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식의정보원 홈페이지의 일본 롯데에 대한 소개. |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1941년이다. 신 총괄회장의 당시 나이는 19세. 그는 일본에서 비누, 껌을 팔며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1948년 주식회사 롯데를 세웠다. 이것이 오늘날 한·일 양국 롯데의 기초가 된 회사다. 그는 20년 만에 롯데를 일본 1위의 제과회사로 키워냈고 이를 바탕으로 1967년 한국 시장에 진출하게 된다.
일본 롯데를 통해 끌어 모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신 총괄회장은 한국에서 제과, 유통, 호텔, 레저, 석유화학 등으로 사업을 크게 확장해 나갔다. 신 총괄회장이 일본으로 건너간 시점에서 70년이 지난 현재 한국 롯데그룹은 재계 5위(2010년 공정거래위원회 자료 기준)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롯데그룹이 다른 대기업들과 구별되는 특징 중 하나는 지배구조가 폐쇄적이어서 경영권이 안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국 롯데는 73개가 넘는 계열사 중 8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비상장 회사로 이뤄져 있다. 8개의 상장 계열사는 비상장 계열사인 호텔롯데가 실질적으로 지주회사 역할을 하면서 음식료 제조 분야는 롯데제과가, 유통 분야는 롯데쇼핑을 위주로 해서 출자가 이뤄지는 피라미드 형태의 지분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금융계열사인 롯데캐피탈과 롯데카드 롯데손해보험 역시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이 나눠 지배하고 있다.
석유화학과 관광레저 사업 분야는 일본 롯데홀딩스 등을 통한 간접 지배방식을 택하고 있다. 호남석유화학의 최대주주는 일본 롯데물산(33.6%). 뒤이어 호텔롯데와 일본 롯데홀딩스가 각각 13.6%, 10.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최대주주인 롯데물산은 일본 롯데홀딩스(지분율 68.9%)의 지배를 받고 있다.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호텔롯데의 최대주주 역시 일본 롯데홀딩스다.
즉 한국과 일본에 있는 비상장 계열사들을 통한 폐쇄적인 지배구조로 철저하게 오너 일가가 그룹을 지배하게끔 만들었다. 그 한가운데에는 일본 롯데가 자리 잡고 있다. 일본 롯데는 일본 내에서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한국 롯데 직원들도 지배구조를 정확히 알지 못할 정도다. 한국 롯데 관계자는 지난 2월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호텔롯데를 지배하고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에 대해) 비상장사라서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부회장이 어느 정도 지분을 나눠 가지고 있는지는 우리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현재 일본 롯데보다 10배 정도 큰 자산 규모를 가진 한국 롯데는 장남인 신동주 부회장이 아닌 차남인 신동빈 회장이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국 롯데를 지배하는 일본 롯데 홀딩스는 사실상 신동주 부회장 소유로 알려져 있어 경영은 동생이, 소유는 형이 하는 셈이 된다. 경영권과 소유권이 일치해야만 불화가 생기지 않는 재벌가의 특성상 롯데그룹의 이런 구조는 다소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재계가 롯데그룹의 지배구조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결국 일본 롯데의 지배구조를 풀어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본 롯데의 지배구조는 한국 롯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복잡하고 폐쇄적이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 롯데를 일본 내에서도 가장 폐쇄적인 기업으로 꼽고 있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일본판에 따르면 일본 내에서 친족이 지배하는 경영 방식의 회사를 ‘동족경영회사’라 부르는데 일본 롯데와 주류회사인 ‘산토리’를 대표적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상장 회사는 물론 일정 규모 회사에 대한 정보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도쿄증권거래소 검색 시스템을 통해 상장 회사에 대한 정보만 얻을 수 있다. 2011년 2월 24일 현재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 있는 회사는 외국 회사를 포함 총 2289개다. 상장 회사는 지배구조나 주요 주주 등 기업 현황들을 공개하고 있으나 비상장 회사들은 상대적으로 주요 주주 공개를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현재 일본 롯데 계열사 중 상장사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롯데는 롯데홀딩스가 전체 계열사를 관리·감독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롯데홀딩스 밑에 30개 정도의 계열사가 있다. 일본 롯데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서는 17개의 계열사만 소개하고 있으나 일본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해보면 30개 정도의 계열사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식회사롯데, 롯데상사, 롯데아이스 등 식음료 사업을 영위하는 7개 계열사가 일본 롯데 전체 매출액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외에 롯데리아, 크리스피 크림 도넛, 버거킹 저팬 등의 외식 계열사와 롯데부동산, 롯데물산, 롯데냉동 등 서비스 계열사들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일본 프로야구단인 지바 롯데 마린스는 일본 롯데그룹의 레저·스포츠 계열사에 속해 있다. 식품, 외식 계열사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같은 그룹 계열사들과의 거래를 통해 매출이 발생하는 구조다. 가령 포장 자재를 주로 판매하는 계열사인 ㈜광윤사는 롯데상사, 롯데아이스, 롯데물산 등이 주 거래처다.
2009년도 일본 롯데 전체 매출은 4700억 엔(약 6조 4500억 원)으로 같은 해 한국 롯데 매출액 35조 원의 약 15% 수준이다. 매출에 있어서 핵심 계열사라 할 수 있는 롯데물산, 롯데상사, 롯데부동산 등은 여전히 신격호 총괄회장이 대표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다. 후계자로 알려진 신동주 부회장은 그동안 계열사 가운데 규모가 작은 편인 롯데서비스에만 대표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가 최근 롯데상사의 대표이사에 올랐다.
일본 롯데그룹의 지배구조가 드러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주주 구성 때문이다. 롯데는 일본에서 누구 소유인지 알기 어려운 투자전문회사를 여러 개 만들어 출자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오너가 직접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것과 달리 오너 소유일 것으로 추정되는 회사를 통해 간접 지배하고 있는 방식이다. 투자전문회사는 일반인들에게 거의 노출될 우려가 없기 때문에 주목도도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 롯데 핵심 계열사의 지분 내역을 살펴보면 ‘주식회사 L 제○ 투자회사’가 눈에 띈다. 이 회사는 숫자를 달리해 제1투자회사부터 제12투자회사까지 있는데 한국 호텔롯데와 일본 ㈜롯데의 주요주주다. 투자회사들은 대부분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롯데빌딩에 주소를 두고 있다. 롯데그룹의 얽히고설킨 지배구조를 풀기 위해서는 이 투자회사들의 지분 내역을 알아야 하는데 이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결국 일본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역시 오너 일가 중에서도 일부만이 알 수 있게 여러 번 꼬아놓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재계 일각에서 롯데그룹을 빗대어 ‘롯데왕조’라 부르기도 한다. 오너 일가가 아니고서는 넘볼 수 없는 철옹성 같은 경영권을 달리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이 철옹성을 유지할 수 있는 비밀은 오너만이 알 수 있는 복잡한 지배구조에 있지 않을까.
박혁진 기자 phj@ilyo.co.kr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일본롯데도 경영권승계 가속화
지난 2월 10일 롯데그룹은 정기 인사를 통해 신동빈 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켰다. 그동안 회장직을 유지하던 신격호 회장은 총괄회장을 맡기로 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사실상 경영권을 신 회장에게 넘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국 롯데 경영권이 신 회장에게로 넘어가고 있는 시점에 일본 롯데의 신동주 부회장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
이와 관련해 <일요신문>은 최근 일본 롯데에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인사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신 부회장이 지난 1월 26일자로 롯데상사의 대표이사 및 사장에 취임한 것이다. 이는 한·일 롯데에서 경영권 승계 작업이 동시에 가속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일이다. 그가 대표이사에 취임한 날은 신동빈 한국 롯데 회장이 승진하기 보름 전이다.
롯데상사는 일본 롯데그룹 내에서 롯데물산과 함께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주력 회사로, 지난 1952년 창업 이래 줄곧 신격호 총괄회장이 대표이사를 맡아 왔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롯데상사가 대표이사를 교체한 것은 창사 이래 6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한국 롯데가 신동빈 회장 체제로 개편되는 것처럼 일본 롯데도 신동주 부회장 체제로 조직이 정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