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빈 롯데 회장 |
신 총괄회장은 신 회장을 지난 1997년 부회장에 취임시켜 지근거리에 두기 시작한 후 14년간 차근차근 경영권 승계를 준비해왔다. 재계에서는 오랜 기간의 승계 작업에도 불구하고 신 총괄회장이 풀어야 할 고민거리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과 일본 롯데의 2세 경영 안착을 위해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남겨진 숙제는 무엇일까.
신동빈 회장은 지난 1955년 신격호 총괄회장과 일본인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본 아오야마 가쿠인대 경제학부에서 학사학위를,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1981년 일본 노무라 증권에 입사해 런던지점에서 근무하면서 금융 실무와 국제 감각을 익히다 1988년부터는 일본 롯데에서 일했다.
신 회장은 19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이사에 앉으면서 한국 롯데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후 코리아세븐 전무를 거치며 유통업계에 대한 본격적인 감각을 쌓아나갔고 1997년 그룹기획조정실 부회장을 맡았다. 그가 본격적으로 그룹 경영을 주도한 것은 지난 2004년 그룹 정책과 전략을 총괄하는 정책본부장을 맡으면서부터다.
재계에서는 신 회장이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 밑에서 차근차근 경영 수업을 받으며 후계자로서의 내공을 쌓아왔다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신 회장은 정책본부장을 맡은 이후 25건의 크고 작은 M&A(인수·합병)를 통해 그룹의 외형을 키워왔다. 우리홈쇼핑 AK면세점 두산주류BG 등이 그가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인수한 대표적인 회사들이다. 지난해에는 61조 원의 그룹 매출을 올려 전년대비 30%나 성장한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
이런 성과들은 신 회장의 본격 경영 시대를 앞당기는 촉매제 역할을 해왔다. 한때 제2롯데월드 건립 문제를 둘러싸고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 간 갈등설이 흘러나오기도 했지만 이번 신 회장의 승진으로 인해 완전히 가라앉을 전망이다. 특히 신 회장의 승진은 대외활동상 직급 승진이 필요하다는 정책본부 간부진의 건의를 신 총괄회장이 받아들여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이 회장직에 올랐지만 신격호 총괄회장의 역할은 바뀌지 않을 듯하다. 그는 홀수 달에는 한국, 짝수 달에는 일본에 머무는 이른바 ‘셔틀경영’을 해왔다. 롯데 측은 “인수 합병이나 해외 사업 등 사업 전반적인 것인 신 회장이 주도하되 최종적인 결재는 신 총괄회장이 하는 구도는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퍼즐 맞추기’ 작업에 남은 것은 지배구조 정리로 보인다. 장남인 신동주 일본 롯데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 간의 지분 정리가 핵심이다. 신 총괄회장은 일찌감치 한국 롯데는 신 회장, 일본 롯데는 장남 신동주 부회장에게 맡기는 식으로 후계구도를 정했다.
특이한 것은 차남 신 회장이 물려받게 될 한국 롯데가 장남 신 부회장의 일본 롯데보다 열 배 이상 크다는 점이다. 사실상 동생이 형을 제치고 전체 파이의 대부분을 물려받는 셈이다. 보통 재벌가들이 장자 승계를 원칙으로 하는 것에 비춰본다면 이례적인 일이다. 그런데 그룹 지분 구조를 면밀하게 따져본다면 형 신 부회장의 영향력이 더 클 수 있다. 신 부회장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무기로 한국 롯데에 더 큰 몫을 주장하게 되면 상황이 복잡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 간 얽히고설킨 지배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한국 롯데그룹은 총 61개의 계열사로 이뤄져있다. 이 중 상장사는 롯데쇼핑 롯데제과 등 8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비상장이다. 비상장 계열사의 지분은 대부분 오너 일가가 나눠서 소유하고 있다.
8개의 상장 계열사는 비상장 계열사인 호텔롯데가 실질적으로 지주사 역할을 하면서 음식료 제조 분야는 롯데제과가, 유통분야는 롯데쇼핑을 위주로 해서 출자가 이뤄지는 피라미드 형태의 지분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금융계열사인 롯데캐피탈과 롯데카드 롯데손해보험 역시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이 나눠 지배하고 있다.
석유화학과 관광레저 사업 분야는 일본 롯데홀딩스 등을 통한 간접 지배방식을 택하고 있다. 호남석유화학의 최대주주는 롯데물산(33.6%). 호텔롯데와 일본 롯데홀딩스가 각각 13.6%, 10.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최대주주인 롯데물산은 일본 롯데홀딩스(지분율 68.9%)의 지배를 받고 있다.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호텔롯데의 최대주주 역시 일본 롯데홀딩스다. 20%는 일본 롯데홀딩스가 직접 가지고 있으며, 나머지 80%의 지분도 관계사들이 나누어 가지고 있어 사실상 일본 롯데홀딩스가 100% 출자한 회사다.
문제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가 신동빈 회장의 형인 신동주 일본롯데 부회장이라는 것. 그룹 최대 계열사 중 하나인 롯데쇼핑도 신 회장(14.59%)과 신 부회장(14.58%)의 지분차이가 미미하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가지고 있는 지분이 1.01%에 불과한 반면, 호텔롯데의 지분이 9.58%로 사실상 신 부회장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분이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즉 외부에서는 신동빈 회장을 한국 롯데의 공식적인 후계자로 보고 있지만 지배구조를 냉철하게 따지고 들어가 보면 신동주 일본 롯데 부회장의 입김이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할 수 있는 셈이다. 경영상 아무런 연관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형적인 지분구조가 정리되지 않는다면 반석 위에 올라선 것으로 보이는 신 회장의 경영권은 안에서 흔들릴 수 있다.
그렇다고 일본의 신 부회장 측이 한국 롯데의 경영에 관여하기에는 신 회장의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노무라증권에서 금융맨으로 일했던 신 회장의 경험은 현재 그룹 재무전략과 투자전략 전환에 고스란히 녹아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번 인사에서도 신 회장의 측근들이 대거 승진했다. 그와 함께 일하던 정책본부 간부들이 대거 사장자리에 오른 것.
정책본부 부본부장으로 신 회장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했던 이인원 사장을 부회장(정책본부 본부장)으로 승진시키고, 현재 부사장인 채정병 지원실장, 황각규 국제실장, 이재혁 운영실장을 각각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한국 롯데는 차남 신동빈, 일본 롯데는 장남 신동주’라는, 얼핏 보면 단순한 후계구도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지배구조 문제로 얽혀 있던 탓에 롯데그룹의 후계구도는 항상 재계의 관심을 받아왔다. 이번 신 회장 승진 인사가 있기 한 달 전 증권가에 신 회장과 신 부회장 간의 갈등설이 회자된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복잡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롯데 관계자는 “일본 롯데홀딩스가 신 부회장의 회사라는 언론보도와는 달리 (신동빈 신동주) 두 사람 모두 이 회사 지분을 가지고 있다”면서 “다만 비상장사라서 신 회장과 신 부회장이 어느 정도 지분을 나눠 가지고 있는지는 우리도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께서 두 사람 간의 역할 구분을 분명히 하셨기 때문에 후계구도가 흔들릴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
‘장녀’ 신영자 뿔난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에게 주어진 또 다른 고민은 딸들에게 얼마만큼의 파이를 나누어 주느냐는 것이다. 신 총괄회장은 신동주 신동빈 두 아들 외에 장녀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과 차녀 신유미 호텔롯데 고문을 슬하에 두고 있다. 재계에서는 신 사장과 신 고문이 비상장 계열사 지분을 늘려가며 독립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가 딸들 계열분리의 최대 변수는 장녀인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이다. 신 사장은 롯데후레시델리카(9.31%), 롯데정보통신(3.5%), 시네마통상(28%) 등 주로 비상장 계열사의 지분을 두루 가지고 있다. 신 사장은 이를 기반으로 물류나 엔터테인먼트, 패션, 식음료 등을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신 사장이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현재 롯데쇼핑의 사업들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신 사장은 롯데쇼핑 성장의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공헌도에 비해 그가 가지고 있는 지분 0.79%는 미미한 수준이다. 그가 롯데쇼핑 내에서 가지는 영향력과 실제 지분의 간극이 크다는 점에서 딜레마가 생길 수 있다.
자신의 피와 땀이 어려 있는 롯데쇼핑의 경영권을 동생인 신동빈 회장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기도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에 있는 롯데쇼핑을 가져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부분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롯데그룹의 지배구조와 향후 계열분리의 그림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신 총괄회장과 셋째 부인 서미경 씨 사이에서 태어난 신유미 호텔롯데 고문은 올해로 28세다. 신 고문 역시 롯데후레시델리카(9.31%), 유원실업(40%), 유기개발(100%), 코리아세븐(1.2%) 등 비상장 계열사의 지분을 두루 가지고 있다. 문제는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들의 사업영역이 언니 신영자 사장과 적잖이 겹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롯데시네마의 매점 운영권은 신 사장의 시네마통상과 신 고문의 유원실업이 나눠 가지고 있다. 유원실업은 서울·경기 지역을, 시네마통상은 그 외 지역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 고문은 지난해 5월 호텔롯데의 고문으로 나서는 등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일본 롯데에서도 호텔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그의 행보가 커질수록 신 사장과 경쟁구도가 생겨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신 총괄회장이 딸들에게 재산을 나눠주는 작업은 복잡한 그룹 지배구조를 정리하는 일과 동시에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난마처럼 얽힌 숙제들을 풀어낼 신 총괄회장의 묘수에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