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만 믿어~ 이재현 CJ그룹 회장(맨 오른쪽)이 최근 CJ파워캐스트 지분을 자녀들에게 모두 넘기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CJ파워캐스트의 최대주주 주식 보유 변동이 일어난 것은 2010년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지난 12월 30일. 이재현 회장은 자신 명의의 CJ파워캐스트 지분 40만 주(지분율 40%) 전량을 아들 선호 씨(22)와 딸 경후 씨(27), 그리고 조카(친동생 이재환 상무의 딸) 소혜 씨(21)에게 매도했다. 이 회사 지분이 전혀 없던 선호 씨와 경후 씨, 소혜 씨는 이번 거래를 통해 각각 24만 주(24%), 12만 주(12%), 4만 주(4%)씩 보유하게 됐다.
이재현 회장이 CJ파워캐스트 지분을 처음 사들였던 것은 지난 2009년의 일이다. 그해 8월 25일 19만 9000주(19.9%)를 매입한 데 이어 1주일 후인 9월 2일 20만 1000주(20.1%)를 추가로 사들였다. 당시 거래가는 주당 1만 8000원으로 총 거래금액은 72억 원이었다.
먼저 이 회장이 매입한 지 1년여밖에 안 된 계열사 지분 전량을 2세들에게 넘긴 배경에 눈길이 쏠린다. 이번 거래가는 주당 3만 962원으로 총 123억 8480만 원이다. 이 회장이 시세 차익 51억 8480만 원 때문에 서둘러 계열사 지분을 2세들에게 넘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수입원이 불분명한 자녀들의 주식 매입비용이 이 회장 주머니에서 나왔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회장의 주식 양도는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비상장인 CJ파워캐스트는 방송 송출과 프로그램 제작을 하는 회사로 CJ의 미디어 계열사 물량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지난 2009년 4월 공시에 따르면 이 회사 매출의 38%가 CJ미디어 등 계열사와의 거래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 4월 28일엔 CJ 계열사 아트서비스의 프로덕션 자산을 16억 원에 넘겨받으면서 사업 영역을 넓혔다. 당시 CJ파워캐스트는 공시를 통해 ‘아트서비스 사업부문 인수를 통해 매출 8억 원, 영업이익 4억 원 증대가 예상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계열사의 물량 지원 덕분인지 CJ파워캐스트는 단기간에 급성장을 일궈냈다. 지난 2005년 이 회사는 매출액 110억 원, 영업이익 1억 7400만 원, 당기순이익 8100만 원을 각각 기록했다. 4년이 흐른 2009년엔 매출액 317억 원, 영업이익 35억 3900만 원, 당기순이익 26억 9600억 원을 달성했다.
그룹 물량 지원하에 성장해온 지난 4년간 매출에서 약 3배 성장을 기록했으며 영업이익은 무려 20배, 당기순이익은 33배나 치솟은 것이다. 이 회장이 이 회사 지분을 처음 사들일 땐 주당 1만 8000원이었는데 불과 1년여 만에 이 회장이 2세들에게 넘길 때 주당 가격이 1.7배 오른 3만 962원이었다는 점도 이 회사의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CJ파워캐스트가 이처럼 짧은 기간 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그리는 와중에 이재현 회장 자녀들이 이 회사의 대주주가 된 것을 오너 일가 주머니 불려주기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재벌가 자녀들이 주가가 낮은 비상장 계열사 지분을 대량 매입한 뒤 그 회사를 키우고 상장시켜 막대한 차익을 거두는 사례가 많았던 까닭에서다.
이 회사가 훗날 높은 가격에 상장된다면 이 회사 지분 40%를 보유한 2세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질 전망이다. 계열사인 CJ시스템즈가 이 회사 지분 60%를 보유한 만큼 경영권 방어 걱정 없이 주가가 오른 상태에서 주식을 팔아 차익을 실현할 수도 있다.
이 회장 자녀들이 CJ파워캐스트 대주주가 된 사실은, 이 회장 자녀들이 그룹 지주사인 CJ㈜ 지분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는 점과 맞물려서도 여러 해석을 낳는다. 이 회장은 CJ㈜ 지분 42.01%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반면 이 회장 딸 경후 씨는 CJ㈜ 지분 0.13%를 보유하고 있으며 아들 선호 씨에겐 CJ㈜ 지분이 없다. 이 회장 자녀들의 CJ파워캐스트 대주주 등극과 이 회사에 대한 지속적인 밀어주기가 훗날 이 회장 자녀들의 지주사 지분 확보용 실탄 만들기 작업의 일환으로 비치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역시 비상장 계열사인 C&I레저산업 또한 주목할 만하다. 부동산 개발·투자 목적으로 지난 2006년 설립된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지분율 42.11%의 이재현 회장. 뒤를 이어 아들 선호 씨가 37.89%, 딸 경후 씨가 20%를 보유해 이 회장 일가가 지분 100%를 차지하고 있다.
C&I레저산업은 인천 굴업도 관광단지 개발로 이름을 알린 회사다. 지난 2006년부터 굴업도 땅을 매입하기 시작해 현재 굴업도 전체 면적의 98%인 172만 6000㎡(52만 평)을 보유한 상태다. 이 회사는 굴업도에 14홀 골프장과 대형 호텔을 중심으로 한 관광단지 개발을 추진해오다 지방자치단체·환경단체와의 마찰로 지난 6월 개발사업을 중단한 상태다.
C&I레저산업은 매출액 중 CJ제일제당과의 거래 비중이 35.9%일 정도로 계열사 의존도가 높다. 이 회사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다가 지난 2009년 2억 1500만 원의 당기순손실을 내면서 주춤하기도 했다. 그러나 굴업도 개발이 재개될 경우 막대한 수입이 예상되는 만큼 성장 가능성은 CJ파워캐스트를 뛰어 넘고도 남는다는 평이다. C&I레저산업도 훗날 이 회장 자녀들의 지주사 지분 매입용 실탄 마련의 발판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재계 일각의 분석이다.
1960년생인 이 회장이 아직 한창 경영현장을 누비고 있고 아들 선호 씨가 20대 초반이라 경영권 승계를 운운하기엔 이른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안정적 승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주사 지분율이 턱없이 낮은 자녀들을 위한 이 회장의 장기적 구상이 어떤 것일지에 대한 재계의 시선은 벌써부터 뜨겁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