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새해 2단계 투쟁에 들어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난해 12월 13일 최고위원 등과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날치기 법안 무효 행진을 하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손대표가 구상하는 계획의 일단은 신년사에서 읽을 수 있다. 그는 “2010년은 민주주의와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한 해였다”면서 “구시대의 권위주의는 아직도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고,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는 것을 보았고, 차별과 특권이 엄연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손 대표는 새해 정책 화두로 ‘차별폐지’, ‘중산층 관심’, ‘평화적인 한반도’, ‘민주주의’를 내걸었다. 차기 대선을 겨냥한 그의 포석들을 짐작할 수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내건 ‘한국형 복지’에 대항할 수 있는 이슈들이 그 의제들 가운데 선택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민주당의 ‘장외투쟁 이후’ 계획도 손 대표의 신년 구상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그는 12월 30일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의 분명한 결의를 이명박 정부에,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며 “우리 몸이 부서지더라도 투쟁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1월 3일 시무식이 끝나는 대로 바로 2단계 투쟁에 들어갈 것”이라며 “이 투쟁은 능소능대(能小能大·모든 일에 두루 능함)해야 한다. 게릴라전과 전면전, 선전전, 대민봉사활동 등 모든 것을 결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국민에게 고개를 숙이도록 해야 한다. 자발적으로 숙이지 못하면 갖다 끌어서라도 시켜야 한다”고도 했다.
이와 관련, 이낙연 사무총장은 “손 대표의 숙소가 광장에서 마을회관으로 바뀔 것”이라며 “손 대표가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계속 ‘외박’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세 가지를 가장 무서워한다고 한다. 첫째는 투쟁력 높은 당직자들이고 둘째는 ‘모씨의 입’이라고 한다”며 자신을 지칭한 뒤 “부자나 몸조심하지, 민주당이 발과 입을 조심하면 2012년을 기약할 수 없다. 내년에는 발과 입을 더 열심히 움직이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세 번째로 무서워하는 것은 2012년 총선이라고 한다”며 “이는 자업자득으로, 심지어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들은 국회에는 관심이 없고 국정감사 할 때에도 자신의 발언 순서가 끝나면 바로 지역구로 가는 형국”이라고 덧붙였다.
당내에서는 이 같은 대여투쟁 프로그램을 사실상 손 대표의 ‘대선행보’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의원은 “손 대표가 대선을 겨냥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는 말들도 하던데, 너무 열심히 하는 건 분명하니까 대놓고 말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간 장외집회가 지속되면서 ‘내부동력 상실’, ‘피로감’ 등의 부정적인 시각이 제기됐지만, 대여투쟁의 고삐를 놓을 수 있는 때는 아닌 것이다. 이를 통해 손 대표가 한나라당 전력을 털어내고 완전히 ‘민주당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는 것이 여전한 숙제다.
손 대표 쪽의 한 핵심 당직자는 2차 대여투쟁과 관련, “손 대표로 보면 피할 수 없는 싸움인 동시에, (한나라당) 출신과 정체성 논란을 털어낼 수 있는 하늘이 준 기회였다”면서 “이번 장외투쟁 과정을 거치면서 더 이상 한나라당 경력을 거론할 수 없게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손 대표가 지난 12월 28일 서울역 집회에서 ‘우리는 승리하리라’는 70년대 운동가를 직접 부르면서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인 것도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앞서 최고위원회에서도 “민주당이 단단히 뭉치게 된 것도 (이번 장외투쟁의) 성과” 고 자평한 바 있다.
답보상태인 지지도도 손 대표로서는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문제다.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한 대선주자로서 당심의 ‘공인’을 받으려면 ‘유의미한 지지율’은 필수불가결한 선결조건이다. 그런데도 손 대표의 최근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손 대표 측은 한나라당의 예산안 단독 처리 이후 장외투쟁을 이끌면서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외부 환경은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일 <문화일보> 신년 여론조사에서 손 대표는 12월 20일 발표된 리얼미터 정기여론 조사(지지율 8.2%)에 이어 9.1%의 지지율로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렀고 야권 다른 유력 주자인 유시민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장(12.1%)에게도 밀렸다. 리서치앤리서치(R&R)가 12월 19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손 대표는 7.7%의 지지율을 얻는 데 그쳤고, 여당의 유력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양자대결을 가정한 조사에서도 더블 스코어 이상으로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 대표는 같은 조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가상 대결에서도 패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예산안 처리 이후 한나라당에 대한 여론이 더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러한 여론이 민주당과 손 대표의 지지율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손 대표와 민주당 인사들의 고민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전국 시ㆍ군ㆍ구 단위까지 파고 드는 새로운 투쟁이 전개되면서 민주당이 대안임이 인식되고 지지율이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연대도 손 대표에게 주어진 숙제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진보세력은 올해 통합신당 출범을 가장 큰 과제로 보고 있다. 지난 12월 29일 진보세력의 대통합을 추진하는 시민사회단체인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가 서울 중구 명동 YMCA에서 창립대회를 열고 오는 상반기까지 진보대통합 정당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각 정당들은 어느 정당까지 통합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지, 향후 총선거 등에서 연대 범위를 어디까지 해야 할지를 놓고 입장이 크게 갈리고 있어 자칫 큰 성과 없이 논쟁만 벌이다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야권의 대주주인 민주당과 손 대표가 이런 통합 논의에 어떤 방점을 찍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