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넷플 ‘망 중립성 원칙 위반’ 주장 기각…넷플 항소 관측 속 사용료 지급 결국 양측 협상에 달려
지난 6월 25일 법원은 넷플릭스가 SKB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 1심 재판에서 SKB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넷플릭스의 청구 가운데 협상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달라는 부분은 각하하고, 망 사용료를 제공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확인해달라는 부분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넷플릭스가 SKB를 통해 인터넷망에 접속하거나 적어도 망 연결 상태 유지라는 유상의 역무(役務)를 받는 것에 대가를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넷플릭스 콘텐츠가 SKB의 한국 내 전용회선을 거쳐 이용자에게 도달하기 때문에 SKB로부터 인터넷망 접속·연결 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인정한 것. 박정호 SK텔레콤 대표는 지난 6월 28일 “1심 선고가 넷플릭스와의 미팅 성과를 더 좋게 만드는 결과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입장문을 내고 즉각 반박했다. 망 관리 의무는 ISP에 있고 자신들이 망 사용료를 낼 의무가 없으며, 특정 서비스에 망 사용료를 요구하는 행위는 콘텐츠 차별을 금지하는 '망 중립성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입장문에는 “전 세계 어느 법원이나 정부 기관도 CP가 ISP에 '망 이용대가'를 지급하도록 강제한 예가 없다”는 내용도 담겼다. 항소 여부를 밝히진 않았으나, 판결 직후 반박 입장문을 낸 점을 보면 항소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SKB도 부당이득 청구·손해배상 소송 등 반소할 전망이어서, 장기전이 예상된다.
#망 사용료, 그게 뭔데?
과거엔 ISP와 CP간 망 이용 관련 갈등이 드물었다. CP들의 콘텐츠를 보려고 인터넷에 가입하는 이들이 많아 상부상조 관계였다. 그러나 콘텐츠 소비 흐름이 TV·인터넷에서 인터넷 기반 OTT·유튜브 등으로 급전환되고, 콘텐츠도 이메일·채팅 등 텍스트보다 고화질 영상이 많아지면서 ISP사업자들은 망 안정화를 위한 투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
즉 대량 트래픽이 발생해 네트워크와 설비에 대한 지속적 투자가 필요한 현실에서, 이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를 두고 갈등이 심화됐다. 결국 넷플릭스의 트래픽이 급증하기 시작한 2019년 말 SKB는 방송통신위원회에 넷플릭스와의 망 사용료 협상을 중재해 달라며 재정신청을 냈고, 넷플릭스는 이듬해 중재를 거부하며 사용료를 낼 의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해 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난해 4분기 집계를 보면 국내 일평균 인터넷 트래픽의 26%는 구글(유튜브)이고, 넷플릭스가 5%로 2위다. 5위권 내 국내 업체 네이버(3위·1.8%), 카카오(4위·1.4%), 웨이브(5위·1.2%)를 합친 것보다 많다. SKB는 넷플릭스가 국내 업체들과 달리 망 사용료를 내지 않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SKB는 또 넷플릭스가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지급하고 있는 망 이용대가를 유독 한국에서만 내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망 중립성도 ISP가 네트워크상에서 모든 콘텐츠를 차별 없이 다뤄야 한다는 원칙이지, 콘텐츠를 무상으로 전달하라는 원칙이 아니라는 것이 SKB 측의 설명이다.
넷플릭스는 일본 현지 ISP 파트너사에게 일종의 자사 캐시서버인 오픈커넥트(OCA) 유지를 위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받는 대가를 지급할 뿐이라고 선을 긋는다. 넷플릭스의 OCA는 자사가 서비스하는 국가에 캐시서버를 설치해 CDN 역할을 대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CDN은 인터넷 사용자에게 각종 콘텐츠를 더 빠르게 전송하도록 세계 곳곳에 캐시를 저장해두는 서버를 설치해 가까운 서버에서 콘텐츠를 전송한다.
#1심 판결 의미와 남은 과제는?
이번 판결과 관련 주목되는 것은 여러 쟁점 중 망 중립성 위반이라는 넷플릭스 주장에 제동이 걸렸다는 점이다. 법원은 넷플릭스 측에 ‘연결에 대한 지급 의무’가 있다면서 “망 중립성에 관한 논의나 전송의 유상성에 관한 논의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향후 타사에서 망 이용료 분쟁이 발생해도 글로벌 CP 콘텐츠가 국내 ISP 망에서 트래픽을 발생시킬 경우, 망 중립성 원칙을 앞세워 무상사용을 주장할 수 없게 된 셈이다.
다만 법원은 구체적으로 ‘망 이용료를 얼마나 어떻게 지불해야 한다’고 지정하진 않았다. 법원은 “금전으로 사용료를 지급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에 관한 대가가 지급될 수도 있다”며 “법원이 금전으로 그 지급을 명하는 것은 당사자들 사이의 합의가 완전히 결렬된 이후에 한해 신중히 이뤄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OTT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망 사용료 협상 가이드를 마련할 명분 정도만 확보한 것”이라며 “넷플릭스 측이 접속에 대한 비용 지불 의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협의해서 잘 정하라는 내용으로 사업자 간 협상력에 의해 정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이유로 SKB 승소에 발맞춰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진다. 정부는 지난해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통해 CP에게 서비스 안정성 의무를 부여했지만 대상에 해당하는 기준만 정했을 뿐, 서비스 안정성을 위해 얼마를 이용 대가로 내야 한다는 등 구체적 조항은 없다. CP 수익을 인터넷 용량 사용분을 기준으로 계산해 일정 비율을 공유하는 등 명확한 기준이 생기면, ISP가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에서도 제대로 된 망 이용료를 받을 수 있고 곧 국내 진출할 디즈니플러스, HBO 맥스, 아마존 프라임, 애플TV플러스 등 해외 CP와 계약을 할 때 국내 ISP가 갖는 협상력이 달라질 수 있다.
일각에선 해외 CP사 비용 부담이 늘면 소비자 이용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다만 넷플릭스는 이번 소송과 구독료 인상은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소송과 관련해서는 “원활한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제공하는 ISP와 고품질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CP 모두의 노력이 더해질 때 공동의 목적인 소비자 만족을 이룰 수 있다”며 “채무부존재 확인의 소송 판결 이후에도 공동의 소비자를 위한 국내 ISP와의 협력을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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