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업들이 상조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려고 하는 까닭은 지난해 9월부터 시행한 할부거래법 개정안(일명 상조법)에 따라 제휴 형태 등으로 사업을 대행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개정된 할부거래법에 따르면 자본금 3억 원 이상 업체만 상조업에 진출할 수 있다. 또 회원들이 돈을 떼이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회원 선수금의 50%를 금융기관에 예치하거나 보험 공제조합 등에 가입할 것을 의무화했다.
한편으로 이는 금융권 회사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 고객 예치금을 늘릴 수 있고 고객 유인 효과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단순히 대행해주는 형태에서 벗어나 직접 사업을 운영하면 신규고객을 창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래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이 상조회사를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9월 은행권으로는 처음으로 상조 관련 상품인 ‘우리상조 세이프 예금’을 출시했다. 신한은행 대구은행 등 여러 은행들도 상조 관련 상품 출시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은행들은 상조회사의 고객 선수금을 유치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상조시장에 입맛을 다시는 것은 어마어마한 시장 규모와 확대 가능성이 가장 큰 이유다. 우리나라 상조시장은 현재 7조 원 규모로 파악되고 있으며 앞으로 시장이 더 확대될 전망이다.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우리나라 상조시장은 지난 10년여 동안 크게 팽창해왔다. 2010년 9월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0년께 50여 곳에 불과했던 상조회사가 2010년에는 337개로 늘어났으며 고객불입금도 1조 8552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05년 이후 상조회사가 급속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팽창에 따른 피해건수도 늘어났다. 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상조와 관련된 소비자 불만은 2005년 219건에서 2009년 2446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군소업체가 난립하고 부실경영이 속출하면서 고객들의 피해가 늘어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초 보람상조 등 상조회사의 불법행위가 적발되고 상조업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몰아친 것은 상조회사의 비리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보여준 실례다.
업계 1위였던 보람상조 최 아무개 부회장 등 오너들의 비리는 말이 많던 상조업체를 단속하는 데 큰 빌미를 제공했다. 이후 현대종합상조 한라상조 등 업계의 내로라하는 회사의 대표들이 고객의 돈을 빼돌린 혐의로 줄줄이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심지어 한국소비자원의 설문조사 결과 상조 서비스 고객만족도에서 우수상조회사로 꼽힌 국민상조의 대표와 임직원마저 지난 연말 자금 횡령 혐의로 구속기소된 바 있다. 상조 광고가 ‘못 믿을 광고’ 1위에 오른 이유를 알 만하다.
상조업계의 비리와 구설은 대기업들이 상조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해준 측면도 있다는 것이 업계의 판단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상조사업이 돈이 된다는 것을 대기업이 모를 리 있겠느냐”면서 “그동안 상조시장 진출을 놓고 망설였던 까닭은 이미지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대기업이 상조시장까지 진출해 또 중소기업을 죽인다’는 비난이 두려웠던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상조업체의 비리가 봇물처럼 터지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되레 믿을 수 있는 업체를 찾는 경향이 더 강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금과 인프라가 탄탄하고 서비스 연계가 탁월한 대기업이라면 소비자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한 것이다.
상조사업과 관련해 가장 먼저 거론된 대기업으로 대우조선해양과 삼성그룹의 보안전문회사 에스원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은 상조사업을 추진하던 임원이 뇌물 혐의로 구속되고 업계 반발이 극심해 사업이 무기한 연기됐다.
에스원은 이미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분묘 분양 및 장례서비스업’을 신규로 사업목적에 추가하면서 상조사업을 시작할 것임을 알렸다. 업계에서는 에스원이 삼성그룹 임직원을 회원으로 확보하고 삼성의료원과 연계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시장에 안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다 에버랜드가 식음료를 담당하는 등 그룹 차원에서 시너지효과를 볼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주식시장에서도 에스원의 상조시장 진출을 긍정적으로 전망하며 기대치를 높였다.
쉽게 진출해 안착할 듯했던 에스원의 상조사업은 그러나 별달리 구체적인 움직임 없이 계속 연기되고 있는 상태다. 상조사업이 늦어지면서 주식시장에서도 실망매물이 쏟아지기까지 했다. 에스원 측은 “검토 단계일 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각에서는 에스원의 상조시장 진출이 늦어지는 까닭이 그룹 차원에서 결정이 미뤄지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비록 대기업이 비리의 온상처럼 된 상조시장에 진출하는 명분은 얻었지만 최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이 강화되면서 에스원이 상조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역시 삼성 계열인 삼성카드가 상조사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것도 에스원의 상조사업 연기에 큰 이유가 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같은 집안끼리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 여기에다 상조시장마저 삼성이 장악하려 한다는 비난까지 감수해야 한다. 삼성 내부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이건희 회장이 직접 ‘굳이 상조사업까지 해서 돈 벌 필요 있겠느냐’라고 질타하면서 상조사업을 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에스원뿐 아니라 삼성카드 내에서 아무도 상조사업을 해보겠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명 기업 중엔 처음으로 대명그룹이 대명라이프웨이를 출범하며 상조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다. 대명그룹은 대명리조트 비발디파크 호텔&리조트 오션월드 대명건설 등 레저와 건설부문 계열사를 다수 거느린 대기업군이다. 대명라이프웨이는 대명그룹의 인프라와 서비스 노하우를 바탕으로 질적으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5년 내에 업계 1위로 올라설 것을 자신하고 있다.
당장 올 3월부터 상조사업을 하려면 자본금 3억 원 이상 업체만 시·도에 등록해야 하고 업체의 정보도 공개해야 한다. 현재 상조업체 중 자본금 3억 원 미만 업체는 80%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세업체들로부터 상위 업체나 대기업 금융권 등에 인수·합병해달라는 요청이 빗발치고 있는 분위기다. 조만간 상조업체에 구조조정 태풍이 불 전망이다.
임준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