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삼 전 대통령. |
“다내놨어요. 다 환원했어요. 내가 죽으면 끝나는 거지 내가 영원히 살지는 못하니까요. 금년에 83세가 됐으니까.”
YS는 지난 1월 6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시가 15억 원 상당의 상도동 자택과 거제도의 밭과 임야 등 부동산 30여 건을 비롯해 50억여 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YS의 이번 결단은 온갖 편법을 동원해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려고 발버둥치는 대부분의 지도층 인사들과 견줘 정치권의 신선한 청량제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YS가 ‘사회 환원’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기부나 헌납의 사전상 의미는 재산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을 포기하고 그 일체를 제3자에게 양도하는 행위를 뜻한다. 따라서 YS가 자신과 무관한 제3자가 아닌 바로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사단법인인 ‘김영삼 민주센터’에 상도동 자택 및 거제도 땅을 기증하겠다고 밝힌 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회 기부나 헌납으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2001년 거제시에 소유권을 넘겼다고 알려진 YS의 생가 역시 본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박물관 용도로 쓰이고 있다.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 위치한 거제도 생가는 YS의 부친인 김홍조 씨가 생전인 2000년 10월 거제시에 기증했다. 이후 거제시는 이 일대를 YS 기념관으로 조성하기 위해 허름했던 생가를 해체하고, 그 자리에 시 예산 5억 원을 들여 2001년 새로 지었다. 대지는 566㎡로, 팔작지붕의 본채와 사랑채, 시주문과 돌담으로 구성돼 있다.
그렇다면 YS가 상도동 집과 더불어 거제도 소유 부지에 대한 소유권을 기증할 것이라 밝힌 김영삼 민주센터는 어떤 곳일까.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이 사단법인은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고, 아들인 김현철 여의도 연구소 부소장도 이사로 등재되어 있다. 또 김명윤 전 민주당 수석부총재, 이경재 한나라당 의원, 김덕룡 대통령실 국민통합특별보좌관, 이석채 KT 회장,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 김봉조 21세기정책연구소 연구원, 박관용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이사장, YS정부 시절 교육문화수석을 지낸 김정남 전 의원 등이 이사를 맡고 있다. 이들 인사들은 모두 YS의 직계인 상도동계 출신 정치인들이다. 이사진 구성에서부터 사업목적까지 공공성보다는 정치적 성격이 짙은 법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영삼 민주센터가 전개하고 있는 사업 역시 YS의 정치적 행보 및 임기 동안의 업적을 알리고 기리기 위한 것이다. 민주센터는 YS의 민주화운동 과정과 문민정부 시대의 역사적 자산 및 자료 일체를 연구 수집한다는 목적 아래 2010년 6월 설립됐다. 주요사업으로는 YS의 사상과 민주화 업적 연구, YS 기념관 건립, 사료 수집 및 전집 발간, 발표회, 세미나, 회지 발간 등의 사업으로 공적인 사회사업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YS의 재산 기증 후엔 별도의 공공사업을 계획하고 있을까. 민주센터 측에서 제공한 2011~2014년까지의 사업계획서를 살펴보면 현재까지 그런 계획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월 7일 기자와 통화한 민주센터 김정열 사무국장은 “이번에 YS가 기증한 재산으로 YS 기념도서관 건립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며 “기념도서관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사 및 바람직한 모델이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YS의 증조부가 설립한 거제시 신명교회 건물과 부지는 이미 장로회 교단 측에 기부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YS 표현의 적절성 논란과 더불어 자식에게 재산을 전혀 상속하지 않겠다는 발언 배경을 놓고도 갖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YS 측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계획에 있었던 일이 이번 신년사에서 안상수 대표에 의해 새삼스레 밖으로 새어나간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자식에게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언한 속내에는 또 다른 복심이 깔려 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실제로 YS는 두 차례에 걸쳐 친자확인소송에 연루돼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첫 번째는 2005년 9월경 YS와 혼외관계를 통해 주 아무개 씨(44·일명 가네코 가오리)를 출산했다고 주장한 이경선 씨(71)였다. 그러나 이 씨의 경우 소송을 건 지 1년 만에 갑작스럽게 취하해 상도동 측으로부터 어떤 물밑거래가 오고간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2009년에는 YS의 친아들이라 주장하는 김 아무개 씨(51)가 나타났다. 김 씨는 유년시절부터 YS로부터 물질적 지원 및 보살핌을 받아왔으며, 20세가 되던 해에는 YS가 직접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며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했다. 김 씨의 경우는 여전히 소송이 진행 중인 상태다. 아직까지 YS 측은 김 씨가 요청한 유전자 검사에 불응하고 있고, 7차례의 법정 출석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YS 측이 무대응으로 일관한다고 해도 친자확인소송의 경우 원고 측이 소송을 취하하지 않는다면 친자여부가 확인될 때까지 법정다툼이 계속된다. 김 씨는 친자 판정을 받기 전까진 소송을 취하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 씨는 지난해 12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어린 시절부터 YS와 암묵적인 약속을 주고받은 사실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김 씨는 ‘금전적인 약속이 오고 갔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아무런 이유 없이 전직 대통령을 상대로 법적인 싸움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돌려 답한 적이 있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두 차례의 친자확인소송으로 곤욕을 치른 YS가 사후에 불거질 수 있는 상속문제를 사전에 정리하려는 복심으로 ‘자식에게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언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손지원 기자 snork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