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측)이재오 특임장관 (우측)임태희 대통령실장 |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이번 인사쿠데타에서 노정된 여권 내부 권력 갈등이 더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물론 벌써 8번째 인사 낙마가 이어진 것에 대한 이 대통령의 외고집 인사원칙이 주요 비판대상이다. 하지만 이번 정 전 수석 낙마를 두고 ‘부하’들의 권력투쟁 때문에 대통령의 인사권이 물을 먹게 된 하극상으로 보는 견해도 많다.
특히 보고의제를 모두 ‘관리’하며 실질적 2인자에 오른 임태희 대통령실장에 대한 ‘정적’ 이재오 특임장관과 그의 아바타 안상수 대표의 기습공격이 이번 인사파문의 본질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자기정치에 몰두하는 양측의 권력 갈등은 이미 이 대통령의 ‘관리’ 수준을 넘어섰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동기 전 수석 낙마에 얽힌 인사쿠데타의 앞과 뒤를 추적해보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동기 전 민정수석을 감사원장으로 보내지 못한 ‘사건’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는 것이 이 대통령의 어설픈 권력 운용이다. 특히 집권 초기부터 여당인 한나라당에 대해 혐오에 가까운 거부정서를 보여 온 것이 이번 항명 사태를 부른 주요 원인(遠因)이라는 지적이 많다.
비즈니스맨 출신 이 대통령으로서는 ‘회장실’ 위주의 강력한 친정체제로 일거에 정국을 정리하고픈 마음이 늘 앞섰다. 하지만 ‘정치’에는 절차와 과정이 있다. 지난한 길이지만 인내와 타협으로 차선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여당은 ‘일만 열심히 하는’ 청와대를 사사건건 붙들고 늘어지는 진드기 같은 존재로 비쳐질 수 있다. 집권 초기 정무라인에 있었던 한 인사는 “청와대 보고서는 대통령 입장에서 쓰인다. 여당은 이해와 협조의 대상이 아니라 돌파와 회유의 공작대상으로 여긴다. 대통령은 항상 여당(여의도정치)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참모들도 여당보다 청와대 입장에서 정무적인 판단을 한다. 오랫동안 당에서 일한 인사도 청와대만 들어가면 여당을 마치 야당 대하듯 하더라. 당연히 당에서는 ‘우리 때문에 정권 잡아놓고 이제 와서 무시한다’는 배신감도 들게 마련이다. 청와대에 대한 이런 거부정서가 깊어진 게 결국 임기 2년이나 남은 대통령의 뒤통수를 치는 모험까지 감행하게 된 원인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사태가 있기 오래 전부터 주류인 친이계는 임태희 대통령실장의 ‘전횡’에 대해 칼을 갈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당의 입장이 반영된 보고서가 수시로 임 실장에 의해 차단돼 소외감이 극에 달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소장파와의 갈등 때문에 공개행보를 자제하고 있는 이상득 의원 대신 임 실장이 ‘만인지상 일인지하 대통령실장’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평가도 공공연하게 떠돌고 있다. 주류 친이계로서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내고 주인행세를 한다는 불만을 쏟아낼 만도 하다.
친이계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임태희 실장이 대통령을 잡고 있는 그립(골프클럽을 잡는 방식으로 일종의 장악력)이 굉장히 강하다. 국정을 다 잡고 있다. 아무도 못 이긴다. 대통령에게 보고할 게 있으면 임 실장이 사전에 의제를 모두 조율해서 올라간다. 옛날에는 다른 수석들이 마음대로 대통령 집무실을 출입했는데 요즘은 임 실장 허가 없이 못 올라간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박형준 이동관 전 수석들이 청와대로 복귀하려고 하니까 임 실장이 그렇게 견제를 했던 것 아니겠는가. 힘이 급격하게 임 실장 쪽으로 쏠리자 최근 들어 의원들끼리 사석에서 불만을 많이 토로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임 실장의 ‘일방독주’에 대해 당과 청와대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이재오 특임장관도 상당히 곤혹스러워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장관은 대통령의 특임을 맡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당 위주의 정권 재창출에 대한 열망이 강하기 때문에 청와대에 여당 목소리도 충실히 전달하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런 시도가 임 실장의 보고체계 장악 시스템에 눌려 몇 차례 좌절되는 과정에서 불만도 쌓여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장관 사정을 잘 아는 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장관이 최근 사석에서 ‘답답하다’는 말을 자주 토로했던 것으로 안다. 이 대통령에게 무슨 보고를 하려고 해도 임 실장 그룹이 모두 에워싸고 있으니까 굉장히 답답해했다는 것이다. 정권 출범 초기 이상득-소장파 갈등 과정에서 소장파들이 이 대통령에게 느꼈던 서운함이나 답답함을 이 장관이 똑같이 느끼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특히 이 장관으로서는 자신의 여권 내 2인자 지위가 임 실장에 밀리게 되는 상황까지 이르자 위기감마저 느꼈고, 결국 인사쿠데타를 감행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상황으로까지 몰린 것 아니겠느냐. 정치권에서 이번 정동기 낙마를 두고 ‘이 장관과 임 실장(이상득 의원) 간의 권력다툼 끝에 나온 인사파문’이라고 결론내리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재오 장관은 이런 양측 갈등설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평소 안상수 대표의 ‘내공’을 잘 아는 당 관계자들은 이번 인사파문이 ‘세입자’ 안 대표만의 힘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임태희 실장이 이상득 의원의 아바타라면 안상수 대표는 이재오 장관의 아바타다. 이렇게 보면 이번 인사 파동도 이상득-이재오의 대리전이었던 셈이다. 안 대표는 최고위원 회의에 들어오자마자 정 전 수석 임명과 관련해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서병수 정두언 최고위원 등이 ‘문제 있는 것 아닌가’ 정도로 얘기했는데 안 대표가 갑자기 내질러버린 것이다. 하지만 안 대표의 돌발행동이 독자적인 결정에서 나온 것으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배포도 없고 청와대를 거스를 만큼 대범하지도 않다. 이 장관의 ‘오더’에 따라 최고위원 회의 초반부터 작심하고 밀어붙인 것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번 인사 파문은 이 대통령의 당-청 간 적절한 균형과 견제 원칙의 권력 운용 실패, 2인자를 자임하는 이재오 특임장관의 정적 제거 전략에 의해 잉태된 측면이 강하다. 여기에 임태희 실장의 책임론도 거론된다. 비서형 참모인 그가 정무적인 판단까지 해야 하는 인사까지 모두 챙기다 보니 결국 ‘민심’과 동떨어진, 실패한 인사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7월 취임한 뒤 수석급 인사기획관 자리를 공석으로 둔 채 자신이 직접 주요 인사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첫 작품인 지난해 8·8 개각에서 김태호 신재민 이재훈 후보자가 무더기 낙마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그 뒤 자기 검증서를 200개 항목으로 늘리고 청와대 내부 모의청문회 제도까지 도입하는 등 나름대로 대비책을 세웠다. 하지만 이번엔 정동기 전 수석이 인사청문회를 해보기도 전에 여당 거부로 낙마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부르고 말았다.
청와대 주변의 한 여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지난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이후 ‘중립’이었던 임 실장을 비서실장으로 전격 발탁한 배경에는 행정고시 출신으로 재경부 과장까지 지낸 관료로서의 정제된 자세와 무거운 입, 성실함에 탁월한 의제 조율 능력 등이 있다. 이런 점에서 임 실장은 ‘의전비서형’ 참모다. 정통 정치인 출신의 정무형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지난 2010년 8·8 개각 때 한 차례 인사 파동을 경험한 뒤 200여 개의 검증항목을 만드는 것과 같은 ‘관료적’ 대비책을 세웠다. 정작 민심을 날카롭게 읽어내는 정무적 대비는 전혀 하지 않아 이번에 민심의 역풍을 맞은 것 아니겠느냐. 정무감각이 떨어지는 임 실장이 중요한 인사를 매번 그르치고 있다는 여당 일각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임 실장이 두 번이나 인사 실패를 거듭하자 청와대 기자들과 행정관들 사이에서는 “이쯤 되면 참모 한두 명이 사표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내기까지 했다고 한다. 결과는 이 대통령의 ‘고집’을 잘 알고 있는 일부 행정관의 ‘승’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이번 인사 참사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이명박 정부는 국회에 제출한 60건의 인사청문요청안 가운데 8명이 탈락하는(11.6%) 최악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반면 이 대통령이 ‘뭐든 해도 노무현보다는 잘할 자신이 있다’(2005년 서울시장 재직 때 한 사석에서의 발언)며 무시했던 노무현 정부는 58건의 인사청문요청안 가운데 단 두 건만(3.4%) 실패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임태희식 언론플레이 ‘쑥덕’
정동기 전 민정수석이 감사원장 후보자 자리에서 사퇴하기로 한 날, 여야에서는 임태희 대통령실장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게 일었다. 하지만 그날 이명박 대통령이 임 실장의 비서동 집무실을 직접 방문해 힘을 실어줌에 따라 문책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버렸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임 실장이 이번 인사파문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통령의 동정까지 언론에 흘리며 ‘자기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와 임 실장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소장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통령이 비서동까지 내려와 임 실장을 격려한 것은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라는 뜻이다. ‘밖에선 임 실장 자르라고 하지만 내가 조용히 너희들을 방문해 신임을 줬으니 흔들리지 말고 일을 하라’는 것 아닌가. 이는 대통령과 실장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사적 스킨십이다. 그런데 임 실장의 행동은 대통령 방문 사실을 알리며 ‘봐라, 내가 죄가 없다는 것을 대통령이 직접 방문하면서까지 확인해주지 않느냐’며 시위하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는 비서로서 대통령을 위하는 게 아닌 자기정치를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참모로서 기본상식이나 철학이 없다. 이 문제를 당 사람들에게 얘기했더니 공감을 많이 하더라”고 전제하면서 “더구나 대통령 방문 사실을 언론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일부 유력 일간지에만 ‘정보’를 흘려 다른 취재기자들의 원성을 산 것도 매끄럽지 못한 처신이다. 이런 임태희 실장 체제를 대통령이 감싸주는 것도 국민들은 우습게 본다”라고 말했다.
한편 임 실장의 언론플레이 논란은 청와대 기자실에서 먼저 나왔다. 임 실장이 대통령의 비서동 방문을 일부 거대 일간지에만 ‘선별적으로’ 흘려 언론플레이를 했다는 것이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한 기자는 이에 대해 “그날 오후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대통령의 임 실장 집무실 방문을 브리핑할 때는 ‘대통령이 임 실장실에 가서 참모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구체적 상황을 물어보고 했다’라는 정도로 했다. 그런데 다음날 일부 보수 일간지에서는 ‘흔들리지 말고 일에 집중하라’와 같은 대통령의 워딩 자체가 나갔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임 실장 측에서 영향력 있는 일부 언론에만 선별해서 방문 사실을 흘렸든지, 아니면 그들 전화만 골라서 받아 정보를 독점으로 주는 경우다. 결국 다른 언론사들이 물 먹은 꼴이 됐다. 그래서 일부 기자들이 차별대우에 화를 내기도 했다. 청와대 출입하면서 이런 유력 언론사 위주 취재 편의 제공을 다반사로 봤기 때문에 별로 놀라지는 않았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측은 이에 대해 “정상적인 취재 편의 제공이었지 다른 문제는 없었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