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의 벤처밸리 전경. | ||
지난 99년 벤처붐을 타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벤처기업들. 한때는 전통기업의 자리를 메워줄 대타로 인식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수익모델 부재, 내부 부실 등으로 일부 벤처기업은 경제계의 ‘악의 축’이라는 오명을 덮어쓰기도 했다.
최근 코스닥에 상장된 유명 벤처기업의 전·현직 대표이사가 내부비리로 무더기로 검찰에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져 다시 한번 일부 벤처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리경영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최근 검찰에 적발된 비리 벤처기업은 (주)이스턴테크놀로지와 (주)AMIC, (주)사이어스, (주)삼화기연, (주)코리아링크 등 다섯 곳이다. 이스턴테크와 AMIC, 삼화기연은 반도체 및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회사이고, 삼화기연은 전동기 생산업체, 코리아링크는 통신장비 제조판매회사이다.
이번에 검찰에 구속된 사람들은 이들 회사의 전·현직 대표이사들. 이들의 혐의는 ‘기업 M&A’라는 명목으로 상장기업을 인수한 뒤, 그 회사 자금을 횡령하거나 개인적으로 유용한 것이다.
그러나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중 대부분이 회사를 인수할 때 자기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았다는 사실. 이 같은 사실은 서울지검 금융조사부가 지난 8~9월 사이에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을 대상으로 감시활동을 벌인 끝에 밝혀졌다.
대체 이들이 어떤 수법으로 자기 돈 한 푼 없이 회사를 인수하고, 공금을 빼돌렸는지에 대해 금융조사부 관계자를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검찰 금융조사부 관계자는 “코스닥에 상장된 회사들이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기존의 대주주들은 자신의 지분을 팔아 현금화하려는 성향이 강하고, 기업 사냥꾼들은 이 틈을 타서 회사를 인수하려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이런 사건이 생겼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들이 쓴 수법은 겉보기에는 간단해 보인다.
제 3자의 돈을 빌려 회사를 인수해 경영권을 장악한 뒤, 그 회사의 공금을 빼돌려 제 3자에게 다시 돈을 갚는 형식. 이 과정에서 이들이 빼돌린 회사 돈은 최소 20억원에서 80억원대에 이른다는 것이 검찰 조사 결과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으로 인해 회사의 영업 손실이 수백억원대에 이르거나, 최악의 경우 주가가 10분의 1 이상 하락해 코스닥 등록이 취소되는 회사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이스턴테크와 AMIC, 삼화기연은 대표적인 변칙 M&A 케이스다.
검찰 관계자가 전하는 이스턴테크 황아무개 사장의 수법은 대담하다.
황씨는 지난 8월 전 대표이사로부터 회사 주식 16.2%를 인수해 대주주가 됐다. 그의 주식 인수 자금은 제 3자로부터 빌린 돈. 제 3자는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돈을 황씨에게 꿔줬다.
그러나 황씨는 회사를 인수한 이후 제 3자가 담보 해지를 요구하자 회사 정기예금 24억원을 빼돌렸고, 또 자신의 주식을 담보로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 인수 자금을 갚았다.
이후 황씨의 범행은 더 대담해졌다. 사채업자가 이 주식을 매매해 대주주로서의 지위가 없어졌음에도 여전히 자신이 회사 대표이사인 양 행세를 하며 회사 약속어음 80여억원을 발행하다가 검찰에 덜미가 잡히고 말았다.
AMIC의 경우도 비슷하다.
AMIC 이아무개 대표이사의 범행은 회사 자금담당자가 공시를 하면서 알려졌다. 이씨는 지난 2003년 10월부터 지난 6월까지 회사 주식을 꾸준히 사들여 경영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이씨는 회사를 인수하자마자 곧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회사 자금을 외환은행 김포공항지점에 정기예금 하고, 이를 담보로 같은 금액을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아 회사를 인수할 때 꾼 돈을 차근차근 갚아 나갔다.
결국 이씨는 회사 자금 90여억원을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다른 법인을 인수하는 데까지 사용했다. 특히 이씨는 횡령사실을 숨기기 위해 은행 지점장과 짜고 예금잔액증명서를 위장하는 등 치밀한 수법을 썼다.
결국 회사 관계자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공시했으나, 이미 이씨는 잠적하고 난 뒤였다고 한다.
삼화기연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코스닥 등록이 취소되는 등 가장 피해가 큰 곳.
검찰 관계자는 “회사를 인수할 당시 주가가 2천원대(액면가 5백원)였으나, 이번 범행으로 인해 주가가 2백원대로 하락해 일반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삼화기연의 이아무개 사장은 지난해 9월 사채를 동원해 회사를 인수한 이후, 이 돈을 갚기 이해 회사 소유의 현금, 약속어음, 수표 등 27억원을 횡령했다.
(주)사이어스의 경우는 전 대표이사와 현 대표이사가 공모해 회사 자금을 횡령한 케이스. 여기에 이 회사의 공인회계사까지 가세해 철저한 작전 끝에 이뤄진 사건이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 사건이 벌어진 것은 지난 2002년 2월경. 당시 전 대표이사였던 이아무개씨는 회사 경영을 하면서 자금난에 시달리자, 회사 지분을 팔 의사를 갖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공인회계사가 이아무개씨를 소개시켜줬고, 당시 이씨는 회사의 주가를 높게 쳐주겠다며 과거 대표이사였던 이씨에게 은밀한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그것은 회사의 회계장부를 조작해서 주가가 오를 때 전환사채를 발행했다가, 나중에 싼 가격으로 되사는 방식이었다.
이씨는 이렇게 해서 얻은 차익으로 회사를 인수한 뒤, 비슷한 수법을 여러 번 써먹다가 결국 검찰에 붙잡히고 말았다.
코리아링크의 박아무개 대표이사는 우량한 회사돈을 빼돌려 자신의 개인회사나 다름없는 조그만 곳에 거액을 지급보증, 단기대여, 허위매출을 일으킨 등 문어발식 경영의 전형을 보여준 케이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 일은 지난 2001년 3월부터 2003년 4월까지 무려 2년을 넘게 계속됐다고 한다. 당시 (주)코리아링크는 자본금이 67억원에 달하는 유망한 통신장비 제조, 판매업체였다고 한다. 이 회사가 보증한 ‘아이센’은 소규모의 컨텐츠 서비스 업체.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아이쎈이라는 회사는 지난 2001년 무려 1백25억원의 적자를 기록해 사실상 자본이 잠식당한 상태였다.
그러나 박씨는 자신이 대주주인 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코리아링크의 돈 4백여억원을 지원했다가 결국 꼬리가 잡히고 말았다.
결국 코리아링크는 지난 2001년 흑자를 기록했으나, 1년 만인 지난 2002년 3백여억원의 적자를 기록, 결국 부도났다.
검찰 관계자는 “비정상적 M&A나 기업 대표이사의 공금 횡령 등에 관해 지속적인 단속을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