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넷 인수전에 뛰어든 하나로통신 관계자가 전하는 솔직한 심정이다.
현재 통신시장의 큰 매물인 ‘두루넷’을 두고 인수의향을 밝힌 주체들이 얼마나 고심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단면이다.
국내 3위의 ‘초고속 인터넷 사업자’ 두루넷. 수년 전부터 매물로 나와 이리저리 치어다니던 두루넷 인수전이 드디어 가닥을 잡았다.
삼보컴퓨터가 투자해 설립한 두루넷은 인터넷시장이 붐을 맞았던 90년대 후반 각광을 받았지만, 경쟁업체들이 등장하면서 경영난에 빠져 지난 2003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채권단은 두루넷 매각작업에 들어갔고, 그동안 수차례 매각작업이 추진됐다. 그러나 성장성의 한계 등이 문제가 되면서 인수희망자는 있었지만 누구도 선뜻 인수하려 나서는 곳은 없었다.
그러기를 1년여. 채권단은 더이상 지연될 경우 경영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올하반기에 삼정KPMG(회계법인)를 매각주간사로 정한 뒤 본격적인 매각절차에 들어갔다.
초기 인수희망자로 나선 곳은 하나로, 데이콤, 씨티그룹 등 세 곳. 그러다 최근 데이콤과 씨티그룹이 공동보조를 맞추기로 하면서 데이콤-씨티그룹컨소시엄과 하나로통신-AIG-뉴브릿지의 ‘2파전’으로 양상이 바뀌었다.
2파전으로 좁혀진 상황이지만 현재 전개되는 양상은 여러 가지 점에서 흥미롭다. ‘남주기엔 아깝고, 먹자니 영양가 없는’ 닭갈비라는 표현이 딱 들어 맞는 것.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회사가 두루넷을 가져가느냐에 따라 향후 통신시장에서의 확고한 입지를 차지하게 되지만, 인수에 실패할 경우 시장에서 축출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초고속 인터넷망시장은 KT의 ‘메가패스’, 하나로통신의 ‘하나포스’, 두루넷 세 곳으로 나뉘어 있다. KT가 전체 시장의 51%(가입자 수 6백만명. 지난 5월 기준)를 차지해 1위이고, 하나로통신이 27%(2백70만명), 두루넷 14%(1백30만명)의 순이다. KT가 독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하나로통신과 두루넷이 시장을 나눠가지고 있는 것. 하지만 두루넷의 인수방향에 따라 업계의 판도는 확 바뀔 전망이다.
그러나 인수자로 나선 하나로나 데이콤 모두 두루넷 인수전에서 패자가 될 경우 회사 자체의 존립이 위험해진다. 두루넷 인수를 전제로 AIG와 뉴브릿지의 투자를 끌어낸 하나로로선 두루넷 인수에 실패하면 그냥 문을 닫아야 할 위기다. 데이콤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LG그룹에 인수된 이후 시외전화사업이 한계에 이르면서 기업의 신수종사업을 찾아야 하는 데이콤으로선 파워콤+두루넷 인수를 통해 기업재건을 노리고 있다. 때문에 두루넷 인수가 물건너가면 데이콤으로선 사망선고를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하나로통신과 데이콤 중 누가 유리할까. 12월 중순으로 예정된 입찰서류제출 마감시한을 앞두고 두 업체는 여론동향 파악, 상대방 전략탐색, 정부의 움직임, 두루넷 내부의 경영탐색 등 백방으로 정보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단 업계에서는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보이는 두 업체의 입장이나 상황으로 볼 때 예상하기 어려운 막상막하의 승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신증권 이동섭 연구원은 “데이콤이 씨티와 손잡기 전에는 하나로가 조금 유리하지 않겠냐고 봤으나 상황이 달라졌다”며 “50 대 50의 막상막하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사실 하나로와 데이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들이 이번에 인수에 참가한 배경은 판이하게 다르다. 하나로통신은 두루넷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가입자를 확보, 1위인 KT와의 경쟁 체제를 원하고 있다. 만일 하나로가 두루넷 인수에 성공하면, 초고속 가입자 비율이 51 대 42(KT 대 하나로)가 돼 경쟁 구도를 이끌어낼 수 있다.
반면 데이콤은 두루넷을 인수해 회사를 살리기 위한 자구책 방안에서 절실하다. 데이콤은 최근 시속 60Km의 속도로 이동하면서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와이브로’ 휴대인터넷 사업에서 손을 떼고 두루넷에 ‘올인’할 정도로 적극적.
현재 자금력에서는 양측이 비슷하다. 하나로통신은 이미 대주주인 AIG, 뉴브리지 등으로부터 두루넷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한 상황이며, 데이콤은 씨티와 손잡게 돼 자금력에 있어서는 문제가 없다.
물론 양사가 두루넷의 적정가격을 어느 정도로 제시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자금 부문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인수 의사도 마찬가지. 하나로와 데이콤은 모두 두루넷의 미래가치에 대해 반신반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상대방에게 뺏기기는 싫다는 입장. 따라서 이들이 두루넷의 인수가를 높게 불러 이번 인수전에 마침표를 찍기 어려운 상황이다. ‘과연 두루넷이 메리트가 있느냐’는 점을 두고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
업계의 한 관계자는 “두루넷을 매입한다고 해서 무조건 이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초고속 인터넷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인수가가 예상보다 1백억원 이상 높을 경우 인수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두루넷 회사 자체의 가치보다 국내초고속 인터넷 시장이 직면한 상황이 썩 좋지 않다는 얘기. 사정이 이렇다보니 두 회사 모두 인수의향을 밝히기는 했지만, 덥석 두루넷을 인수하기에는 불안요소가 크다.
문제는 과연 두루넷의 인수적정가격이 얼마냐 하는 점. 지난 2003년 매각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인수가격은 대략 7천억원대로 추산됐다. 그러나 현재는 사업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4천억원대로 뚝 떨어진 상황이다. 원래 삼보컴퓨터가 초기에 투자한 사업비가 1조원이 넘었던 점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진 셈.
그럼에도 인수희망자들이 인수가격을 두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초고속망 사업 자체의 성장성이 한계에 부닥친 부분도 있지만, 두루넷 자체에 숨겨진 부실을 예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튼 초읽기에 들어간 두루넷 인수전의 최종승자가 누가 될지 서서히 통신업계뿐 아니라 재계의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