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창출 연계 비전문인 투입, 삭제 비율 낮아…피해 영상 또 다른 ‘노출’ 지적도
최근 각 지자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인 ‘디지털 성범죄 시민 모니터링단’ 사업이 행정적 착오에 빠져 주객이 전도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n번방 사건 이후 전국에 우후죽순으로 도입된 디지털 성범죄 시민 모니터링 사업은 일반 시민이 직접 온라인에 퍼진 성착취 영상을 감시하고 이를 신고함으로써 디지털 성범죄를 예방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찾아낸 불법 촬영물 및 피해 영상을 신고하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서 심의를 통해 해당 플랫폼에 삭제를 요청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일부 지자체가 모니터링 사업을 일자리 사업과 연계해 실적을 올리거나, 제보 건당 금액을 지불하는 등 성폭력 피해자 지원이나 디지털 성범죄 근절에 대한 본질적 고민 없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시는 지난 5월 디지털 성범죄 대응 사이버감시단을 모집하면서 1인당 월 25건 이상 실적을 달성할 경우 24만 원의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인천시의 경우 2020년 8월부터 11월까지 디지털 성범죄 예방 온라인 청년감시단 사업을 지자체 일자리 사업과 연계해 진행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희망일자리 사업의 하나로 감시단을 마련했다는 것이 당시 인천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즉, 청년들에게 4개월의 단기 일자리를 제공하고 디지털 성범죄 모니터링 사업과 일자리 사업 실적을 동시에 낸 셈이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는 “지원자에게 제보 건당 금액을 제공하거나 일자리 사업과 연결해 진행하는 모습은 사이버 성폭력 근절보다 각 지자체의 사업 진행이 우선이라는 주객전도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일부 지자체에서는 모니터링과 삭제지원은 피해자가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공적 권리다. 그런데 이것이 개개인의 영리 목적으로 정책화 되어가는 양상은 공공 삭제지원이 있기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모니터링단 지원에는 특별한 자격 요건도 없는 경우가 다수였다. 20세 이상의 성인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으며 일부 지자체에서는 경력 단절 여성을 우선으로 뽑기도 한다. 선정된 뒤에도 간단한 교육을 받는 것이 전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원자가 어떤 생각이나 의도를 가지고 사업에 참여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통상적으로 4~6개월의 활동 기간이 끝나면 그 다음 기수가 들어와 모니터링을 한다.
훈련된 인력이 아니기 때문에 모니터링을 하는 과정에서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도 있다. 2020년 서울시의 ‘디지털 민주시민모니터링단’으로 활동했다는 20대 여성 A 씨(26)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는데, 매일 수십 개의 피해 영상을 보다 보니 정신적으로 힘들었다”며 “우연히 사촌동생과 닮은 피해자가 나온 영상을 본 뒤로는 영상 속 피해자가 나와 머리 길이만 비슷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모니터링을 하면서도 ‘우리 가족이나 내가 나오는 찍힌 영상을 발견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 시달려 점점 활동 시간을 줄이기도 했다”고 트라우마를 털어놓았다.
이효린 한사성 국장은 “불법 촬영물은 여성의 신체를 성적으로 소비하고 시청함으로써 벌어지는 범죄이기 때문에 이를 감시하는 지원자의 여성주의적 관점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시민 모니터링단 사업의 경우 이에 대한 구체적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 활동 이후 수반될 수 있는 지원자의 정신적 고통이나 트라우마에 대처할 방안도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렇다 보니 일부 피해자들은 “피해 영상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불법 촬영물 유포로 수년간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B 씨는 3일 일요신문과 만나 “사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모니터링만을 위해 너무 많은 비전문 인력이 투입되는 것은 반대한다”며 “유포된 불법 촬영물을 완전히 삭제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이미 지난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이런 와중에 수천 명의 불특정 다수가 일부러 나의 영상을 찾아보고, 신고하고, 삭제가 되지 않으면 또 그 다음 수천 명이 영상을 찾아보고 신고하는 행위가 반복되는 것은 괴롭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영상이) 최대한 적은 사람들에게 노출되길 바랄 뿐이다. 감시 및 삭제지원은 수사기관이나 여성단체 등 전문 기관에서 받고 싶다”고 말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모니터링 사업에 비해 삭제되는 불법 촬영물이 미미하다는 것도 문제다. 2020년 서울시 디지털 민주시민모니터링단 752명이 신고한 4232건의 디지털 성범죄물 가운데 실제로 삭제조치된 것은 592건으로 전체 13.9%에 불과했다. 2018년 서울시가 발간한 디지털 성범죄 유통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유해사이트는 9.15%, SNS의 경우 4.35%밖에 되지 않았다. 국내법 적용을 받는 웹하드의 경우 신고 대비 삭제 비율이 97.65%로 비교적 높았으나 제목을 변형해 다음날 다시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삭제지원은 신고 시 해당 사이트를 차단하거나 삭제 권한이 있는 플랫폼 운영자에게 삭제를 요청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삭제에 어려움과 시간 소요가 따름은 물론이고, 삭제가 된다고 하더라도 온라인 공간의 특성상 해당 촬영물이 언제 다시 유포될지 짐작이 불가능하다.
한편 불법 촬영물 삭제 업무를 하는 방심위는 5개월째 5기 심의위를 구성하지 못해 업무 공백이 길어지고 있다. 방심위가 최근 공개한 ‘심의 관련, 누적 민원 및 안건 현황’에 따르면 1월 30일부터 5월 31일까지 심의 대기 중인 디지털 성범죄 정보 관련 민원은 총 9038건이다. 이는 방송 관련 민원 7982건보다 많은 수치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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