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운행 탓 수익 보전금 수백억 달할 전망도…정부, ‘삼성역 개통 지연’ 서울시에 구상권 청구 가능성 제기
차내에서 만난 승객 A 씨는 “업무차 한 주에 3일 정도 GTX를 타고 강남과 동탄을 오가고 있는데 내가 탄 칸에 혼자 앉아 있을 때가 적지 않다”며 “이런 수준에서 과연 노선 운영이 가능할지 걱정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30일 개통한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A노선 수서~동탄 구간의 하루 평균 승객 수는 평일 기준 7705명을 기록 중이다. 이는 개통 전 국토교통부의 예측치(2만 1523명)의 35.8%에 그친다. 주말 등 휴일에는 조금 더 많은 1만 394명(1일 평균)이 탑승했지만 이 역시 당초 예측치(1만 6788명)의 62%에 불과하다.
GTX-A 이용객이 정부 기대치를 크게 밑돌면서 적자 운영에 대한 우려가 치솟고 있다. 최대 원인으로 지목되는 서울 강남구 삼성역 개통 지연이 2028년에나 해결될 것으로 예상돼 올 12월 서울역~운정(파주) 구간 추가 개통 후에도 상당한 적자 운영이 예상된다. 강남권으로 출퇴근하는 승객을 수송할 수 없는 데다 전체 노선이 한강 이북과 이남으로 ‘두 동강’ 나 ‘반쪽 운행’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손실보상 책임’ 문제가 개통 초기부터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를 압박하고 있다. 국토부가 GTX-A 민간운영사인 ‘에스지레일(SG레일)’을 상대로 연간 수백억 원의 운영이익 손실분을 보상하기 위해 개통 지연에 책임이 있는 서울시에 구상권을 청구할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2018년 국토부가 에스지레일과 체결한 ‘GTX-A 민간투자사업 실시협약’에 따르면 정부는 민간운영사가 전 구간 운영을 수행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민자건설구간(삼성~운정) 완공 전 국가재정 건설구간(삼성~동탄)을 미리 완공해야 하며, 만약 개통이 안 돼 순운영이익이 감소하면 정부가 이를 보전하도록 돼 있다.
민자건설구간은 오는 12월 완공돼 운행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바로 이때부터 정부의 이익손실 보전 책임이 발생한다. 업계 안팎에서는 삼성역이 개통하는 2028년까지 정부가 지급해야 하는 수익 보전금은 적게는 500억~600억 원, 많게는 1000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삼성역 개통 지연 책임의 상당 부분이 GTX 삼성역 등 ‘영동대로 지하 복합개발사업’을 지연시킨 서울시에 있다고 보고 있어 서울시를 상대로 구상권 청구에 나설 가능성은 있지만 현재 구체적 방안 마련에 나선 단계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국토교통부 철도국 관계자는 24일 통화에서 “삼성역 개통 지연의 책임이 서울시에 어느 정도 있으니 여기서 발생하는 손실보상금에 대해 서울시가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있고, 그 부분에 대해 정부가 서울시에 구상권을 청구할 가능성은 있다”며 “다만 구상권 청구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협의하거나 검토한 바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 정부가 지급해야 할 운영손실 보전금액 규모에 대해서는 “향후 운영실적에 따라 보상금액이 산정되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확정적으로 예측해 발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정부의 구상권 청구설 확산을 강하게 경계하는 분위기다. 서울시 균형발전본부 관계자는 “정부가 구상권 청구를 검토한다는 최근 언론보도가 있었지만 국토부는 검토한 바가 없다는 것이 공식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부가 구상권 청구에 나설 것으로 가정해 서울시와 (갈등)문제가 있는 것처럼 논란이 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역 개통 지연에 대한 서울시의 책임 비중에 대해서는 정부와 ‘공동 사업’임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영동대로 복합개발사업은 GTX-A노선뿐 아니라 GTX-C노선과 다른 도시철도 노선이 동시에 들어오는 시설로, 서울시의 단독 사업이 아니라 2016년부터 국토부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함께 진행하는 사업”이라며 “목표로한 시점(2028년)에 정상 완공되도록 정부와 잘 협력해 마무리하겠다는 답만 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정치권에서는 민간운영사에 대한 손실보전 책임을 서울시가 상당 부분 책임지는 것이 맞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지권 전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부위원장은 “과거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에서 영동대로복합개발을 계획할 때 공사 소요 기간과 방법 등에 대한 계획이 모두 있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생긴 문제”라며 “그렇다면 정부보다 서울시가 더 많이 책임을 떠안아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서울시 간 책임 비중보다 정확한 지연 원인부터 따져 상세히 알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한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영동대로 지하 복합개발 공사 지연이 GTX-A 완전 개통 여부에 엄청난 영향을 준 것은 사실로, 정확한 사유를 밝혀 알리고 정부와 서울시의 잘잘못 비중을 따지는 것은 그 다음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어 “역대급으로 큰 SOC사업을 행정당국이 처음 추진하면서 의사결정을 다소 주저하거나 제때 정책적 판단을 못 했을 수 있다”며 “그 선례를 앞으로 GTX-B·C 등 여타 SOC사업을 추진하며 참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민간사업자인 에스지레일은 승객 부족 등 수요 예측 실패로 인한 운영 적자는 당분간 감내하며 승객 증가 추이를 지켜볼 계획이다. 정부와 체결한 GTX-A 실시협약 제58조에는 “실제 발생 수요가 본 협약에서 정한 예측 수요와 차이가 있을 경우 (이에 관해 달리 정한 바가 없는 한) 그 책임과 위험은 사업시행자에게 있다”고 명기돼 있다.
황규석 SG레일 경영관리본부장은 “아직 개통한 지 한 달이 채 안 돼 승객 부족 손실 관련 부분은 고민하고 있지 않고, 일단 안전 운행을 위한 점검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들이 과거의 통행 패턴을 쉽게 바꾸기 어려워 GTX 이용으로 옮겨오기까지 시간이 다소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K-교통패스 등 요금할인제도 등이 곧 도입되면 승객 수도 당초 예측치에 다가설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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