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얽힌 의혹을 제외하고 남아있는 또 다른 핵심 의혹은 여권실세가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는 세무조사 무마 청탁로비 사건이다. 검찰은 그동안 천 회장을 의혹의 몸통으로 지목하고 수사를 진행했지만 결론적으로 실체를 규명하는 데는 실패했다.
의혹의 핵심은 천 회장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청탁을 받고 태광실업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를 무마해달라는 로비를 벌였는지 여부다. 천 회장은 2008년 7월 박 전 회장의 사돈인 김정복 전 중부지방국세청장,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대책회의를 수차례 열고, 태광실업이 서울에 마련한 대책사무소도 수차례 방문한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 검찰은 당시 세 사람이 세무조사 무마를 위해 모종의 역할 분담을 했을 것이란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30년 지기인 박 전 회장과 천 회장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7월 국세청의 특별 세무조사가 시작되자 박 전 회장이 ‘의형제’로 지내던 천 회장에게 ‘SOS’를 요청한 배경에도 두 사람 간의 깊은 인연이 자리잡고 있다. 천 회장은 박 전 회장에게서 세무조사 무마 청탁 명목으로 중국돈 15만 위안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71억 원을 선고받은 상태다.
천 회장이 2007년 세중나모여행사 및 계열사 주식 327만여 주를 매각해 306억 원을 마련한 경위와 용처도 미스터리다. 천 회장은 “주식 매각 사실은 당시 공시에 다 나와 있고, 주식 매각 대금은 법인 및 개인 계좌로 입금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주식 매각 대금이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당비 30억 원 대납 또는 대선자금 지원과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은 여전하다.
천 회장은 이와는 별도로 임천공업 이수우 대표에게서 47억여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12월 구속기소돼 1심 공판이 진행 중이다.
라응찬 전 회장이 얽혀있는 사건도 여전히 뇌관으로 남아있다. 그간 내사를 진행했던 검찰은 2009년 3월 라 전 회장이 2007년 초 타인 명의의 계좌에서 50억 원을 인출해 박 전 회장에게 전달한 정황을 포착했다. 그간 검찰은 박 전 회장의 휴켐스 인수 과정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태광실업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신한금융지주를 지목해 왔었다.
라 전 회장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경남 김해의 가야컨트리클럽 지분 5%를 인수해 달라’고 부탁하며 10여 년 전 회사에서 받은 상여금 등을 전달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돈의 출처는 물론 50억 원을 건넨 용도에 석연찮은 부분이 많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해왔다. 가야컨트리클럽은 지난 2006년 12월 신한캐피탈이 지분 75%를 사들여 인수한 만큼 굳이 박 전 회장에게 개인적으로 50억 원을 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 전 회장은 이 돈을 지분매입에 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라 전 회장과 박 전 회장은 20년 지기로 집안 사이에 혼사가 오갈 만큼 돈독한 관계였다는 점, 라 전 회장의 장남이 지난 2004년부터 2년여 동안 박 전 회장의 태광실업 중국 자회사에 임원으로 근무한 점, 라 전 회장이 지난 2006년 박 전 회장이 휴켐스를 인수할 당시 신한은행이 컨소시엄에 참여하도록 해 인수를 도운 사실 등이 밝혀지면서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하지만 검찰은 2009년 6월 6일 라 전 회장을 피내사자 신분으로 한 차례만 소환조사하고 불법거래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사종결했다. 당시 라 전 회장은 ‘골프장 투자 명목의 개인 자금’이라고 해명했지만 타인 명의 계좌에서 돈이 흘러들어가 금융실명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특히 라 전 회장이 이와 관련 아무 처벌도 받지 않은 것을 두고 야권 일각에서는 “고위직이 비호 세력으로 있기 때문에 금융감독위원회가 조사나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