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 공무원들에 대한 인사 칼바람이 불고 있다. 사진은 과천종합청사 내의 각 부처 위치 안내도. |
한국 경제의 방향타를 조정하는 기획재정부는 지난 9일 대규모 과장 인사를 하면서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재정부는 이번 인사에서 13개 실·국 내 과장급 94명 중 절반에 가까운 46명을 교체했다. 이것만으로도 부처 내부가 ‘흉흉’할 판인데 이번 인사에 행정고시 기수나 직전 보직과 관계없이 각 실장과 국장이 직접 적임자라고 생각하는 과장을 발탁하는 ‘드래프트제’를 실시하면서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세 군데 이상에서 같이 일하고 싶다고 요청을 받은 과장이 있는가 하면 어느 곳에서도 데려가지 않으려는 과장이 있다 보니 서로 말을 섞기 어려워진 탓이다.
특히 그동안 인사 관행을 깨고 과장직을 배치한 것도 을씨년스러움을 배가시켰다. 재정부 과장급 인사는 대부분 직제표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이 그동안의 관례였다. 정책조정국을 예로 들면 정책조정국 직제표는 정책조정국장-성장기반정책관(국장급) 아래에 정책조정총괄과장-산업경제과장-신성장정책과장-지역경제정책과장-서비스경제과장-기업환경과장 순으로 되어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과장은 아래부터 한 단계씩 올라가 정책조정총괄과장을 맡게 된다. 이처럼 국장 바로 밑에 있는 과장을 주무과장이라고 부르는데 주무과장을 맡았는지 여부는 향후 국장 이상 공무원 생활을 해나가는 데 중요한 잣대가 된다.
그런데 이번 인사에서 이러한 순서를 깨고 주무과장을 꿰차는 과장들이 생겨나면서 재정부 내부가 출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번 인사에서 13개 실국의 주무과장 중에서 무려 8명이나 교체됐다. 상당수는 앞에서 설명한 대로 아래에서부터 차곡차곡 경력을 쌓아 이번에 주무과장이 됐다. 국제금융국의 주무과장인 국제금융과장에 바로 아랫단계인 김이태 외화자금과장이 선임된 것이나 공공정책국 정책총괄과장을 이준균 제도기획과장이 맡은 것은 이러한 관례에 따른 인사였다.
하지만 정책조정국의 주무과장인 정책조정총괄과장에는 나석권 전 국제통화기금(IMF) 이사 보좌관이 발탁됐다. 나 과장은 금융정책국과 경제협력국, 자유무역협정(FTA) 대책본부를 거치면서 업무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번 인사에는 다들 놀라는 분위기다. 국고국 주무과장인 국고과장에 이동재 예산실 지식경제예산과장이 자리 이동한 것도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이번 드래프트제도 도입으로 그동안 주로 행시 32∼33회가 중심이던 주무과장은 36회(김이태 과장)까지, 나머지 과장은 39회까지 낮아졌다. 여차하면 주무과장도 못 달아보고 자리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아예 공무원을 퇴출시키는 부처도 생겨나면서 공직사회는 더 을씨년스럽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1월 업무능력과 근무태도가 불량한 5급 이상 간부 공무원 8명을 퇴출시킨 데 이어 12월에는 6급 이하 공무원 5명에 대해 퇴출 결정을 내렸다. 노동부는 지난 4월부터 업무태도가 좋지 않은 4급 서기관 4명, 5급 사무관 18명 등 22명에 대해 재교육을 실시했다. 8월부터는 근무태도가 불량한 6급 이하 22명에 대해 재교육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4급 서기관 1명과, 5급 사무관 7명 등 총 8명을 사직 대상자로 최종 분류하면서 공직사회가 술렁거렸다. 그런데 6급 1명, 7급 4명 등 총 5명을 추가로 퇴출시키기로 하자 동요는 더욱 커졌다. 특히 이들은 대부분 30∼40대여서 20년 이상 근무해야 나오는 공무원 연금도 바라기 어려운 처지인 탓이다.
최근에는 교육과학기술부도 업무역량이 낮은 공무원을 퇴출시키겠다고 밝혀 공직사회는 고양이 앞에 쥐처럼 얼어붙어 있다. 교육부 본부와 국립대학 등에 근무하는 4~5급 직원 1100명을 대상으로 5월까지 직무태도를 평가해 하위 5∼10%에 대해서는 6∼7월까지 재교육을 실시하고, 그래도 나아지지 않으면 인사조치하겠다는 것이다.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능력을 중요시하는 인사로 변화를 하겠다는 기본 취지는 좋지만 이러한 인사 혁신을 집권 초기가 아닌 집권 말에 시작한 것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집권 말에 일어나는 레임덕을 막기 위해 공무원들의 군기를 바짝 조이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일을 잘 못한다고 낙인이 찍히는 것도 향후 공직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이 크지만, 다 끝나가는 정권에서 주요 업무를 맡는 것도 부담스러워 다들 고민이 깊다”고 털어놨다.
김서찬 언론인 webmaster@ilyo.co.kr
‘그 빚이 그 빚이 아니야’
오는 1월 26일 개최되는 재정통계 개편안에 대한 공청회를 앞두고 기획재정부가 국가채무에 대한 설명을 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재정부는 공청회에서 의견 수렴을 한 뒤 2월 중 국가채무 범위를 최종적으로 확정해 관련법을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재정부가 재정통계 개편을 앞두고 바싹 긴장하는 것은 재정통계 개편이 이뤄지면 국가채무가 늘어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개편과 함께 새롭게 기준이 되는 국제통화기금(IMF) ‘GFS01’은 발생주의를 원칙으로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기준으로 삼는 GFS01을 적용하면 당장 지출되지 않더라도 각종 사업 계약 등을 통해 지출이 예정된 금액도 국가채무로 잡게 된다.
재정부의 고민은 마치 정부가 부채를 숨겨왔다는 식으로 내비치는 것이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비용 지출(GDP 대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던 정부로서는 재정건전성을 속이기 위해 부채를 숨겼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또 이 기준이 2011년도 결산부터 적용되면서 총선과 대선에서 국가채무가 야당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재정부 관료들은 기자들에게 수시로 “기준이 바뀌게 되면 채무가 늘어나겠지만 이는 기준이 달라서 크게 늘어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 전년도 이 기준을 적용해 시계열을 만들면 그리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 설령 늘어나더라고 이것은 정부가 숨기거나 한 것이 아니라 시각이 바뀌면서 새롭게 나타난 것”이라면서 ‘예방주사’를 놓고 있다. 또 정부가 절대 국가채무에 대해 숨기는 일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듯 26일 열리는 재정통계 개편안 공청회에 이한구 의원 등 국가채무에 비판적인 정치인이나 전문가들도 초청하겠다는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