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높은 덕유산은 무주 거창 장수 함양 등을 아우른 품이 넉넉한 산이다. '덕이 많은 산'이라는 이름처럼 그 산에 기대어 살아온 사람들에겐 산이 내어준 것만으로 부족함이 없다. 초여름을 맞은 생생한 초록의 풍경속 산이 허락한 그대로 순하고 너그럽게 살아가는 덕유산 사람들의 소박한 산중진미를 만난다.
해발 1614m 덕유산 최고봉 향적봉. 이곳에 오르면 20년째 향적봉 대피소를 지키고 있는 산장지기 박봉진 씨를 만나볼 수 있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숙박은 중단된 상태지만 오가는 등산객들을 위한 작은 쉼터는 여전히 운영 중이다.
홀로 대피소를 지키는 일은 고단하기만 하나 산중 맺은 인연으로 살아간다는 박봉진 씨. 간단한 밥에 친구들이 가져다준 반찬만 곁들여도 별미가 된다. 박봉진 씨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함께 취나물라면, 능이백숙, 그리고 탕국을 끓여 먹었다.
특히 탕국은 박봉진 씨가 산행을 다니던 시절 가볍게 들고 다니기 좋아 자주 끓여 먹던 것이라고. 산 사람들의 추억이 담긴 음식들이 밥상에 오르고, 산에서 즐기는 멋과 낭만이 몸과 마음을 채운다.
물이 많은 덕유산의 구천동 계곡 옆 우뚝 솟은 집 하나가 눈에 띈다. 25년째 눈만 뜨면 산으로 간다는 김옥순 씨의 집이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아들 둘을 키웠다는 김옥순 씨.
그런 김옥순 씨의 삶의 지탱이 되어준 것이 바로 덕유산이 내어준 산나물이다. 고산지대에서만 자란다는 우산나물부터 고사리, 옻순 등 산이 내어준 나물들로 풍요로운 봄날, 눈물나는 인생, 넉넉하게 품어준 덕유산 덕분에 희망을 품고 살았다는 김옥순 씨가 차려낸 소박한 나물 밥상을 만난다.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경계에 자리잡았던 덕유산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오가던 소통의 길이었다. 덕유산 아래의 첫 동네로 불리는 거창 빙기실 마을은 무주와 거창을 오가던 산길에 옛 주막터가 남아 전해오는 곳이다.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얼음처럼 차갑다 해서 이름이 붙은 빙기실계곡은 길을 오가던 사람들에겐 땀을 식히는 쉼터였고 마을사람들에겐 추억의 놀이터이자 삶의 터전이었다. 계곡에서 민물고기를 잡아오는 날은 그날이 잔치날.
솥에서 어탕이 끓을때면 아궁이불에는 꼬챙이에 끼운 산메기며 중태를 구워 먹곤 했다. 마을에서 재배한 산양삼을 넣어 끓인 어탕국수는 여름맞이 보양식으로 일품. 가죽나물에 양념한 찹쌀풀을 발라 말린후 기름에 튀겨먹는 가죽자반과 고추씨를 발라내고 밀가루를 입혀 구운 고추부적은 점점 사라지는 마을의 옛 음식들.
어르신들의 기억속 음식들을 배우고 있는 마을 젊은 일꾼들은 요즘 특별한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평생 살아온 마을에서 생애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마을 돌봄센터를 운영하는 것.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며 서로를 보듬어 안고 살아가는 빙기실 사람들의 마음 넉넉한 여름밥상을 만난다.
덕유산 자락 통안골이라 부르는 산중 깊은 곳에 산비탈을 뛰어다니며 자라는 흑염소들이 있다. 650주 고추순을 다 뜯어먹을 만큼 말썽꾸러기인 흑염소들을 관리하고 있다는 박계훈 씨. 산중 생활에 돌입한 지 어언 16년 차. 고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산악회 활동을 하며 산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갔던 박계훈 씨는 직장 생활을 그만둔 후 산으로 돌아왔다.
3년간의 산악 훈련 끝에 에베레스트 등반까지 이뤄낸 박계훈 씨. 도시에서 사는 동안 늘 흑염소의 자유로움이 부러우셨다고. 흑염소는 지방이 적기 때문에 따뜻하게 구워서 먹어야 한다는 박계훈 씨가 자신 있게 추천하는 흑염소수육이다.
오가피나무와 양파, 마늘을 함께 푹 끓여내 부추와 함께 곁들인다. 오가피나무를 키우고 밭농사에 흑염소들까지 하루해가 모자랄 만큼 바쁘게 살지만,] 산속을 자유롭게 뛰노는 흑염소들과 인생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부부의 행복 가득한 산중 진미를 맛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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