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먼 거리를 여행할 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새들도 마찬가지다. 수천, 수만 킬로미터를 날아가야 하는 철새들에게는 쉬면서 체력을 회복하고 남은 여정을 계속할 수 있는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는 중간기착지가 꼭 필요하다. 철새들이 바다를 날아가다 지친 나래를 잠시 쉴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우리의 섬이다.
내려앉을 수도, 물을 마실 수도 없는 바다를 건너던 그들이 잠시 내려앉아 쉴 수 있는 우리의 섬들은 철새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 탐조 전문 크리에이터 김어진과 함께 다양한 새들이 찾아오는 봄 섬으로 탐조를 떠난다.
올 봄 한반도의 섬에 어떤 새들이 찾아왔는지 섬을 둘러보며 탐조의 묘미를 느껴본다. 장거리 이동은 비행 능력이 뛰어난 철새에게도 힘든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새들은 왜 천적과 날씨라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건 이동을 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관찰된 것으로 기록된 새는 약 570여 종인데 그 중 90%가 이동을 하며 사는 철새다. 철새는 1년에 두 번 번식지와 월동지를 오가느라 수 천, 수 만 킬로미터를 날아야 한다. 그 중엔 어른 손바닥보다 작은 산새들도 있다. 자세히 찾아보지 않으면 그들을 그저 참새 같은 흔한 텃새로 여길 뿐이다.
새에 대해 말하는 몇 안 되는 탐조 전문 크리에이터 김어진. 새를 주제로 한 SNS채널을 운영하는데 구독자 수가 22만 명을 넘는다. 그가 영상을 만드는 건 새와 그들의 서식지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런 그가 아무리 바빠도 봄 섬 탐조는 빠트리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봄 섬 탐조는 매력이 있다. 김어진이 올 봄 선택한 섬은 국토 최남단에 있는 마라도. 나그네로 잠시 머물다 가는 다양한 새를 만날 수도 있고 기대하지 않았던 귀한 새도 만날 수 있으며 새에 대해 알면 알수록 많은 새를 알아볼 수 있는 탐조의 재미를 그와 함께 느껴본다.
봄철 바다와 섬의 날씨는 변화무쌍한데 비와 바람은 나그네들의 여행을 고행길로 만든다. 악천후를 만나면 장거리 여정에서 낙오하고 마는 새들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거친 날씨를 뚫고 섬에 도착해도 안심하긴 이르다.
또 하나의 장벽이 그들을 가로막는다. 바로 마라도 전체를 활동 영역으로 삼은 천적 매다. 매가 철새들의 이동시기에 새끼를 키우는 건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새들도 매의 매서운 발톱을 피해 무사히 번식지로 가야 한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이동을 하는 것도 바로 새끼를 낳아 잘 키우기 위해서이다.
산둥반도에서 출발한 철새들이 서해를 가로지를 때 가장 먼저 만나는 섬인 소청도. 봄 철 자주 밀려오는 안개와 함께 귀제비들도 찾아왔다. 마라도에 나그네 새의 천적, 매가 있는 것처럼 소청도엔 텃새 큰부리까마귀가 터주대감으로 자리잡고 있다.
큰부리까마귀는 뛰어난 사냥술이 없는 대신 안개 속을 헤매느라 지친 귀제비들의 휴식을 방해해 그 중 유독 약한 녀석을 낚아채는 영리한 사냥꾼이다. 2년 전 소청도에는 ‘국가철새연구센터’가 문을 열었다. 철새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만든 곳으로 많은 철새들이 소청도를 통과하는 봄철엔, 숲에 특수 그물을 쳐놓고 철새를 포획하는 작업으로 분주하다.
포획된 철새들은 신체 크기와 무게가 계측되고 가락지가 부착된다. 가락지는 일종의 인식표로 이는 철새 이동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크기가 큰 새들은 가락지 부착 외에도 위치추적장치를 부착해 새의 이동 경로를 좀 더 쉽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작은 새들은 가락지 부착 외에는 아직 방법이 없다. 이는 새들에게 스트레스도 주고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를 멈출 수 없는 건 새들의 안전한 이동에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새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한다. 오랜 진화의 시간 속에서 최적의 이동 경로가 새에게 각인되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이동 경로에 있는 중간기착지들에 문제가 생기면 새들의 이동에 큰 위협이 된다.
우리나라는 동아시아 대양주 철새이동경로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이 경로상에 있는 22개 국가들은 서로 협정을 맺고 새들의 안전한 이동과 서식지 보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새들에게 관심을 갖는 건 결국 인간이 사는 환경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새는 환경변화를 알려주는 지표종이기 때문에 우리의 섬에 새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 섬의 환경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철새들이 중간기착지로 삼고 찾아오는 섬들이 징검다리로서의 역할을 잃는다면 새들의 여정은 더욱 위태로워질 것이다. 조금이라도 철새들이 안심하고 쉬어갈 수 있는 섬이 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한 뼘도 안되는 날개로 망망대해를 건너 수만 리 창공을 날아가는 그들의 여정은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철새들의 위대한 여정이 무사히 이어지게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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