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이슬람 사원. |
최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슬람 채권법) 처리가 정치권의 반발로 무산된 뒤 한 정부 관료가 쏟아낸 말이다. 이른바 이슬람 채권(수쿠크)에 면세혜택을 줘서 오일 머니를 한국으로 끌어들이겠다던 정부의 계획이 좌초된 셈이다.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이슬람 채권법은 이미 2009년부터 추진되어 왔지만 올해처럼 정치권 반발이나 기독교계 불만 등이 한꺼번에 폭발한 적은 없었다. 그동안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만이 이슬람 채권법이 다른 외화표시채권에 비해 지나친 특혜를 주는 것이라며 반대해왔다. 그렇다면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 정부 관료들 중 상당수는 청와대가 이슬람 채권법을 만들었을 때만큼 강력하게 밀어붙이지 못할 정도로 레임덕에 빠진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9년 9월 중동 오일머니 유치를 위해 이슬람 채권인 수쿠크에 세제 해택을 주는 이슬람 채권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금융위기 여파로 외화자금이 급속히 빠져나가면서 ‘제2의 외환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위기론에 휩싸인 상태였다. 이슬람 채권법을 통해 외화자금선을 다변화시켜 향후 금융위기와 같은 충격이 재발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슬람 채권인 수쿠크에 세제 혜택을 주려고 한 것은 이슬람 채권이 말과는 달리 사실상 채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율법인 샤리아에 따라 이자를 받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샤리아에서는 이자(아랍어로 리바)를 불공정하고 착취적이며 비생산적인 것으로 금기시한다. 이슬람은 상행위로 인한 위험을 채권자나 채무자가 공평하게 분담해야한다고 보는데 이자 자체가 위험을 채무자에게만 씌우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채권이라는 금융상품 자체가 정기적으로 이자를 수수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슬람에서는 채권을 발행하는 기관이 부동산 등 현물자산에 투자해 여기서 나오는 임대료 등을 이자 대신 투자자들에게 지급하게 된다. 채권과 마찬가지로 대개 6개월에 한 번씩 임대료 등의 수익을 지급한다.
이러한 특수한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이슬람 채권, 수쿠크라고 부른다. 이슬람 채권은 투자 대상의 형태에 따라 부동산 등 유형자산에 투자하는 이자라 수쿠크, 상품 매매를 대상으로 하는 무라바하 수쿠크, 건설사업에 투자하면 이스티스나 수쿠크, 투자사업을 대상으로 삼으면 무라카 수쿠크로 불린다.
문제는 이슬람 채권의 만기가 다했을 경우에 발생한다. 부동산 등 현물자산에 투자했기 때문에 이를 다시 팔아서 원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이러한 매매 과정에서 양도세와 취·등록세 등 각종 국세와 지방세가 부과되는 것이다. 현재 국내 기업들이 발행하는 외화표시채권을 사는 외국인의 경우 채권 이자소득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런데 국내 기업들이 이슬람 채권을 발행할 경우 이는 법률상 채권이 아니기 때문에 비과세 혜택을 받기 어렵고, 나중에 원금 회수과정에서 추가로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정부는 이를 고려해 이슬람 채권에 대해 양도세와 취·등록세 등을 면세하는 내용의 이슬람 채권법을 마련했다.
정부의 이러한 법안 내용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처럼 이슬람 채권에 대해 면세혜택을 주는 국가는 전 세계에 영국과 싱가포르 아일랜드, 단 3개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2003년 이후 법률 개정을 통해 이슬람 채권에 대해 취득세를 감면해주고 있고, 싱가포르는 2006년, 아일랜드는 2009년에 감세법안을 마련했다. 그 외의 국가들은 이슬람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조세법률까지 손대지는 않고 있다.
현재 이슬람 채권법이 부재한 상태에서도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이슬람 자금이 30조 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는 것도 정부의 법안 성립에 약점으로 꼽혔다. 이러한 문제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이가 이혜훈 의원이다. 이 의원은 이슬람 채권법이 다른 채권에 비해 지나치게 면세 혜택이 많다는 점을 들어 반대해왔고, 그동안 이슬람 채권법에 무관심했던 의원들도 이 의원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법안 자체에 담겨져 있다.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에는 ‘이자수수를 금지하는 종교상의 제약을 지키면서’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헌법이 규정한 정교분리의 원칙을 정부 스스로 저버리면서 이슬람 채권 문제가 종교 논쟁으로 확산될 불씨를 만들어놓은 것으로, 최근 기독교계가 이슬람 채권법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할 멍석을 깔아준 셈이다.
이처럼 엉성한 법률을 가지고도 2009년 9월에 국회에 제출하고,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 안돼 힘이 쏠린 상황인 데다, 금융위기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시키려던 계획이 이혜훈 의원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이슬람 채권법 자체가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다.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 의원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이 생긴 것이다.
야당은 최근 일부 언론이 정부가 UAE 원전사업 계약을 불리하게 맺었으며,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이슬람 채권을 통해 마련하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반대할 명분을 잡게 됐다. 여기에 기독교계마저 이슬람 채권법에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이슬람 채권법을 통과시키려는 기획재정부는 발을 동동 굴렀지만 여기에 힘을 실어줘야 할 청와대는 전혀 손을 쓰지 못하는 모습이다. 당·정 회의에서도 이슬람 채권법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하는 등 전선을 정비하지 못했다.
정부 관계자는 “여당에서는 4·27 재보선을 치른 뒤에 이슬람 채권법을 처리하자는 분위기지만 현재 문제는 재보선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영이 여당 내에서도 통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누구도 총대를 메지 않는 상황이 이슬람 채권법과 얽히면서 레임덕이 가속화되는 모습”이라면서 “불교계와 사이가 나빠진 상태여서 기독교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보니 여기에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등 이슬람 채권법의 처리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청와대가 힘이 빠진 상황에서 여당이나 기독교계를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