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추석 전후 강남지역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는 급매물들이 넘쳐났다. |
예측이라는 게 대부분 그렇지만, 과거에 나온 부동산 시장 전망을 현재 시점에서 평가해보면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초 대부분 전문가들은 그해 하반기부터 집값이 본격적으로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집값은 사실상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1년 전 전망도 마찬가지다. 2009년 말 건설산업연구원이 내놓은 2010년 전망에서 집값은 4%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실제로 국민은행 기준 2010년 집값은 1.5% 정도 오르는 데 그쳤다. 수도권 집값은 오히려 2% 정도나 하락했다. 건설산업연구원은 지방선거나 정부 규제완화 정책에 따라 국지적으로 집값이 들썩일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지방선거 시기나 규제완화 정책이 발표된 직후에도 시장은 꿈쩍도 안했다.
다시 돌아온 연말연시, 신년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대체로 2010년보다는 나아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아파트는 2.5%, 전국 기준으로는 2%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건설산업연구원도 새해 주택시장이 지역적으로 서울, 물건별로는 소형주택을 중심으로 가격이 상승하면서 전반적으로는 1~2% 내외의 상승세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주택 시장 전망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번에도 틀릴 것이라고 여기고 무시해야 할까. 일단, 틀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전망을 무시하는 건 ‘아기를 목욕물과 함께 버리는’ 것과 같은 잘못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유앤알컨설팅 박상언 사장은 “부동산 전망에서 중요한 것은 몇 퍼센트 집값이 변화할 것이라는 수치보다 그런 전망을 내놓기 위한 근거”라며 “근거를 제대로 이해해야 흐름을 알 수 있고 스스로 전망을 평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새해 부동산 시장을 좌우할 변수로는 무엇이 있을까.
주택산업연구원 건설산업연구원 등 시장 연구기관은 물론 삼성증권 메리츠증권 NH투자증권 등 증권사들도 대부분 신년 주택시장이 회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주택 사업 비중이 높은 건설사의 투자를 권유하는 보고서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들 기관이 ‘새해 주택 값이 2010년에 비해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근거는 크게 줄어드는 공급량이다.
우선 입주량이 크게 준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새해 아파트 입주물량은 19만 가구로 예년(2000~2010년) 평균 대비 39.6%가 감소한 수준이다. 수도권과 지방 모든 지역에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며 1990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아파트 인·허가 및 분양물량이 급격히 줄어든 영향이 새해 아파트 입주물량 감소로 이어지는 것이다.
수도권 입주물량도 10만 4000가구에 머물러 2010년보다 40% 줄어든다. 경기지역은 2011년 입주물량이 가장 많이 줄어드는 곳이다. 2010년 11만 7000가구의 신규 입주물량이 있었으나 2011년엔 4만 8300가구로 크게 감소한다. 나비에셋 곽창석 사장은 “2010년까지만 해도 매년 전국의 연간 입주물량은 30만 가구에 육박했다”며 “새해 새로 입주할 주택이 당장 10만 가구나 줄어들기 때문에 주택수요가 밀집된 서울 경기도 등의 지역에서 전셋값은 물론 집값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입주량은 당장 전셋값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새해 전셋값이 3~4%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주택산업연구원도 아파트 전셋값이 서울은 5%, 수도권과 지방은 4%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신규 분양도 줄어들 전망이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가 상위 100위권 민간 건설사를 대상으로 2011년 아파트 분양계획을 조사한 결과, 전국적으로 230여 개 단지 18만여 가구가 분양될 예정이다. 이는 2007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이며 1년 전 조사한 분양계획 물량과 비교하면 27%나 줄어든 것이다.
분양 아파트가 감소하는 건 2~3년 후 입주량이 크게 줄어들 것이란 뜻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 한동안 아파트 공급이 계속 부족하다는 얘기다. 부동산부테크 김부성 소장은 “주택공급량이 한동안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주택 수요만 꾸준하다면 집값은 오를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매수세는 어떨까. 일단 주택 수요는 크게 늘어나진 않을 전망이다. 서울은 2010년 이후 세대수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수도권의 세대수 증가율은 연평균 3.5%였으나 2009년은 1.1% 수준으로 하락했고, 2010년 이후 이 같은 추세는 이어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약한 1인 가구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수요 급증 가능성을 희박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다만 국지적으로 주택 수요가 몰리는 곳은 나타날 전망이다. 서울 도심 재개발사업 지역이 대표적이다. 서울시는 지난 3월 재개발사업의 계획 용적률을 20% 상향 조정했다. 시기를 지연해온 도시정비사업지역이 동시다발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경우 멸실 가구가 갑자기 늘어날 수도 있다. 현재 사업시행인가에서 관리처분 단계의 수도권 재개발 단지 수는 96개며, 조합원 수가 확인된 단지 55개만 해도 2만 8149명이나 된다. 이 경우 대규모 이주 수요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허윤경 연구위원은 “2011년엔 미뤄온 도시정비사업들이 한꺼번에 진행되면서 대규모 멸실 가능성이 있다”며 “멸실에 따른 주택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택 구매 심리가 2010년보다 회복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국민은행이 전국 중개업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12월 기준 ‘매수세 우위’라고 답한 곳은 10%에 육박한다. 지난 7월 3.5%까지 떨어졌다가 매수 움직임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는 의미다.
경매시장 회복 추이도 주목할 만하다. 경매시장은 전체 부동산 시장의 선행지표 역할을 한다. 집값이 회복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면 경매시장에 사람이 몰리고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이 오른다. 경매정보업체 디지털태인 이정만 팀장은 “경매시장에서 2011년 집값 회복을 전망한 사람들이 낙찰가를 높게 쓰고 있다”며 “부동산 매수 심리가 회복되고 있는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디지털태인에 따르면 지난 12월 수도권 아파트 경매의 건당 평균 응찰자 수는 7명으로 2009년 8월(7.83명) 이후 가장 많았다. 특히 고가 주택이 몰린 서울 강남권(강남 서초 송파) 주택의 응찰자수는 평균 7.25명이나 된다. 역시 2009년 8월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낙찰가율도 2010년 하반기 이후 꾸준히 상승세를 타 80%까지 올랐다.
법무법인 메리트 박미옥 본부장은 “얼마 전엔 강동구 둔촌동의 60㎡형 아파트 입찰에 51명이 몰리기도 했다”며 “경매시장은 이미 과열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시야 강은현 이사는 “경매시장이 과열 기미를 보이는 건 새해 주택 시장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라며 “집값이 반등할 때를 대비해서 많이 떨어진 주요 지역 매물을 미리 싸게 사 놓자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구매 심리가 본격적으로 살아나긴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있다. 정부가 인플레이션 우려 등으로 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가능성이 커서다. 금리가 오르면 대출이자도 올라 주택구입 부담이 커져 구매 심리를 크게 위축시키는 역할을 한다.
새해 들어 매매가는 떨어지고 전셋값은 올라 매수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있으나 서울이나 수도권의 전세가 비율이 낮은 점은 매수세가 본격적으로 살아나기 어려운 원인이란 관측도 있다. 실제로 서울 및 수도권의 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은 각각 44%, 46.2%로 낮다. 전문가들은 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이 60% 수준은 돼야 매매로 돌아서는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SK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앞으로 주택가격 전망은 임대 가구가 어느 정도나 매매로 전환할 수 있는가가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전셋값 상승은 2011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일부 임대 수요가 매매 수요로 전환하는 경우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계의 주택 구매력이 악화되고 있는 것도 집값의 본격적인 상승을 막는 요인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11월 말 ‘전세가격 상승 원인 및 매매가격 상승 가능성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소득 대비 주택가격을 나타내는 지표인 PIR(Price to Income Ratio)이 2010년까지 꾸준히 올랐다”며 “주택 수요자의 구매력이 2000년보다 크게 감소해 주택가격 상승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강화 등 집값 상승을 차단하기 위한 정부의 추가 정책이 시장 회복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새해 주택시장이 본격적인 회복보다는 미미한 회복세를 띨 것으로 예상한다. 주택산업연구원 권주안 선임연구원은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1년 물가 상승률 전망치 3.5%를 감안할 때 집값 상승폭이 크지 않기 때문에 실질 주택 가격은 마이너스 상승세를 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수급 불균형이 크게 나타나는 지역과 전세 비중이 높은 지역, 투자성이 양호한 지역 등을 중심으로 실수요 거래가 이뤄지면서 가격이 오르는 곳이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크게 오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수요자 중심으로 시장이 움직이고 전세난이 계속되면서 오피스텔과 도시형생활주택 등 수익형 부동산의 강세가 새해에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역세권의 소형 주택과 보금자리주택, 장기전세주택(시프트) 등의 인기는 올해 계속될 듯하다.
부동산114 김규정 리서치센터 본부장은 “새해 본격적인 매수 심리 회복을 전망하긴 어렵다”면서도 “다만 거시경제 회복 신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집값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살아날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박일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jumpcut@joongang.co.kr
추락하던 분당ㆍ용인 다시 뜬다
부동산 시장에서 유망지역은 개발 호재가 있는 곳이다. 현재보다 향후 가치가 올라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미리 집을 사면 주거문제뿐 아니라 시세차익도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2011년 새해 뜰 만한 지역은 어디일까. 서울에선 서울시가 ‘2020 도시기본계획’에서 부도심지역으로 지정해 놓은 곳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심의 용산, 동북생활권의 왕십리와 청량리, 동남 생활권의 잠실과 천호동, 서남 생활권의 영등포, 마지막으로 서북 생활권의 수색이 그곳이다. 이중 용산, 청량리, 왕십리, 수색은 신부도심으로 육성하도록 돼 있다.
서울에서 한강변은 가장 확실한 유망지역이다. 서울시는 ‘한강공공성회복선언’을 통해 한강변을 전략정비구역(성수 합정 이촌 압구정 여의도), 유도정비구역(망원 당산 반포 잠실 구의 자양), 일반관리구역 등으로 나눠 통합관리하고 있다. 전략정비구역과 유도정비구역은 향후 서울의 블루칩으로 변신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다.
전철 역세권도 유망하다. 1~2인 가구 증가에 따라 서울시는 전철역 기준 반경 250m 이내에 용적률을 500%까지 허용한다. 2차 역세권(전철역 기준 250~500m)도 2종 일반주거지역의 경우 3종으로 상향하고 용적률을 300%까지 높여준다. 특히 지하철 9호선 라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9호선은 금융중심지인 여의도, 경제 중심지인 강남은 물론 서울 도심을 모두 통과한다. 고액연봉자, 고학력자가 이 라인에 몰려들 가능성이 크다. 업무중심지로 가는 지하철 노선이 미미했던 강서구 동작구 등이 수혜지역이 될 전망이다.
수도권에선 분당과 용인을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집값이 전년 대비 20% 전후로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회복할 가능성이 커서다. 특히 분당은 지난해 판교 입주가 마무리되면서 주택 수요가 더 이상 크게 빠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신분당선 개통도 호재다. 2011년 하반기 신분당선이 개통되면 정자역에서 강남역까지 16분대에 돌파할 수 있다. 사실상 강남권에 바짝 접근하는 셈이다.
지방에서는 주택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이 부족한 부산 등 광역시를 중심으로 꾸준히 시세가 오를 것이란 전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