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모략의 대가 박지원 대표의 ‘야바위 정치’를 아직도 믿는 사람이 있느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 정진석 정무수석 역시 “허위 폭로로 사과까지 한 일을 이런 식으로 덮어보려는 저급한 정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국정 파트너인 야당 원내대표에게 저속한 표현으로 비난을 계속하면 청와대에 대해서도 똑같은 수준의 말로 반격하겠다”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청와대가 이처럼 박 대표를 향해 강도 높은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쌓인 해묵은 감정과 무관치 않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관측이다. 박 대표는 지난해 5월 취임 이후 여권과 끊임없이 신경전을 벌여왔다. 인사청문회에서 여러 후보자들을 낙마시키는 데 앞장서며 여권을 곤혹스럽게 했고, 지난해 10월엔 중국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평화의 훼방꾼’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는 주장을 펼쳐 청와대와 날선 공방을 벌였다.
특히 박 대표의 ‘진가’는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대포폰 사용 논란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박 대표는 몇몇 민주당 의원들을 진두지휘하며 연일 새로운 의혹을 폭로해 정국 주도권을 잡아 나갔다. 이러한 ‘활약’ 덕분에 박 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고 여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정치인으로 꼽혔다. 박 대표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동교동계의 한 전직 의원은 “국민의 정부시절 핵심 요직을 거치면서 국정이 돌아가는 것을 잘 안다. 또 당시부터 쌓은 인맥이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 정보력이 박 대표 전성기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앞서의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민주당이 출처를 (청와대라고) 주장한 이후 여권 일각에서조차 정보 제공의 배후로 청와대를 의심하고 있다. 당·청 관계가 더욱 악화된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에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박 대표에 따르면 정권 출범 이후 여러 번 정보를 제공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박 대표에게 새어나갈 수 있다는 얘기 아니냐. 우리로서는 (빨대를) 찾아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털어놨다.
현재 청와대는 임태희 비서실장과 민정실 주도하에 광범위한 내부 감찰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박 대표가 언급했던 ‘제보자’를 찾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한 행정관이 민주당의 P 의원과 여러 차례 접촉했던 정황이 포착돼 관심을 끌고 있다. 박 대표와 마찬가지로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근무 경력이 있는 P 의원은 고급 정보를 많이 보유하고 있어 민주당 내에서 ‘숨은 고수’로 불리는 인물. 청와대 내 동향은 박 대표보다 더욱 자세히 알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청와대 인사들에 따르면 P 의원은 지난해 대포폰 사용 의혹, 그리고 최근 안 대표 차남 로스쿨 입학 등을 민주당이 폭로하기 전에 제보자로 지목받고 있는 행정관과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일단 청와대는 P 의원과 그 행정관 사이를 입증할 만한 구체적인 물증 확보에 주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집권 4년차를 맞아 청와대뿐 아니라 국세청 검찰 국정원 등 다른 사정기관의 정보 유출 방지를 위한 대책도 마련 중이다.
이와는 별개로 청와대는 민주당의 ‘컨트롤 타워’ 박 대표의 활동 반경을 좁히기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도 전해진다. 정권 초부터 꾸준히 수집해 왔던 박 대표 관련 ‘X파일’도 그중 하나다. 여의도 주변에선 청와대가 이른바 ‘박지원 X파일’ 중에서 가장 파급력 있는 것들로 추려 확인 작업에 나섰고 곧 공개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한 상태다. 그동안 정치적 부담 때문에 머뭇거렸지만 어차피 칼을 빼들기로 한 이상, 속전속결로 진행될 것이란 추측도 나오고 있다.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서부지검에서 실시하고 있는 대기업 수사,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대북송금 사건, 국민의 정부 시절 무기사업 등이 박 대표 앞을 가로막을 청와대의 ‘무기’가 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사정기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뿐 아니라 다른 사정기관들도 박 대표 주변을 철저하게 ‘스크린’하고 있다. 대여투쟁을 이끄는 박 대표를 압박하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이러한 청와대 움직임에 대해 박 대표 측은 자신만만해하는 기류가 엿보인다. 한미 FTA 비준안 동의, 과학비즈니스벨트 문제 등 산적한 현안 처리를 앞두고 협상 파트너인 박 대표에게 현 정권이 강하게 나오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가 그동안 자신과 관련한 여러 의혹들을 파헤쳤음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는 점도 박 대표가 느긋해하는 이유다. 실제로 박 대표는 지난해 말 측근들과 함께 한 식사자리에서 “이명박 정부가 나를 샅샅이 조사했어도 뭐가 걸리는 게 있었느냐. 나는 떳떳하다. 나를 믿고 따라와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당시 민주당 일각에서 ‘조만간 박 대표 비리가 터질 것’이란 소문이 불거지자 박 대표가 직접 측근들을 안심시키며 진화에 나섰던 것이다.
또한 박 대표는 내부 제보자와 관련해서도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한다. 박 대표의 한 측근은 “청와대 비서실장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보통 이런 경우 제보자를 찾아도 고민이다. 그만큼 내부 기강이 흐트러졌다는 방증 아니냐. 그렇다고 찾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점에서 청와대 고민이 깊을 것이라고 박 대표가 말하더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내부에선 박 대표가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현 정권이 작정을 하고 달려들면 어찌 됐건 박 대표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를 공격할 ‘히든카드’를 더욱더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 대표 역시 이에 공감하고 최근 ‘전투력’을 더욱 끌어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대통령 ‘형님’ 이상득 의원과 ‘왕차관’ 박영준 지식경제부 2차관 관련 문제에 대해 정보력을 총동원, 집중 추적하고 있다. 박 대표 측근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형님라인의 인사 전횡과 정경유착 등이 핵심이 될 것이다. 시중에 설만 무성했던 소문들에 대해 여러 루트를 통해 확인 중”이라고 귀띔했다. 또한 박 대표는 2008년 총선 과정에서 한나라당의 불법 공천 여부, 공기업이 발주한 대형 건설 사업에서의 현 정권 실세 특혜설 등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