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예정에 없던 물가 관련 브리핑을 자처한 임종룡 기획재정부 1차관이 최근 정부가 벌이고 있는 기업들에 대한 대대적인 가격감시 업무의 정당성을 설명한 말이다. 물가관리를 위해 정부가 논란을 무릅쓰고 기업들을 압박하는 까닭을 짚어봤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던 물가는 올해 들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올해 물가를 3%대로 잡겠다던 정부의 경제 목표가 사실상 힘들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때문에 정부는 물가잡기 총력전에 들어간 상태다. 그런데 그 물가안정을 위한 정책이 거시적인 경제정책이 아니라 기업들에 대한 압력으로 이뤄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공정위를 앞세워 기업들의 제품 가격 인상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또 재정부와 지식경제부 등이 합세해 정유사와 통신사에 대해서는 가격 압력을 가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요즘 공정위 직원들이 회사 사무실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한다. 컴퓨터에 들어 있는 자료를 보면서 이것은 뭐냐, 저것은 뭐냐, 자료 좀 보자고 하는 바람에 일을 하기 어려운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임 차관의 브리핑은 이러한 기업의 불만에 대한 정부의 반박이었다.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기업과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를 하지 말라고 하면 탁상행정이 된다”는 임 차관의 발언은 정부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국내 휘발유 가격 상승 속도가 국제 유가나 다른 나라 휘발유 가격 상승 속도보다 빨랐다는 점, 통신사가 지나치게 많은 마케팅 비용을 쓰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가격 인하 압력을 더욱 높였다.
정부가 이 같은 행보를 보이는 것은 물가 안정을 위한 거시경제 정책 활용이 사실상 어려운 탓이다. 물가안정을 위해 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정책은 수급조절이다. 가격이 오른 제품의 경우 비축 물량을 풀거나 수입량을 늘리는 것이다. 또 관세 인하 등을 통해 가격을 조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물가 불안이 우리나라만이 아닌 전 세계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이러한 정책은 한계가 있다. 식량농업기구(FAO)의 지난 1월 세계식품가격지수는 230.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우리나라가 사용하는 두바이유는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한 상태여서 이러한 정책은 효과를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준금리 인상이 대표적인 물가안정을 위한 카드지만 이것을 사용하기도 녹록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규모는 900조 원가량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가계부채의 90% 정도가 변동금리라는 점이다. 기준금리를 올리게 되면 당연히 대출금리도 상승, 서민이나 기업들이 갚아야 할 비용이 늘어나게 된다.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대부분 부동산과 연관된 점을 감안하면 자칫 한국판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환율 하락을 통한 물가관리도 사용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환율이 떨어지면 수입물가가 하락하기 때문에 곡물이나 원자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물가 관리에 도움이 된다. 특히 지난해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사상최대 수출에 힘입어 282억 1000만 달러로 역대 네 번째로 많았다. 외환보유액은 2959억 6000만 달러로 사상 최대치다. 이에 따라 환율 하락 압력이 높지만 1조 달러 수출과 5%대 성장을 내세운 정부로서는 환율 하락이 지속되는 것이 반갑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다보니 결국 기업들에게 가격을 내리라고 압력을 높이는 수단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특히 이동통신비와 휘발유가격의 경우 물가 상승률을 측정할 때 사용되는 가중치가 각각 3.38%, 3.12%로 489개 품목 중 2번째와 3번째로 높기 때문에 정부의 타깃은 통신사와 정유사로 좁혀졌다.
그런데 이는 그동안 정부가 보여 왔던 행보와 모순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그동안 정부는 국내 정유 4개사가 100% 장악하고 있는 휘발유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외국계 정유사의 석유 수입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에도 미적거려온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진입장벽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신규 석유 수입사의 등록요건인 의무저장시설 규정(45일분 또는 7500㎘)을 더 낮추지 않고 있다.
또 시민단체가 지난 1996년 도입된 이동통신 시장지배적 사업자(SK텔레콤과 KT)에 대한 요금인가제가 요금인하를 막는 독소조항이라고 끊임없이 주장해왔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들었다. 정부가 가격 인하 압박카드로 쓰고 있는 정유사와 통신사의 막대한 이익이 사실상 그동안 정부의 묵인하에 이뤄진 셈이다.
김서찬 언론인
상황이 그때 그때 달라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 프랑스 파리를 다녀왔다. 18∼19일에 열린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 회의는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합의 내용을 점검하고 오는 11월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앞서 각국 간 이견을 사전 조율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정부의 움직임은 조용하다. 지난해 G20 정상회의 때는 물론 행사가 끝난 뒤에도 전임 의장국으로 프랑스 G20 정상회의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며 홍보에 열을 올리던 것과도 천양지차다. 특히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과 구제역 파문 등으로 민심이 흉흉하던 지난 1월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G20 서울정상회의 후속조치 보고대회를 기억하는 이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이처럼 G20 회의와 관련해서 정부가 ‘발을 빼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우리 정부가 자랑했던 업적이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상황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G20 서울정상회의에서 정부가 가장 큰 업적으로 내놓았던 각국 간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한 경상수지 가이드라인 합의는 물 건너갈 위기에 처해 있다. 게다가 합의를 주도했던 우리나라도 지난해 사상 4번째로 많은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올해 수출 1조 달러 달성을 목표로 내건 정부로서는 지난 G20 정상회의 성과를 이어나가기에는 운신의 폭이 좁은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G20 서울정상회의 합의대로 국제통화기금(IMF)이 경상수지 가이드라인을 만들 경우 우리나라도 경상수지 흑자규모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어 G20과 관련해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