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사진기자단 |
이런 흉흉한 분위기 탓인지 여권을 중심으로 ‘7월경에 이명박 정권이 최악의 위기로 내몰릴 것’이라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아직은 설로 그치고 있지만 그것을 떠받치는 근거들은 무섭게 현실이 돼가고 있다. <일요신문>은 신년 정국 대전망으로 ‘이명박 정권의 7월 위기설’을 심층 분석해봤다.
‘아덴만의 여명작전’은 해외에서 위기에 처한 자국민을 처음으로 구해냈다는 점에서 쾌거로 기록된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과도한 언론플레이는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기무사는 작전내용을 상세하게 ‘소개’한 군에 대해 비밀누설 조사에 들어갔다.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에 대한 용비어천가는 도가 지나쳐 ‘지겹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도박에 가까운 작전 명령을 내린 이 대통령의 무모함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높다.
아덴만여명작전의 성공 여부에 대한 논란은 현 정권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고도의 군사작전이 성공했음에도 국민들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재계 등을 중심으로 떠도는 ‘이명박 정권 7월 위기설’도 결국 정부와 국민 사이에 놓인 넓고 깊은 불신의 강에서 퍼져 나오고 있다.
이런 ‘심리적’인 이유 때문에 7월 위기설의 근거는 미약한 편이다. 그럼에도 민심과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들이 포함돼 있어 이명박 대통령이 제2의 촛불정국을 겪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여기에는 악화되는 민심과 불안한 경제동향에 더해 한나라당의 태생적 권력 갈등 요인, 그리고 청와대 자체의 권력누수가 합쳐져 결국 7월에 대대적인 정권 위기가 올 것이라는 해석이 자리 잡고 있다.
먼저 구제역에 대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민심 악화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봄철 이후 해빙기로 갈수록 구제역이 더 위험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눈이나 얼음 속에 녹아 있거나 장비에 굳어 있던 바이러스가 한꺼번에 활성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영남권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축산농가 민심은 정말 최악이다. 언론에서 심각하게 다루지 않아서 그렇지 실제 지역민심은 민란 직전이다. 특히 이번 구제역은 누가 뭐라 해도 정부의 책임이 제일 크다. 전형적인 뒷북행정으로 발생지역만 쫓아다니다 전국이 다 뚫리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축산업 자체가 붕괴 위기에 직면하면서 이명박 정권의 전통적 지지층인 농촌지역 민심은 악화일로에 있다.
물가폭등도 문제다. 휘발유 값이 넉 달째 상승하는 등 서민경제를 위협하는 물가폭등이 4월에 정점을 찍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정부가 고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이상 공산품 물가까지 계속 폭등할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전세가격의 끝없는 상승이다. 90주를 훨씬 넘겨 계속되는 전셋값을 잡기 위한 정부의 대책은 전무한 편이다. 한나라당의 한 수도권 재선의원은 이에 대해 “다른 물가보다 삶의 터전인 주택에 대한 불만은 민심을 가장 악화시킨다. 지역에 가면 전세대책 세우라고 아우성이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기존 것을 답습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리 저리 옮겨 다녀야 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대출을 받아야 하는 등 전세살이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에 이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런 악화된 민심은 다가오는 4·27 재·보궐 선거를 정조준하고 있다. 일종의 도미노 현상이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결국 7월에 사회 불만이 정점에 달해 민심의 대폭발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7월 위기설의 핵심이다. 한나라당의 한 전략 핵심 관계자는 “지금 이대로 가면 재보선은 완패한다. 여의도연구소의 여론조사는 비교적 정확한데 청와대 조사와 차이가 많이 나 당에 비상이 걸린 것으로 안다. 이광재 강원도지사 낙마 등으로 이번 재보선이 전국 미니총선 성격으로 치러지기 때문에 더욱 선거결과에 대한 영향이 클 것으로 본다. 만약 참패한다면 조기전당대회 요구가 비주류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만약 한나라당이 재보선에 참패한다면 준비기간 등을 감안해 조기전당대회는 7월에 열릴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열리는 조기전당대회가 바로 7월 위기설의 직접적인 화약고로 작용할 수 있다. 조기전당대회는 총선 공천을 위한 당권이 걸린, 여당 의원들에게는 대선보다도 더 중요한 최대의 승부처다. 이 지점에서 친이-친박 간 당권을 둔 권력투쟁이 극에 달할 것이다. 자칫하면 공천권 때문에 당이 두 동강 나는 최악의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 내년 총선을 이명박 대통령 중심으로 치를 것이냐, 박근혜 전 대표 체제로 치를 것이냐에 따라 분당사태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최근 이재오 특임장관이 개헌론을 중심으로 친박계와 전선을 형성하는 것 자체가 공천권을 호락호락하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친이계의 한 재선의원은 이에 대해 “최악의 경우 대권은 저쪽(친박계)에 넘겨주더라도 당권만은 우리가 쥐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친이계는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 몰살당할 것이다. 자구책 차원에서라도 조기전당대회 당권 확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요소다”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이재오 장관 중심으로 총선 공천이 배분될 가능성이 크고, 총선에 ‘올인’하지 못하는 박 전 대표는 ‘주고받기’ 정도의 타협으로 선거에 전략적 협조를 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조기전당대회는 친이계가 당권을 확보하는 쪽으로 굳어지게 된다. 이때 친박계 다수가 공천에 불안을 느끼며 반발할 경우 당의 내홍은 분당사태로까지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7월 조기전당대회를 전후해 당이 심각한 권력 갈등을 겪을 경우 이 대통령은 ‘식물 수반’으로 전락하게 된다. 여기에다 박근혜 전 대표가 대선후보로서 이명박 대통령과 차별화를 선언하며 현 정권을 공격할 경우 7월 위기설은 더욱 구체화될 수 있다.
악화된 민심과 당의 내부투쟁에 덧붙여 청와대의 권력누수도 7월 위기설을 부추기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힘은 이미 정동기 전 민정수석의 감사원장 낙마에서 절반 이상 빠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당에서 부랴부랴 위무에 나서 ‘대통령의 화를 풀어드렸다’는 립 서비스까지 했지만 이미 레임덕의 둑은 터진 셈이다. 당·청 회동에서 터져 나온 개헌론을 두고 청와대 정무라인과 이재오 특임장관이 서로 언론플레이를 하며 물고 뜯기를 하는 것도 여권의 파워시스템이 이미 이 대통령의 통제권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비주류의 한 중진 의원은 이에 대해 “대통령 발언을 두고 참모들이 서로 다른 말을 흘리며 싸우는 걸 보며 정권말기의 해이해진 기강이 떠올랐다. 앞으로 이런 사태는 더 자주 일어날 것이다. 말로만 대통령을 무서워할 뿐 뒤에선 보란 듯이 이기적인 싸움을 하고 있다”라고 힐난했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청와대 참모들도 ‘엑소더스’에 가까운 이탈현상을 보이고 있다. 권력누수가 대통령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전력약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 지난 연말부터 지금까지 두 달여 동안 청와대 비서관 행정관 가운데 10여 명이 공공기관이나 민간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6~7월에 접어들게 되면 내년 4월 총선 준비를 위해 청와대 별정직 참모들의 본격적인 엑소더스가 시작될 것이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6월 이후 출마준비를 위해 청와대를 떠나는 비서관 행정관들이 최대 30명은 넘어설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정치인 출신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실 지금도 마음이 급하다. 상대후보가 벌써부터 지역을 훑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으면 조급해지게 마련이다. 6~7월에 그만두고 지역에 돌아가도 시간이 빠듯하다. 조직 재건과 기본적인 선거 준비만 하는 데도 몇 달이 걸릴 것이다. 그 전에 내려가고 싶지만 윗사람 분위기 때문에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시 출신 고급 공무원들도 7월을 정점으로 원대 복귀하는 사례가 정점에 이를 것이다.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청와대 근무경력은 ‘친정’으로 돌아가는 데 결정적 걸림돌로 작용하는 게 관가의 생리다. 이렇게 대통령-별정직 참모-정통공무원으로 이어지는 청와대의 핵심 전력이 7월을 고비로 약화될 가능성이 높게 된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충성도 높은 정치권 출신 별정직 이탈이 가속화하고 그 자리를 경력관리나 하려는 관료들이나 보은차원의 능력 없는 별정직으로 채워갈수록 청와대의 힘은 빠질 수밖에 없다. 정권 논리보다 보신주의의 관료마인드가 득세할 경우 대통령의 국정장악력 약화를 초래하게 된다. 이런 전력으로 7월 위기의 쓰나미가 몰려올 때 어떻게 대처할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7월 위기설은 뜬구름 잡는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신기루 같은 이야기가 ‘선거포비아(공포증)’에 빠진 여권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전파되는 까닭은 이명박 정권의 허약하고 무능한 정치력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반사경이기 때문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