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계의 시선이 통합 국민은행의 2대 행장 후보로 지명된 강정원 내정자에 쏠려 있다.
국민은행 행장추천위가 임기 만료된 김정태 전 행장의 후임으로 강정원 전 서울은행장을 내정했지만, 노조 등의 반대로 인해 취임까지의 길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3개파(옛 국민은행 노조, 옛 주택은행 노조, 국민카드 노조)로 나뉘어진 국민은행 노조들이 강 내정자의 전력을 들어 도덕성에 딴지를 걸고 나섬에 따라 향후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최대 규모의 매머드 은행장으로 지목된 강정원 내정자가 과연 순탄히 은행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예정대로라면 강 내정자는 오는 10월 주총을 거쳐 11월부터 국민은행장으로 근무할 예정이다. 사실 강 내정자가 지목된 것은 국내 금융계에 하나의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준 이헌재 사단’의 탄생을 알리는 예고이기도 했고, 그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기도 했다. 이력면에서 보면 그는 우선 학창시절을 무려 4개국에서 보냈다. 초등학교는 일본, 중학교는 국내, 고등학교는 홍콩, 대학은 미국에서 보냈다.
그의 직장 경력도 만만치 않게 글로벌하다. 지난 79년 씨티은행에서 근무를 시작해 무려 16년 동안을 뱅커스트러스트그룹에서 근무했고, 지난 99년에는 국제금융센터 자문위원, 외국은행협회 위원 등을 거쳤다. 같은 해 도이치방크 그룹 한국대표를 맡았다.
이때까지 사실상 그는 국내 금융권과 인연이 거의 없는 셈이다. 지난 2000년 재경부 장관 자문기구의 위원을 맡아 서울은행장을 맡은 것이 국내 기업 첫 근무지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강 내정자가 ‘준 이헌재 사단’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 시기 때문이다. 당시 초대 금감위원장을 맡았던 이 부총리가 강 내정자를 서울은행장에 임명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강 내정자는 서울은행장을 끝으로 국내 금융계를 떠났지만, 2년 만에 국내 최대 은행의 내정자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김정태 전 행장을 이어 강 내정자가 지목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증권가에서는 일제히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외국계 증권사의 기대는 높았다.
도이치증권은 “강 내정자가 국내 은행장을 역임한 적이 있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무난히 수행하는 등 탁월한 경영 실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기대된다”고 말했다. LG증권 관계자는 “그가 국민은행이나 주택은행 출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보다 합리적으로 경영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 내정자의 소식이 전해진 지난 8일, 국민은행의 주가도 소폭 상승했다. 그러나 이 같은 얘기가 전해지기가 무섭게 노조측은 즉각 반기를 들고 나섰다.
국민은행 노조, 과거 주택은행 노조, 국민카드 노조 등 3사 등은 일제히 ‘내정자 결사 저지’라는 카드를 들고 나온 것. 물론 노조가 행장선임 등에 반대의견을 갖고, 출근 저지운동 등을 벌여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다르다는 것이 금융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노조가 강 내정자의 도덕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캐묻고 나온 때문이다.
국민은행 노조 관계자는 “강 내정자는 지난 2002년 서울은행장 시절에 공금을 유용한 혐의로, 감사원으로부터 주의를 받은 적이 있다”며 “도덕성이 결여된 사람이 국내 최대은행의 수장이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 서울은행 노조 관계자들과 접촉하고 있다”며 “강 내정자의 도덕성에 관해 집중적으로 파헤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조가 결사반대를 외치는 두 번째 이유는 명분론이다. 국민은행 노조는 행추위 관계자들이 단순히 외국인 주주들의 입맛 맞추기에만 치중한 나머지 리딩뱅크로서 공익 인식은 전혀 갖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노조는 이 대목에서는 김정태 전 행장에 관한 비판도 서슴지 않고 있다.
국민은행 노조 관계자는 “김 전 행장이 주주경영만을 앞세운 단기업적 주의, 외형적 성장 치중, 해외 컨설팅 만능 정책 등으로 인해 은행을 부실화한 적이 있다”며 “김 전 행장이 아직도 행추위에 손을 뻗쳐 강 내정자 선임에 한몫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부에서는 다른 얘기도 나온다.
은행 3사의 노조가 강도 높은 수준의 반대를 하는 진짜 이유는 구조조정 때문이라는 얘기가 바로 그것.
업계 한 관계자는 “국민, 주택 출신이 아닌 강 내정자가 선임됨에 따라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노조로서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옷을 벗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강 내정자는 과거 서울은행장 시절에 직원의 30%인 1천2백여 명을 구조조정한 전례가 있어 노조측으로서는 고민거리다.
강 내정자가 은행장에 선임되느냐의 문제는 주주들이 결정해야할 몫이지만, 직원들의 반대를 묵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번 인선은 여러모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