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 |
튀니지의 시민혁명에서 시작된 북아프리카의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정부는 외교통상부를 중심으로 교민과 현지 진출 기업 직원들의 안전대책을 마련하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 중국 등에 비해 한국 정부의 교민 대책이 허술하다는 비판에 외교통상부는 상당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처럼 비난의 화살을 직접 맞고 있는 외교통상부 덕분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번 북아프리카 사태로 인해 재정부와 지식경제부도 불똥이 튈까 몸을 사리고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는 물론 동남아시아 등을 중심으로 벌여온 ‘자원외교’에 타격이 불가피하게 된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재정부와 지식경제부 중 내상을 더 크게 입은 곳은 재정부다. 윤증현 장관이 수석대표를 맡아 대표단을 이끌고 이집트를 방문했던 탓이다. 당시 재정부는 윤 장관이 갈리 이집트 재무장관과 ‘제1차 한-이집트 경제장관회의’를 개최했다고 대대적인 보도자료를 돌렸다. 이 자료를 통해 재정부는 이집트 개발계획 참여, 원자력 협력 제안, 수산양식 기술협력, 자유무역협정(FTA)체결 검토 등의 성과를 올렸다고 선전했다.
특히 아프리카 54개국 가운데 이집트와 최초로 경제장관회의를 가진 이유로 이집트의 성장률(5.25%)이 아프리카 지역 평균(4.3%)을 웃도는 등 아프리카 경제를 선도하고 있고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비교해 정치상황이 안정됐다는 점을 들었다. 또 갈리 장관이 무라바크 정권의 실세라면서 이집트 원전 사업 진출에 있어 다른 나라보다 우위를 차지하게 됐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이번 이집트 혁명으로 재정부가 자랑했던 공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무라바크 대통령이 하야한 상황이라서 명확한 조약식을 갖지 않은 한-이집트 경제장관회의 결과는 다음 정권하에서 큰 의미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사태로 정부의 정보력이나 상황 파악능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사실마저 드러났다.
윤 장관이 이집트를 방문하기 닷새 전인 14일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은 23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 망명길에 올랐다. 이러한 튀니지 시민혁명의 여파가 인접국가인 이집트로 번지면서 17일과 18일 이집트인 3명이 무라바크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며 분신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어도 정부가 사상누각인 한-이집트 경제장관회의 결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헛발질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헛발질이 이집트에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재정부와 지경부 공무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북아프리카 민주화 바람이 튀지니와 이집트를 넘어설 기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투자은행(IB)인 도이체방크는 신흥국 가운데 비민주주의적이고 불안한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전문가들은 민주화 바람의 다음 확산지로 아라비아 반도 남단에 위치한 오만과 예멘 등을 지목하고 있다.
예멘은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1994년부터 16년째 집권하고 있으며 대통령 임기를 종신으로 하는 개헌을 했다. 이 개헌에 대한 반발로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자 살레 대통령은 2013년 정권이양을 약속했다. 1970년부터 카부스 빈 사이드 알 사이드 국왕(술탄)이 다스리는 오만에서도 국왕독재 반대와 정부 부패 척결 및 물가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가 확산되는 중이다. 문제는 이러한 예멘과 오만이 재정부와 지경부 등에서 자원 확보를 위해 관리해온 국가라는 점이다.
재정부는 지난해 7월 예멘과 조세조약(이중과세방지협정)을 타결했다. 국내 기업의 투자를 적극 지원하는 한편 자원에너지 협력 강화를 위한 것이었다. 예멘은 석유 30만 배럴, 천연가스 17조 입방피트가 매장된 자원부국이다. 금과 납 아연 구리 니켈도 풍부하다. 이런 예멘에 시위가 확산될 경우 자원개발 분야 진출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속앓이는 하는 것은 지경부도 마찬가지다. ‘왕차관’으로 불리는 박영준 지경부 2차관은 지난해 8월 취임식 때부터 자원외교 선봉장을 자처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박 차관을 수석대표로 한 대표단이 오만을 방문해 제2차 한-오만 경제협력위원회를 갖고 에너지 자원과 플랜트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전방위 협력을 하기로 합의했다. 오만은 한국 LNG수입의 17.5%, 원유 수입의 2.5%를 차지하는 주요 에너지 자원 공급국인 탓에 안정된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해 경제협력을 맺은 것이다. 하지만 최근 오만의 정정 불안이 커지면서 박 차관이 앞장서온 자원외교에 상처가 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불안이 중동이나 아프리카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박 차관은 지난해 12월 자원외교차원에서 베트남 라오스와 함께 미얀마를 방문했다. 박 차관은 한-미얀마 자원 협력 위원회를 개최한 데 이어 룬 띠 에너지부 장관과 면담을 갖고 석유 및 광물자원, 전력 분야에 대한 경제협력에 합의했다. 그런데 이 미얀마도 최근 정치 불안이 커지고 있다. 미얀마 의회가 지난 4일 현 군사정권의 2인자인 테인 세인 총리를 새 대통령에 선출했지만 민족민주동맹(NLD)을 이끄는 아웅산 수치 여사가 서방의 미얀마 제재 유지를 요청하고 있는데다 중동 아프리카에 부는 민주화 바람이 퍼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원자재 확보라는 목표만 보다 보니 해당 국가의 정치적 문제를 도외시한 경향이 있다”면서 “특히 현 정권이 장기집권하고 있는 것을 정치 안정으로 판단하고 있는데 최근 중동 아프리카 민주화 시위에서 보듯이 오히려 이는 휘발성이 강한 요인일 수 있다. 자원 확보에 앞서 중동이나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 획득이 우선되지 않으면 이집트에서처럼 망신을 살 수 있다”고 꼬집었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