으로 승리함으로써 이 장관의 대권 꿈은 이미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사건이 잇따라 터지자 새로운 여권 운영 구도로 사실상 이 대통령이 외교안보, 이 장관이 정치를 맡는 ‘이원집정부제’를 운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지금 당·청에는 이재오 장관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가 4선의 현역의원인 데다 청와대 직보 라인을 갖췄고 여당 조직의 전국핏줄을 커버하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에 자연히 그에게 힘이 쏠리고 있다. 현재 여권의 정치는 사실상 그의 손에서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는 이 장관의 능력도 있지만, 이 대통령이 골치 아픈 정치에서 자꾸 떨어져 나가려는 움직임과도 맞물린다. 천안함, 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이 대통령의 관심이 외교안보에 집중될 수밖에 없고, 그동안 음지에서 그를 보좌하던 이 장관이 정치를 본격적으로 전담하면서 현재 여권 권력구도는 이명박-이재오의 이원집정부제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대통령이 이 장관에 의존하는 비중은 점차 커지고 있다. 지난 12·8 예산안 날치기 때 이 장관이 맨몸으로 나서서 야당의 저항을 물리쳤던 게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 대통령의 이런 ‘이재오 편중 현상’은 차기 대권구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이 장관에게 정권 재창출의 특명까지 맡겼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이 장관의 대권 도전을 사실상 용인하고 적극 지지해주겠다는 밀약을 했다는 의혹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이 장관 측의 자가발전 성격이 짙다. 당 내외에 “빨리 내게 줄을 서라”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이 장관 측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최근 이 대통령과 이 장관이 회동을 했는데 이 대통령이 그에게 ‘정권이 끝난 후가 걱정이다. 나는 돈 받은 것도 없어 문제될 게 없는데 형(이상득 의원)은 어떨지 모르겠다. 박근혜가 정권을 잡는다면 형을 그냥 놓아두겠느냐. 문제를 잘 풀려면 (정권) 재창출을 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언급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만의 문제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최근 이 장관이 박근혜 전 대표에 버금가는 대권주자급 광폭행보를 펼치는 배경에는 이 대통령으로부터 ‘마패’ 하나를 받았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이런 이 대통령의 적극 지지 분위기는 이 장관 측을 매우 고무시키고 있다. 이 장관이 이에 대해 ‘대통령이 나에게 고심을 털어놓고 정권재창출 의지를 피력한 것은 그만큼 믿고 2012년 대선에 직접 나서라는 권유’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장관 측이 이를 대통령이 차기 대선에서 자신들을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이해하고 상당히 고무되어 외곽조직 확대에 주력하기로 했다는 전언도 있다. 최근 이 장관이 지역구 내인 서울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조합원과 세입자들의 권리보장을 위한 신주택정책 방향’을 주제로 전문가들과 주민 정책토론회를 가진 것을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당일 열린 박근혜 전 대표의 복지정책 공청회와 대립각을 세우기 위한 정밀한 전략이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 장관이 박 전 대표를 대권 라이벌로 두고 이미 장외에서 본격적인 세 대결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장관의 비밀 대권행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당내 조직 관리와 장외 조직 및 싱크탱크 구축이 그것. 먼저 그는 당내 조직에 강점을 보이고 있다. 이 장관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당시 당을 장악하고 있던 친박계 영토를 ‘이명박 대세론’으로 야금야금 침투한 뒤 막판에 승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을 상기하고 있다. 당시의 조직이 지금도 건재해 있다는 것은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확인된 바 있다. 최근 그가 자신의 측근 임동규 의원을 대의원 수가 가장 많은 최대조직 중앙위원회 수석부위원장에 앉히려다 홍준표 정두언 서병수 최고위원 등의 강한 반발에 좌절된 것도 이 장관의 당 장악 시도를 견제하려는 반발 기류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이 장관의 당 장악 작업은 이미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 그의 최측근들은 주로 특보의 직함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 힘 있는 특보의 경우 전화 한 통으로 의원들 수십 명을 ‘집합’시킬 정도로 위세가 대단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기에 최근 그의 대권도전 의지를 더 확실하게 엿볼 수 있는 상황도 발생했다. 안상수 대표가 ‘보온병’ ‘자연산’ 논란으로 진퇴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빠졌지만, 청와대가 쉽게 지도부 해체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이재오 장관이 대권에 뜻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권주자 당권 겸직 배제 원칙 때문에 이 장관이 당권을 맡을 수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없이 내년 상반기까지 안 대표 체제로 끌고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장외 조직으로 눈을 돌려 보면 이 장관의 대권 터 닦기가 착착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최근 자신의 한 특보를 전국 조직을 총괄하는 ‘당직’에 임명한 뒤 적극적으로 세 확장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장관의 전국조직 밑바탕은 박 전 대표의 ‘박사모’나 이 대통령의 ‘MB연대’에 해당하는 ‘조이세상’이라는 온라인 팬클럽이다. 현재 이 조직은 회원 수 1만 5000여 명을 헤아리고 있는데 조직 확대를 통해 내년 상반기 중 10만 회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장관이 이 조직에 쏟는 애정도 대단하다. 그가 미국에 있을 때 ‘귀국추진’ 등의 활동이 이 조직에 의해 이뤄져왔을 만큼 그에게는 ‘고향’과 같은 중요한 지지기반이다. 최근 그가 조이세상 충북 회원의 밤 행사에 참석해 특강을 한 적도 있을 만큼 정성을 쏟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밖에 오피니언 리더들로 구성된 후원그룹이자 외곽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부국환경포럼’(공동대표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은 이명박 대통령의 ‘안국포럼’에 해당하는 실질적인 베이스캠프로 알려진다. 이는 이 장관의 최측근인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전 대표로 있던 ‘직계조직’인 셈이다. 안국포럼은 지난 2008년 말 발족됐는데 당시 한반도 대운하 추진조직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 뒤 이 장관에게 정책조언을 하던 인사들이 지금까지 적을 둔 채 대권조직의 하나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대전지부 창립식이 열렸는데 700여 명에 이르는 회원들이 대거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이후 계속해서 전국조직 창립식이 예정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장관의 또 다른 사조직인 ‘푸른한국’의 후원아래 하반기 총회가 지난 12월 13일 열리기도 했다. 이 포럼은 내년까지 현재의 규모에서 2배 이상 확대해 전국조직으로 발돋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 장관의 모교인 중앙대 출신의 지지 모임인 ‘LCM’(최소공배수란 뜻의 수학용어)도 주목받고 있다. 송수일 6·3 동지회 사무총장이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이 조직은 대선에서 결정적 역할을 해줄 선거·정책 전문가 위주의 인재영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약사 출신 정치인으로 새천년민주당의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던 김명섭 전 의원이 회장을 맡고 있다. 최근 송년모임도 가진 바 있는데 이종훈 전 중앙대 총장과 유용태 동창회장 등이 참석해 성황을 이룬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이 장관이 직접 참석해 축사로 분위기를 한껏 달궜다고 한다. 이밖에 알려지지 않는 당 내외의 사조직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내년 상반기 중으로 이를 통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장관은 지난 10월 한 기자간담회에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등 4명의 대구경북 출신 전·현직 대통령을 차례로 열거한 다음 “내 이름이 ‘재오(제5)’ 아니냐. 차기는 정해진 것이 없지 않느냐”라는 말로 사실상 대권 꿈을 공언한 바 있다. 이 장관은 정치권에서 ‘맨투맨식 조직 확장의 선수’로 불린다. 그는 지금 ‘2007 대선 후보 경선 승리’를 떠올리며 2012년 대선 후보 경선을 향해 착착 다가서고 있다. 이 장관이 가는 곳마다 외치는 “이명박 정권 성공”은 대권 도박의 필수조건이기도 하다. 국민들이 ‘한몸’과 같은 ‘이명박-이재오’를 잇달아, 또 얼마나 지지해주느냐에 따라 그의 대권 꿈도 색깔을 달리할 전망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