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CES 2011’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왼쪽)이 삼성전자 부스를 방문해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 참관자들과 함께 최근 IT 기술 동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삼성 |
미국 라스베이거스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 참가했던 삼성전자 이재용 사장이 지난 7일 기자들에게 던진 ‘일성’이다. 사장 승진 후 사실상 처음으로 기자들과 대면한 이 사장은 아버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도전정신을 화두로 내걸며 보다 적극적인 경영 활동에 나설 것임을 예고했다.
2011년 이 사장이 짊어진 짐은 어느 해보다도 무거워 보인다.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그의 경영 능력에 대한 의문들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사장이 이러한 세간의 논란을 잠재우며 당당히 삼성그룹의 총수가 되기 위해서 올 한 해 갈 길이 짧지 않아 보인다. 승진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을 둘러싼 삼성그룹 내부의 움직임을 조명했다.
이건희 회장은 고 이병철 선대회장으로부터 삼성을 물려받은 후 IT, 반도체 사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며 삼성그룹을 글로벌 기업군으로 도약시켰다. 그러나 지금까지 꾸준한 성장세를 지켜왔던 것과 달리 삼성그룹의 성장이 고점을 찍었고, 중장기 성장 동력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선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시장이 이재용 사장에게 거는 기대는 이런 부분과 무관치 않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내 삼성을 ‘100년 기업’으로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그의 어깨에 얹어진 것이다.
그런데 외부에서는 이재용 사장과 관련해 ‘경영능력’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 ‘이재용 사장이 과연 막중한 책임을 충분히 감당할 만한 사람인가’라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부정적인 목소리가 작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눈에 띄는 성과가 없을뿐더러, 이 사장의 주도로 진행했다 실패했던 ‘e-삼성’ 사업은 그에게 주홍글씨처럼 남아 있다.
그렇다면 과연 내부에서 이 사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떨까. 삼성그룹 계열사의 고위관계자는 외부의 시각과 사뭇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는 “‘이재용 사장의 경영 능력이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언론 보도 등은 삼성그룹의 시스템을 잘 몰라서 하는 얘기”라며 “삼성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전문 경영인들이 알아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발 더 나아가 “오너의 경영 능력 운운하는 것은 1~2세대 재벌들에 국한된 얘기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재용 사장의 능력은 삼성그룹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면서 “이 사장이 큰 방향을 제시하고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주는 상징적 역할만 해줘도 자기 몫은 다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언론 등에서 그의 경영 능력을 평가하는 기사들이 쏟아지지만 삼성 내부에서는 이와 상관없이 이재용 사장으로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젊은 삼성’으로 대표되는 지난 연말 인사는 차치하더라도 삼성그룹 곳곳에서 ‘이재용 사장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은 끊임없이 포착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삼성그룹이 확대키로 한 ‘해외 지역 전문가 제도’가 눈에 띈다. 삼성그룹의 한 핵심 계열사는 최근 해외 지역전문가 20여 명을 선발했다. 이는 예년보다 두세 배 정도 늘어난 인원이며 직급도 사원, 대리급에서 과장급으로 상향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지역 전문가 제도는 삼성그룹의 ‘세계화를 위한 현지화’ 전략으로 꽤 오래 전부터 실시하고 있는 제도다. 이건희 회장이 ‘세계시장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에게 뒤처졌다’며 전체 그룹사의 해외 조사 기능 강화를 지시하자 삼성은 이에 대한 후속 조치로 해외 지역 전문가 제도를 기존보다 확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도를 이 사장과 연관 지어 볼 수 있는 이유는 세계 각지에서 삼성그룹의 ‘눈과 귀’ 역할을 할 이들이 수년 내에는 삼성그룹 내 핵심조직의 실무자가 될 것이고 결국 이 사장의 ‘손과 발’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그룹 핵심 고위층은 여전히 이건희 회장의 인물들로 채워져 있지만 향후 이 사장으로 경영권이 완전히 넘어가면 해외 지역 전문가들은 이 사장의 측근으로 전진 배치될 것이라는 게 삼성그룹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즉 삼성 외부에서는 이 사장의 경영 능력 검증이 향후 삼성그룹의 최대 과제인 것처럼 주장하지만 정작 삼성 내부에서는 ‘경영능력 검증은 불필요한 얘기이며 이재용 체제 안착이 최우선 과제’라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건희 회장은 이재용 사장이 대외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실적과 함께 남매간의 경쟁을 통해 이 사장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장의 경쟁 대상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이 사장의 첫째 여동생인 이부진 호텔 신라 사장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이부진 사장은 삼성그룹 내부에서 유례없는 초고속 승진을 하고 있다. 삼성 전 계열사를 통틀어 최초의 여성 사장이 되었으며, 전무에서 부사장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역시 전례 없는 일이다. 그의 승승장구는 호텔신라, 삼성에버랜드에서 보여준 실적이 뒷받침하고 있다. 동생의 눈부신 발전은 오빠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삼성그룹 내부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과거 신경영의 핵심 화두로 삼았던 ‘메기론’이 최근 회자되고 있다. 연못에 메기를 풀어 미꾸라지를 단련시킨다는 메기론에서 이부진 사장이 메기에 비유되는 것이다.
이부진 사장이 ‘리틀 이건희’로 불릴 만큼 승부욕이 강하고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을 보인다면 이재용 사장은 부드러운 리더십이라는 게 삼성 안팎의 평가다. 이런 이 사장에게 이 회장은 보다 ‘터프한 리더십’을 발휘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장이 지난 CES에서 이 회장의 도전정신과 경쟁심을 언급한 것도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도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그룹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고 이병철 창업주가 삼성그룹을 만들고 이건희 회장이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면서 “이제 삼성그룹이 어떤 기업으로 나아갈 것인지는 이재용 사장에게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장으로 승진한 첫 해 이 사장의 행보에 안팎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이유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