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권 최대 화두 중 하나는 ‘신한금융지주의 차기 CEO(최고경영자)가 누가 될 것인가’다. 신한금융지주는 일단 지난 12월 9일 라응찬 전 회장의 퇴임으로 공석이 된 회장 자리에 직무대행으로 류시열 전 한국은행 부총재를 선임했다. 류 회장은 공식적으로는 직무대행 역할을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회장’이란 직함을 사용하기로 했다. 한편 현 정부 출범 후 금융권은 끊임없는 ‘관치금융’ 논란에 휘말려왔다. 금융권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시중은행의 CEO까지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인사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신한금융 차기 CEO 선임 과정에서도 낙하산 논란이 불거진다면 관치금융 논란은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 들어서 관치금융 논란은 유독 거셌다. 대형 금융지주 수장들이 대부분 ‘친 MB계’ 인사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현재 4대 금융지주 중 세 곳의 CEO가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학교 동문이자 개인적으로 친밀한 인사들이다.
정권 출범 후 가장 먼저 CEO를 교체한 우리금융지주는 이팔성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사장을 회장으로 선출했다. 이 회장은 이 대통령과 고려대 동문이자 지난 17대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의 상근 특보를 맡았던 인물이다. 하나금융지주의 김승유 회장 역시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경영학과 동문이자 오래 전부터 ‘절친’이었다. 하나금융은 최근 론스타와 외환은행 주식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본 계약이 체결될 경우 하나금융은 신한금융을 제치고 단숨에 ‘빅3’ 반열에 오르게 된다.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 논란이 결론지어지지 않은 가운데 본 계약이 체결되면 하나금융이 현 정권에서 특혜를 입었다는 논란이 불거질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KB금융지주 회장에 어윤대 전 국가브랜드위원장이 선임되면서 관치금융 논란은 정점에 달했다. KB금융지주는 황영기 1대 회장이 우리은행 재직 시절 파생상품 투자로 막대한 손실을 입힌 문제로 금융당국과 갈등을 빚고 지난 2009년 9월 자진사퇴하며 공석이 됐다. 차기 회장 물망에 오른 세 명 중 두 명이 현 정부 관료 출신이었고 나머지 한 명이 강정원 국민은행장이었다. 현 정부 출신 후보자들이 낙마하자 강 행장이 회장 후보로 선출됐다.
이후 국민은행에 대한 금융당국의 강도 높은 종합검사가 시작됐다. 금융감독원은 강 내정자의 차량운행일지까지 조사했다. 금감원의 검사를 견디지 못한 강 내정자가 후보에서 사퇴했고 어 위원장은 사실상 KB금융지주 회장에 ‘무혈입성’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경영학과 2년 후배인 어 회장은 교육부 장관, 대통령직인수위원장, 국무총리, 경제부처 장관 물망에도 올랐던 이 대통령의 대표적 측근 인사다. 어 전 위원장이 회장에 오르자 정치권과 노동조합 등에서는 “정부 지분이 전혀 없는 은행에도 낙하산 인사가 이뤄졌다”며 “사실상의 관치금융 부활”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국내 4대 금융지주 중 세 곳의 수장이 대통령의 동문이자 개인적으로도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들이다 보니 나머지 한 곳인 신한금융의 차기 회장 인선에 금융권의 관심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신한금융은 내년 2월 중순으로 예정된 이사회까지 라응찬 전 회장의 후임을 선임할 예정이다. 후보로는 류시열 회장 직무대행과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김석동 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차관, 이철휘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강 위원장은 현 정부 경제정책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며, 이 전 사장은 숨은 실세로 통하는 김백준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처남이다.
금융권에서는 신한금융이 새 경영진에 대한 마땅한 해답을 내놓지 못할 경우 친정부 인사의 낙하산을 막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은행권 CEO 공모 방식은 과정이 불투명해 낙하산 인사를 포장해주는 역할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신한금융 회장 인선의 경우 KB금융 회장 인선 문제로 우선순위에서 밀렸지만 정권 출범 때부터 (정부 측의) 계산 안에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한금융의 라응찬 전 회장은 올 2월 열린 이사회에서 4연임을 확정한 바 있다. 실제 2010년 1~2월은 KB금융지주 강 내정자에 대한 금감원의 종합검사가 한창일 때라 라 전 회장의 연임은 상대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신한금융마저 낙하산 인사가 될 경우 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을 비롯해 민간은행 대부분이 친 정부 인사들로 채워지게 된다”며 “어떤 정권에서도 유례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분위기로는 산업은행 민영화도 조만간 이뤄지기 어려워 보인다”면서 “공공성이 높은 은행의 경우 정부의 철저한 관리 감독이 필요하지만, 자율성을 잃을 경우 산업 전반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이 높아질 위험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
금융권에 MB 인맥 ‘촘촘’
이명박 대통령의 인맥으로 불리는 인사들은 국내 4대 금융지주 이외에도 은행 증권사 등 금융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이 나온 동지상고(현 포항동지고) 인맥의 경우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을 필두로 이휴원 신한투자증권 사장, 하인국 하나로저축은행장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노치용 KB투자증권 사장은 이 대통령의 현대건설 사장 시절 비서 출신이다. 이형승 IBK투자증권 사장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신이며 임기영 대우증권 사장은 대선캠프에서 활동한 바 있다. 이두희 우리금융지주 사외이사는 이 대통령과 고려대 경영학과 동문이며 이용만 백창렬 우리은행 사외이사는 각각 대통령 취임준비위원, 대선캠프 외곽조직 멤버로 활동했다.
정권 초 청와대에서 일했던 인사들이 공공금융기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일도 빈번했다. 지난 6월 한국증권금융은 상근 감사위원에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 출신인 김희락 씨를 선임했고, 같은 달 한국예탁결제원은 예탁결제본부장 자리에 문형욱 전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실 행정관을 임명했다. 이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는 “어느 정권에서나 금융권 낙하산 논란이 있었지만 이번 정권은 좀 심한 감이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