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원 회장 |
최창원 부회장의 SK케미칼은 지난 1월 25일 공시를 통해 비상장 회사 SK건설 주식 150만 주 매입 결정을 알렸다. 총 매입금액은 585억 원. 종전까지 SK케미칼의 SK건설 지분율은 18.03%(보통주 기준)였다. SK케미칼은 이번 거래로 SK건설 주식 150만 주(7.38%)를 늘려 지분율을 25.41%까지 끌어올리게 됐다.
이 지분은 원래 HSBC사모펀드투자가 갖고 있던 것이다. 지난 2006년 7월 SK해운이 보유하던 SK건설 지분 중 일부인 250만 주가 HSBC사모펀드투자에 매각됐는데 이 가운데 150만 주를 SK케미칼이 최근 HSBC사모펀드투자로부터 사들인 것이다.
SK케미칼의 이번 지분 취득은 SK케미칼이 SK건설 지분을 SK㈜에 팔아넘긴 지 1년 8개월 만의 일이란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SK건설 최대주주였던 SK케미칼은 지난 2009년 6월 SK㈜에 SK건설 지분 중 811만 8000주를 총 4140억 원에 매각했다. SK㈜는 이 거래를 통해 지분율을 40.02%까지 끌어올려 SK케미칼을 제치고 SK건설 최대주주가 됐다.
이렇듯 1년 8개월 전에 SK건설 지분을 팔아넘겼던 SK케미칼이 이제 와서 다시 SK건설 지분을 사들인 배경에 재계의 시선이 쏠린다. SK케미칼은 공시를 통해 SK건설 지분 취득 목적을 “투자 포트폴리오 강화를 통한 기업가치 제고”라고 밝혔다.
그러나 SK건설은 이미 SK케미칼의 주요 포트폴리오에 있던 회사다. SK건설의 최대주주는 최태원 회장 계열의 SK㈜지만 SK건설은 최창원 부회장이 이끄는 SK케미칼의 자회사처럼 굴러가고 있다. ‘SK건설 부회장’직도 겸해온 최창원 부회장이 최대주주 변경 이후에도 변함없이 SK건설의 주요 경영업무를 챙겨온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 재계 일각에선 “최 부회장이 SK건설 경영권은 그대로 유지한 채 거액의 자금만 SK㈜(최태원 회장 측)로부터 챙겼다”는 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SK케미칼이 다시 거액을 들여 SK건설 지분율을 끌어올리자 계열분리 전초작업일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이미 앞서 벌어진 SK케미칼의 SK가스 지분 매입으로 “SK 오너들이 분가 수순을 밟는다”는 전망에 불을 지핀 상태였다. 지난 12월 29일 SK㈜는 그동안 보유해온 SK가스 지분 392만 8537주(지분율 45.53%) 전량을 SK케미칼에 매각했다. 거래가는 1841억 원. 지분 거래 사유에 대해 SK㈜는 “투자 포트폴리오 조정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 SK케미칼은 “포트폴리오 확대 및 친환경 사업과의 시너지 창출을 통한 사업역량 강화”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선 쏠쏠한 수익을 내고 있는 SK가스를 최태원 회장이 최창원 부회장에게 선뜻 내준 점을 들어 “계열분리 작업의 본격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란 해석을 내렸다. 이런 와중에 SK케미칼이 SK건설 지분율을 25.41%까지 끌어올렸으니 “최창원 부회장의 분가가 임박했다”는 말이 나올 법한 셈이다.
그동안 고 최종건 SK 창업주의 아들들인 최신원-최창원 형제가 고 최종현 2대 회장 아들 최태원 회장의 SK그룹에서 분가할 것이란 관측이 재계에서 숱하게 제기돼 왔다. 그 때마다 SK 측은 “(최신원-최창원 형제가) 이미 독립경영을 하고 있다”며 그룹이 당장 쪼개지는 일은 없을 거라 단언해왔다. 최신원 SKC 회장의 경우 SKC 지분율이 3.36%에 불과해 SKC 지분 42.50%를 보유한 SK㈜ 벽을 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다.
▲ 최창원 부회장 |
그런데 한편에선 최창원 부회장의 계열분리 재산 목록에 SK건설이 포함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지난 2009년 SK㈜가 4140억 원의 거액을 들여 SK건설을 계열사로 편입시킨 만큼 최태원 회장의 SK건설에 대한 애착이 강할 것으로 보이는 까닭에서다. 지금까진 최창원 부회장의 SK건설 경영이 별 탈 없이 이뤄져 왔지만 계열분리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될 경우 최태원 회장이 지분구조를 내세워 SK건설 경영권을 취하려 할 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
최창원 부회장 측이 SK건설 지분 매입에 나선 점도 ‘계열분리를 염두에 둔 SK건설 찜하기’ 맥락에서 해석되기도 한다. 최 부회장은 SK건설 지분 9.61%를 갖고 있다. 이번 지분 거래를 통해 25.41%가 된 SK케미칼의 지분율을 최 부회장 개인 지분율과 합하면 35.02%가 된다. SK㈜의 지분율 40.02%의 턱밑까지 추격한 셈이다.
지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4년간 순이익 1000억 원을 웃돌았던 SK건설은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로 2009년 순이익이 490억 원대로 내려앉은 상태. 그러나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대형 가스처리시설 공사를 수주하는 등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는 데다 상장될 경우 어마어마한 상장차익을 안겨줄 것으로 전망된다. 최태원 회장과 최창원 부회장 모두 쉽게 포기할 수 없는 회사인 셈이다.
그동안 계열분리 관련 관측이 제기될 때마다 SK 측은 극구 부인해왔다. 그러나 분가 여건을 갖추고 있는 SK케미칼의 이번 SK건설 지분 매입을 계열분리와 별도로 해석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문제는 최창원 부회장이 당장 계열분리를 원하느냐, 그리고 이번 지분 매입이 최태원 회장과의 공감대 하에 이뤄진 것이냐에 있다. SK케미칼이 SK㈜가 아닌 외부자본으로부터 SK건설 지분을 사들인 점, SK㈜가 여전히 SK건설의 최대주주라는 점은 최태원-최창원 사촌형제의 계열분리 전망에 대한 재계 인사들의 상상력을 부풀려주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
‘지주사 가는 길’ 비상금 차곡차곡
최근 들어 SK그룹 계열사들이 잇달아 주주 대상 현금배당 결정 내역을 발표하고 있다. 이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최태원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SK C&C다. 이 회사는 지난 1월 24일 공시를 통해 주당 700원의 현금배당이 결정됐음을 알렸다. 총 배당액은 332억 5000만 원. 이는 지난해 배당액의 두 배를 웃도는 수치다. 지난해 SK C&C는 주당 330원, 총액 165억 원의 배당액을 주주들에게 지급했다. 지난해 SK C&C의 순이익은 2635억 원이었다. 2009년 순이익 1444억 원 대비 82.5%의 증가율을 기록한 것이다. 주주들이 고액 배당을 받을 만한 실적을 기록한 셈이다.
이 같은 고액 배당의 수혜는 대부분 최태원 회장과 그의 여동생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에게 돌아갈 전망이다. 최태원 회장은 SK C&C 지분 44.5%(2225만 주)를 보유하고 있으며 최기원 이사장은 SK C&C 지분 10.5%(525만 주)를 보유한 2대주주다. 주당 700원 배당 결정에 따라 최태원 회장은 148억 원, 최기원 이사장은 35억 원을 수령하게 된다.
재계에선 SK C&C 고액 배당으로 거액을 손에 쥔 최 회장 남매의 시선이 SK그룹 지주회사제 전환 마무리 과정을 향하고 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SK그룹은 오는 6월 말까지 지주회사제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지난 2007년 7월 지주회사제 전환을 발표한 SK는 관련법에 따라 2년 내 지주회사 요건을 충족시켜야 했으나 2009년 7월 당국으로부터 2년 연장을 승인받은 상태다.
SK 지주회사제 완성의 가장 큰 걸림돌은 SK증권이다. 현재 SK㈜의 자회사인 SK네트웍스와 SKC가 SK증권 지분을 각각 22.71%, 7.73%씩 갖고 있다. 그런데 현행법상 일반 지주사 SK㈜는 금융회사인 SK증권을 손자회사로 둘 수 없다. 이를 허용하게 하는 개정안이 지난해부터 국회에 계류 중인데 대기업 특혜 논란 때문에 상반기 내 통과 전망이 불투명하다.
지난 2007년 SK의 지주회사제 전환 발표 이후 SK증권 매각설이 여러 차례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최 회장은 매각은커녕 오히려 SK증권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상반기 내 관련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최 회장이 SK증권 지분 매입에 돈을 쏟아 넣을 수도 있는 셈이다.
SK증권 지분 1%를 매입하는 데 약 70억 원이 필요하다(1월 27일 SK증권 종가 2210원 기준). 최태원-최기원 남매가 수령할 SK C&C 현금배당액만으로 SK증권 지분 2.6% 매입이 가능한 셈이다. 최태원 회장이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실탄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 회장은 지난 연말 본인 명의 SK C&C 주식 일부를 담보로 1800억 원가량의 대출을 받았다. 이에 앞서 2009년 2월 SK㈜ 주식을 대거 처분해 920억 원을 손에 쥐기도 했다.
최 회장이 2007년 7월 본인 명의 SK케미칼 주식 전량(보통주) 처분과 2008년 2월 SK건설 주식 처분을 통해 마련한 금액도 1175억 원에 이른다. 최근 수년간 지분 매각과 대출 등을 통해 4000억 원에 가까운 돈을 마련해놓은 셈이다. 이 정도 금액이면 세금을 감안하더라도 SK증권 경영권은 충분히 쥐고도 남을 지분 획득이 가능하다.
만약 상반기 내 일반 지주사의 금융 자회사 보유를 허용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할 경우 SK네트웍스와 SKC가 보유한 SK증권 지분 매각이 불가피해진다. 이 경우 최 회장이 돈 보따리를 풀어헤쳐 SK증권의 최대주주로 등극하게 될지, 또한 현금배당으로 거액을 손에 쥔 최기원 이사장도 SK증권 대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리게 될지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