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초 노르웨이계 펀드인 스타뱅거(6.39%)와 게버런 트레이딩(5.77%) 등이 현대그룹의 알짜 계열사인 현대상선 주식을 사들여 또다시 현대그룹이 인수합병전에 휘말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게다가 스타뱅거나 게버런 트레이딩은 인수합병설에 시달리고 있는 대한해운의 지분을 단기간에 30% 이상 끌어모아 주목받고 있는 노르웨이계 해운사인 골라LNG와 연관된 펀드로 추정됐다. 때문에 증권가에선 현대상선이 대한해운 케이스와 비슷한 경우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았다.
스타뱅거와 게버런 트레이딩의 지분을 더하면 12.16%. 게다가 현대상선은 외국계 지분이 40%를 넘어선 상태라 경영권을 둘러싼 난타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현대상선측은 “인수합병은 불가능하다”고 장담하고 있다. 일단 현대상선이 확보하고 있는 우호지분이 40%가 넘는 상황에서 10%의 지분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
현대상선은 현대엘리베이터가 17.16%, 현대상선이 자사주를 넘기며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인 홍콩의 허치슨왐포아사가 10%, 현정은 회장이 3.36%, 우리사주조합이 0.51% 등 31.03%의 지분을 우호세력으로 확보하고 있다.
또 범현대가로 분류되는 현대건설(8.69%), 현대백화점(2.31%), 현대해상화재(1.94%), 현대차(0.5%)의 지분을 더하면 44.47%에 달한다.
물론 현대 현 회장과 완전히 사이가 틀어진 현 회장의 시숙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측에서도 현대상선의 지분 6.26%를 갖고 있다.
현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세력의 지분은 12.16%와 6.26%를 더해 20% 가까이 되는 셈. 이는 여차하면 경영권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수준이다.
SK(주)의 오너 경영인에 대해 계속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소버린의 지분도 15%에 불과하다. 노르웨이계 해운사인 골라LNG가 이번 주식 매집세력의 배후라면 향후 주총 등을 통해서 문제제기를 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
실제로 골라LNG의 사주인 존 프레드릭슨 회장은 인수합병쪽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이고, 게버런 트레이딩의 배후로 골라LNG가 지목되고 있는 것.
또 지난해 9월부터 현대상선 주식을 꾸준히 사들이고 있는 스타뱅거사는 올 초 현대상선 주총에서 KCC측을 지지했던 전력이 있다.
KCC와 이번에 주식을 매집한 게버런 트레이딩과 스타뱅거사가 향후 주총 등에서 ‘연합’해 한목소리를 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만은 없는 것.
현대그룹의 지주회사에 대한 인수합병을 시도했던 정상영 KCC 명예회장은 아직 현대상선에 대한 보유지분을 처분하지 않고 있고, 금융감독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전량 처분 명령을 받은 현대그룹의 지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 20.78% 중 일부도 아직 보유중이다.
정 명예회장은 이 사건으로 검찰에 고발돼 지난 11월10일 법원으로부터 벌금 5백만원에 약식기소 판결을 받기도 했다.
즉 정상영 명예회장의 인수합병 공격도 아직 여진이 완전히 가신 게 아닌 상황인 것이다.
현정은 회장도 취임 1주년 사내보 인터뷰에서 경영권 문제에 대한 질문에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주주가 여전히 KCC이고 현대상선의 경우 외국인 지분율이 높아져 인수합병 가능성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며 이 문제로 고심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때문에 스타뱅거와 게버런 트레이딩의 지분매집이 그 규모와는 별도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외국계 큰손의 매집이 성격상 어느 세력인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을 뿐더러 지난해 말 기준으로 18.5%에 불과했던 현대상선에 대한 외국계의 지분이 채 1년도 안돼 44%대까지 높아진 것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특정 세력의 의도적인 매집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외국계 펀드의 주식 매집에 대해 “단순 지분 비교만으론 인수합병 공격이 불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는 현대상선쪽에서도 다각도의 방어책을 검토하고 있다. ‘만약’을 대비한 방어 준비에 돌입한 것.
현대상선은 이달 중순께 신우리사주조합제도(ESOP)라는 제도를 도입해, 회사와 직원이 각각 50%씩 출연해 회사 발행 주식수의 3%에 해당하는 3백만 주를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ESOP제도는 직원의 돈으로 자사주를 사는 우리사주제도와는 좀 다르다. 회사가 매입가의 반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일종의 스톡옵션적인 성격이 있는 것.
현대상선은 지난 3년간의 재무상태가 증권거래법 규정 수준에 미치지 못해 자사주를 취득할 수 없는 상태라 이런 제도에 눈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현대상선측은 이 제도에 대해 “경영권 안정화 차원에서 도움도 되고 직원 복지 혜택을 늘리는 데도 도움이 되는 제도”라고 주장했다.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현정은 회장측의 우호지분은 현 31.03%에서 34.03%로 늘어나게 된다.
현대상선쪽에선 지분 변동 상황에 대해 예민하게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지난 10월29일 우호세력인 허치슨왐포아사에 넘겼던 콜옵션 3% 중 2%를 2백86억원에 되사왔다. 또 이달 중순께 ESOP를 통해 3%의 주식을 확보하는 데 2백25억원을 쓸 계획이다. 현대상선측은 허치슨왐포아사가 갖고 있는 1%의 지분도 추가로 사들이는 방안과 우호지분 확보 대책 등 다각도로 대책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내내 경영권 위협에 시달리다 지난 3월 정기주총을 전후로 해 판정승을 거두었던 현대그룹 현 회장이 취임 1주년을 계기로 또다시 도전받고 있는 경영권 문제에 대해 어떤 묘수를 내놓을지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