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의류회사에 근무하는 S 씨(여·26)는 직장에서의 선물, 하면 지난 연말 ‘막걸리 사건’이 떠오른다.
“갑자기 왁자지껄 하기에 이상하다 싶었는데 사장님이 직원들을 큰 회의실로 다 부르시는 거예요. 가보니 이미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죠. 거래처에서 연말이라고 선물을 보냈는데 전통 막걸리를 보냈나 봐요. 그걸 한두 병씩 나눠주기도 뭐하고 맛이나 보자고 개봉했는데 생각보다 맛있어서 다들 한두 잔씩 돌려먹다 보니 판이 커진 거죠. 달달해서 금세 한 잔을 비우게 되더군요. 먼저 시작한 분들은 이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있었어요. 오후 4시가 좀 지난 시간이었는데요, 사랑의 작대기 게임도 하고 큰소리로 떠들고 놀다보니 퇴근시간이 다 됐고 막걸리 두 박스는 어느새 사라져 버렸죠.”
보험회사에 근무하는 K 씨(34)도 명절이 되면 사무실에 막걸리처럼 토속적인 선물이 이어진다고 이야기했다. 먹을거리가 대부분인데 모두 반기는 선물이 있는가 하면 주인을 찾지 못하고 남겨지는 선물도 생기곤 한다.
“업무 특성상 명절에 지방 특산품 선물이 많습니다. 항상 고맙죠. 하루는 오징어 한 축이 선물로 왔는데 다들 가져가질 않더라고요. 각자 맡은 지역이 있고 해당 지역에서 오는 건 담당자가 가져가는데 나눠 갖기도 해요. 사실 오징어는 제 담당지역이었습니다. 집에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는데 오징어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난감했어요. 퇴근길 그 수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 오징어 냄새까지 보탤 순 없잖아요. 그냥 두면 누가 가져가겠지 했는데 아무도 손대질 않았어요. 사무실 창고에 자료를 가지러 가면 그 오징어를 보는데 볼 때마다 괜스레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요새는 ‘매일 한 마리씩 공수해 볼까’하고 있습니다.”
홍보회사에 근무하는 D 씨(여·37)는 후배의 정성스런 선물 덕분에 고소한 추억을 갖게 됐다. 한동안 출퇴근하면서도 그 고소함을 계속 생각해야 했다.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제 도움을 받았던 후배가 음료박스 같은 걸 내밀더라고요. 참기름 두 병이 들어있었어요. 시골 아버님이 직접 짠 거라고 하면서 주는데 화려한 선물보다 더 고맙더군요. 직접 짠 거라 그런지 확실히 고소한 향기가 진했죠. 얼른 집에 가져가서 먹으려고 퇴근하면서 자동차 뒷좌석에 상자를 두고 출발했습니다. 한참 가는데 차 안에 참기름 냄새가 진동하더라고요. 상자가 쓰러지면서 제대로 밀봉되지 않은 병에서 참기름이 샌 거죠. 얼른 차를 세우고 살펴봤는데 이미 시트에 기름이 스며들고 있었어요. 열심히 닦아냈지만 한동안 자동차 문만 열면 참기름 냄새가 진하게 났어요. 출근하면 어디서 기름 짜다 왔느냐는 농담을 듣기도 했죠.”
D 씨의 자동차 뒷좌석에는 아직도 참기름 자국이 둥그렇게 남아있다. D 씨는 “참기름이 좀 새긴 했었지만 맛있게 먹었고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외식업체에서 일하는 C 씨(28)는 회사에서 받은 선물 때문에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명절이라고 회사에서 굴비세트를 선물로 받았어요. 비싼 거라기에 신났죠. 다음 날 집에 내려가려고 터미널에 갔는데 제가 탈 수 있는 버스는 7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더군요. 그렇게 오래 터미널에 있으면 냉동 굴비가 다 녹을 것 같았어요. 할 수 없이 평소에 자주 가던 집근처 악기 연습실 냉동실에 조기를 넣어두고 컴퓨터도 하고 연습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조기를 꺼내 가려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보니 얼음이 다 녹아 있었어요. 냉장고가 고장이었던 거죠. 버스 시간은 다가오고 할 수 없이 녹은 생선을 들고 버스를 탔는데 생선 비린내 때문에 저도 고생하고 옆자리 승객도 고생시켰답니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받아도 곤란한 선물이 종종 주어진다.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M 씨(여·31)는 명절 즈음만 되면 아예 천으로 된 장바구니를 백에 넣고 다닌다. 언제 어떤 선물이 회사로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거래처에서 선물이 많이 와요. 김 세트도 오고, 통조림도 많죠. 직원 한 사람당 한 세트씩 가져갈 수 있는 분량이 아니라서 조금씩 나누거든요. 장바구니가 그럴 때 요긴해요. 근데 과일은 좀 곤란할 때가 많아요. 귤이나 포도 같은 건 괜찮은데 사과나 배는 참 난감합니다. 특히 배는 선물용이라 하나만 해도 엄청 크거든요. 이번 명절에도 배 때문에 고생했어요. 아예 한 상자면 속편하게 택시 탈 텐데 그것도 아니고 배 6~7개 정도를 장바구니에 겨우 넣고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데 정말 힘들더라고요. 게다가 정장에 하이힐 신고 핸드백 매고 배가 가득 든 장바구니를 들고 지하철을 탄 제 모습이 얼마나 웃겼겠어요. 아까워서 안 가져갈 수도 없고 배는 받을 때마다 당혹스러워요.”
지금은 IT 회사에 근무하는 B 씨(31)도 이전 회사에서 곤란했던 선물이 있었다.
“전에 다니던 회사가 제과 관련 회사였는데 매번 명절 때마다 종합과자선물세트를 주더라고요. 때만 되면 한 개도 아니고 여러 개를 줍니다. 미혼인 데다 조카도 없는데 양손 가득 과자선물세트를 몇 개씩 들고 지하철을 타니 민망했어요. 군것질을 그리 좋아하는 편도 아닌데 선물 받으면 한 몇 달간은 방안에 매일 과자 봉지가 굴러다녔습니다.”
선물은 주는 사람의 정성이 더 고마울 때가 많다. 꼭 받고 싶은 선물이건 아니건, 곤란한 선물이건 아니건 어쨌든 선물, 받아서 나쁠 건 없다. 고단한 직장생활 속 몇 안 되는 재미, 직장인들이여 맘껏 즐기시길. 뇌물만 아니라면….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