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라응찬 전 회장, 신상훈 전 사장, 이백순 전 행장. |
신한금융지주 경영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검찰은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리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검찰 수사를 석연치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도 내로라하는 검사들이 4개월간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제기된 의혹을 확인하는 선에 그쳤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한금융의 터줏대감인 라 전 회장에 대해서는 사실상 면죄부까지 줬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 몇 달 동안 재계와 금융권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신한금융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를 되짚어봤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검사 이중희)는 지난 12월 29일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횡령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신 전 사장은 신한은행장으로 재직하던 2006~2007년, 2년에 걸쳐 부실기업에 438억 원을 부당 대출토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신 전 사장은 또한 이희건 신한금융지주 명예회장에게 자문료를 지급하는 것처럼 꾸며 회사 돈 15억 6600만 원을 횡령하고, 재일교포 주주들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8억 6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2008년 2월 이 명예회장 자문료 명목의 회사 돈 3억 원을 빼돌려 ‘외부인사’에게 전달한 혐의로 이백순 전 행장도 불구속 기소했다. 이 전 행장은 재일교포 주주로부터 5억 원을 수수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 수사 가운데 가장 크게 의문이 남는 대목은 라응찬 전 회장에 대한 무혐의 처리다. 먼저 204억 원을 차명계좌로 입출금한 부분은 금융실명제법 위반으로 과태료 부과 사안에 해당되어 처음부터 형사처벌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다. 라 전 회장도 검찰 수사 발표 전 이 부분에 대해 책임을 지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이 명예회장의 자문료 횡령 건에 대해 라 회장이 전혀 몰랐다는 수사결과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는 것이 일부 법조계 인사들의 주장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행장은 지난 2008년 비서실에 ‘라 회장의 지시’라며 자문료 명목으로 조성된 비자금 3억 원을 받아 외부인사에게 전달했다. 이 전 행장에게 돈을 전달한 비서실 관계자의 관련 진술도 확보됐다. 라 전 회장이 비자금 조성을 주도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지만 검찰은 이 전 행장에게만 책임을 묻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이 전 행장이 3억 원을 받아간 사실 자체를 부인하면서 입을 닫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가 신한금융 측의 입맞춤에 의해 수사가 한계에 부딪쳤기 때문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수사 의지가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전자에 무게중심을 두는 쪽은 ‘이 전 행장이 입을 닫고 모든 책임을 지기로 했다면 검찰 수사도 더 나아가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신 전 사장과 이 전 행장은 검찰 소환 조사에서 라 전 회장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입을 닫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히려 라 전 회장 혐의에 대해서 두 사람은 적극적으로 해명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지난 12월 두 사람이 고소를 취하하는 과정에서 이면합의를 통해 이미 입을 맞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검찰이 애초부터 수사 의지가 없었다고 보고 있다. 수사팀은 이 명예회장에 대해 전화 조사만 했으며, 재일동포 4명의 이름으로 차명계좌를 운용한 이유와 출처가 불분명해 비자금 성격을 띤 이 돈의 용처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또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권에서는 김준규 검찰총장이 직접 구속 수사 의지를 밝혔음에도 불구속 기소로 결론 내린 배후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라 전 회장은 경북 상주 출신 모임인 ‘상촌회’ 멤버로 TK(대구·경북) 출신 현 정권 인사들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 역시 상촌회 회원이다. 이에 대해 윤갑근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구속도 검토했으나, 이후 일부 공탁이 이뤄졌고 대표적 은행인데 구속으로 인해 발생할 신인도와 대외 충격도 감안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수사 결과 발표로 인해 김준규 검찰총장의 입장이 상당히 난처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검찰총장이 구속수사 방침을 언급했음에도 불구속으로 수사가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면 ‘영’이 서지 않는 모양새가 됐다”며 “새해 금융권 전반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려는 계획 등에도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수사를 두고 결국 신한금융의 치부만 드러낸 꼴이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CEO(최고경영자)들 간의 주도권 싸움 다툼이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됐다”며 “재일교포 자금이 많았던 신한금융 특성상 그동안 속을 들여다보기 어려웠는데 이번 수사로 검찰은 많은 것을 얻어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
회장 앉혀야 정상궤도 진입
신한금융지주는 이백순 전 행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신한은행장에 서진원 신한생명 사장을 지난 12월 30일 임명했다.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서 행장은 비교적 중립적이라는 평가지만 신한금융 내부에서는 ‘라응찬 라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서 행장은 검찰 수사와 CEO 사퇴로 어수선해진 조직 분위기 다잡기를 당분간 최우선 순위에 둘 전망이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공석인 회장 인선이 완료돼야 신한금융이 다시 정상궤도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한지주는 3월 신한금융 회장 선임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신한금융은 7일 이사회 산하 특별위원회에서 차기 회장 대표이사 선임 기준을 보다 구체화한다. 이후 2월 말에 있을 정기이사회에서 사내이사 후보들을 추천하고, 3월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추천된 사내이사 후보들을 승인하게 된다. 주총 직후 열리는 임시이사회에서 주총에서 선임된 이사들이 대표이사 회장 선임을 확정한다.
현재 회장 후보로는 류시열 신한금융 회장 직무대행과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이철휘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