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재선 A 의원은 집권 3년을 정리해달라는 말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 대통령을 오랫동안 보좌해온 그는 “최근 민심 이반 조짐은 상당히 심각한 현상이다. 이러다 정권 재창출은커녕 이 대통령 퇴임 뒤도 걱정해야 할 판”이라며 위기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그는 “이 대통령은 지금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걸어온 비단길을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것”이라며 남은 2년도 우려하고 있다. 왜 30~40%대의 지지율에도 여권 내부에서 이런 걱정까지 쏟아지는 것일까. 답은 그 동안 이 대통령을 떠받치던 3각 편대의 지지층이 와해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대통령은 ‘운수대통’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지난 2006년 서울시장 퇴임과 함께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이 대통령은 단 2년의 ‘올인’으로 최고 권좌에 올랐다. 여기에는 여권의 라이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가지지 못한 이명박만의 지지텃밭 3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수도권 민심과 친이계의 헌신, 그리고 보수언론의 지원사격이 그것이다.
이 대통령은 포항 출신으로 영남이라는 확실한 지지층을 가지고 있었고, 여기에 서울시장을 지낸 인연으로 수도권 민심을 덤으로 챙길 수 있었다. 영남에 치우친 박 전 대표와 달리 지지층이 다양하게 분포되었던 것이 경선 승리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 대통령은 영·호남 출신의 수도권 거주자들이 자신의 생활 터전과 연동된 이익투표를 하는 새로운 투표성향, 즉 ‘수도권 민심’의 첫 번째 수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집권 3년을 넘기면서 자신의 황금어장이었던 수도권의 민심이 이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집권 4년차를 맞는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2월 21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정수행 지지율이 39.1%로 전주(42.2%)보다 추락했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이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추락한 것은 지난해 지방선거 직후의 39.5%에 이어 8개월 만의 일이다. 그런데 이 조사의 지역별 분포를 보면 특히 서울에서 7.3%p, 인천·경기에서 7.2%p씩 폭락해 수도권의 민심 이반이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여론조사 기관의 한 관계자는 “아직 일정한 패턴을 말하기에는 이른 점이 있지만, 이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 추세에 접어들 수 있는 악재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수치다. 최근 수도권 전세동향이 서민주택을 중심으로 몇 천만 원씩 올라 여론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물가도 식료품들을 중심으로 많이 올라 식대에 부담을 느낀 직장인들의 편의점 도시락 판매가 급증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 주가추락은 그렇다 하더라도 중동사태로 기름값도 계속 부담이다. 이렇게 서민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주는 경제지표가 악화되다 보니 그동안 지지율에 둔감하던 중도보수층, 즉 이 대통령의 지지층이 서서히 등을 돌릴 조짐을 보이는 것이 수도권 민심의 이반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 대통령을 지지하던 수도권 민심의 둑이 터지면 그것이 곧바로 주 지지층인 영남마저 위협하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세종시 정국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당시 세종시 여론조사를 했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충청은 원안고수에 압도적 찬성이었지만 전국적인 여론은 수도권 민심이 많이 반영된 결과 수정안 찬성 의견이 우세하게 나타난 적이 있었다.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밀집해 있고 여론 주도층이 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수도권의 여론이 서서히 지방으로 내려가는 패턴도 읽을 수 있다. 수도권 여론이 이 대통령의 전통적 지지층인 영남 민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의 수도권 민심 이반은 심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수도권 민심 이반과 함께 자신이 공천을 줬던 친이계 핵심세력의 이탈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릴 수 있다. 사실 범 친이계는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 초년생임에도 대권에까지 오르게 한 결정적인 친위대였다. 박 전 대표가 계파관리를 하지 않아 친박계 일부까지 흡수한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재오 특임장관을 중심으로 한 친이계의 결정적 도움으로 당심을 끌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세종시 수정안 정국 등을 거치며 친 이명박이 아닌 친 이재오계와 친 김문수·정몽준 그리고 중립성향으로 산산조각난 지 오래다. 올해 1월 초 기준으로 분류해본 한나라당 계파분포는 의원 171명 가운데 친이 성향은 92명, 이재오계는 24명으로 분류된다. 친박계는 66명까지 늘어났다. 여기에서 현재 개헌정국 등을 이끌고 있는 의원들은 모두 이재오 특임장관의 최측근뿐이다. 이들마저도 공천에 불안을 느낀 중진, 소신 없는 초선들이 거수기 역할을 하는 정도다.
여당의 한 다선 중진은 최근 개헌 정국에서 노정된 친 이재오계의 모래알 행보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세종시수정안도 관철시키지 못한 정부 여당이 그보다 10배는 더 무거운 개헌을 어떻게 하겠냐. 분당할 자신이 있나. 분당할 각오를 해야 하는데 분당하면 박근혜가 나가겠냐. 아니면 친이 주류가 나가야 하는데, 이재오 계보 중 따라갈 의원이 몇 명이나 되겠나. 개헌 추동은 당내 평지풍파만 일으키는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개헌 때문에 친이가 결집한다는 것도 난센스다. 그게 어떻게 레임덕 방지냐 초래지. 정부 여당이 일사불란하지 못하고 정부 정책 추동력이 떨어지는 게 레임덕이다. 이재오가 앞장서면 친이계들이 결집한다는데, 결집은 뜻이 같아야 한다. 친이 핵심이라는 사람은 몇 명 안 된다. 아마 제일 먼저 도망갈 사람들이 친이 핵심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정치권의 한 정치컨설턴트는 이에 대해 “친 이재오계는 이명박 대통령이 못한다고 친 박근혜로 돌아서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국정 동력을 잃고 있는 이 대통령 곁에 있을 수도 없다. 개헌이야 공천 때문에 눈치 보며 발을 걸치는 것이지만 그 뒤 언제라도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반기를 들며 총선 표심을 의식할 것으로 본다. 이들은 ‘반 박근혜’, ‘극 이명박’을 외치며 새로운 보스를 영입하려고 할 것이다. 이재오 장관이 이 대통령 퇴임 전에 퇴장당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국정 운영의 최대 우군이었던 친이계 다수를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노무현 정권 말기처럼 여당에 왕따 당한 고립무원의 청와대를 재연할 가능성이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집권 4년차를 맞는 이 대통령은 자신이 향유했던 언론의 지원 역시 기대할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방송은 MBC 김재철 사장의 연임과 KBS 김인규 사장의 ‘충성’으로 어느 정도의 밀월을 더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신문의 경우 지난 2007년 대선후보 경선 이후 맛봤던 달콤한 ‘펜 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최근 일부 보수신문 논조는 옛날의 야당지를 보는 것처럼 굉장히 비판적이다. 구제역 침출수 논란 등의 아젠다를 선도하고 있고, 일방적인 개헌에도 부정적이다. 물가파동과 전세대란 등도 기획기사로 다루는 등 최근 보수신문의 논조는 어느 것 하나 이 대통령에게 호의적인 것이 없다”라고 전제하면서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보수신문의 종편 허용에 대한 약발이 떨어졌고, 집권 후반기 권력 감시의 본연 기능, 그리고 차기 집권이 유력한 박근혜 전 대표로 옮겨가기 위한 권력 이양 준비기로 이 대통령을 때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또한 “보수언론이 이 대통령의 기대이하 리더십에 완전히 등을 돌렸다는 얘기도 나오더라. 특히 인사에 있어 고려대 인맥과 이상득 라인 등이 완전히 독점하면서 기득권층의 극심한 반발을 부른 게 도화선이 된 것 같다. 앞으로 보수신문은 종편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더욱 이명박 대통령 때리기에 나설 것으로 보여 청와대는 더 이상 예전 같은 언론의 환대를 기대하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중에는 ‘노무현-이명박 경제성적표 실증적 대비교’라는 자료가 떠다닌다. 대충 봐도 30여 가지 중에 이 대통령이 우세한 항목은 거의 없다. 역대 정권 사상 최대의 지원세력을 확보하고도, 정작 그의 전공 성적표는 낙제로 가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입방아 오를까봐 ‘문단속’
최근 박근혜 전 대표가 일부 친박세력의 공개적인 대권 조직 활동에 경고장을 날렸다. 그는 친박계 언론계 모임인 ‘선진사회언론포럼’이 지난 2월 25일 서울 여의도에서 성대하게 발대식을 거행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모임 대표인 김형태 씨(전 KBS 국장)에게 구두 경고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지난해 말 국가미래연구원이 공개 발족하자 일부에서 “대권 경쟁이 조기 점화돼 현 정권에 부담을 준다”라는 비판이 나온 데 따른 문단속 성격이 짙다.
김형태 대표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연구단체는 참석 가능하지만 오해 받을 소지가 있는 모임은 하면 안 된다고 했다. 또한 일부 기자들이 그 모임을 확인 요청하는 등 과열양상을 보이자 박 전 대표가 짜증을 내기도 했다”며 “박 전 대표가 ‘오해받을 일은 가급적 하지 말라’ ‘복잡다단한 일로 나라가 평온치 않는데 특정정치인 지지 성격의 모임은 지양하라’는 메시지를 내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친박계 한 핵심 관계자는 “최근 개헌론과 과학벨트 등을 둘러싸고 박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저항하는 듯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자 박 전 대표가 이전보다 더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일부 친박계가 공개적인 조직 활동을 하게 되면 또 말이 나올 것 같아 내부 단속을 철저히 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이에 선진사회언론포럼은 충남 계룡시에서 ‘조용하게’ 발대식을 갖고 독자적인 활동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이 조직은 언론학 등 사회과학 전공 교수와 전·현직 언론인 등이 주축이 된 연구모임으로 이름이 유사한 선진사회연구포럼과는 별개의 조직인 것으로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