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지방에서 올라와 혼자 지내는 직장인들에게 애로사항을 물으면 가장 먼저 돌아오는 대답이 대부분 ‘외롭다’는 말이다. 가족들과 북적거리는 집에서 지내다 독립을 하게 되니 적막감이 배로 커진다. 전자업체에 근무하는 L 씨(31)는 직장생활 4년차다. 처음 서울에 있는 회사에 합격했을 때는 돈도 벌고 자유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 흐른 지금은 오히려 폐인에 가까운 생활을 하게 됐단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생활하는 것 자체는 좋습니다. 하지만 혼자 산다는 게 문제예요. 입사하고 1년 지난 후부터 엉망이 되기 시작했어요. 일단 아침은 굶고 매일 사먹는 밥에 저녁에도 인스턴트 식단 위주로 하다보니까 건강도 나빠지고 몸무게가 15㎏이 늘었어요.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가면 지저분한 방부터 눈에 들어오지만 그냥 대충 옷가지들을 구석으로 밀어 넣고 침대에 눕고 말죠. 그럴 땐 어머니가 챙겨주는 저녁이 그립습니다. 택배 받아줄 사람도 없죠. 며칠 전에는 큰 장바구니를 문고리에 걸어놓고 왔어요. 택배 아저씨가 전화해서는 웃더니 물건 넣어놨다고 하시더군요.”
디자인업체에 근무하는 K 씨(여·29)는 여성이라서 느끼는 불리한 점도 많다고 하소연한다.
“그동안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다세대 주택가에 살았어요. 그러다 두 달 전에 회사 근처 오피스텔로 옮겼습니다. 월세도 더 비싸고 관리비도 만만치 않지만 일단 안심이 돼요. 전에 원룸촌에 살 때 바로 집 근처에서 성폭행 사건이 있었어요. 그 뒤로 퇴근 후 어두운 골목길 지나는 것도 항상 겁나고 집에 무사히 들어와도 불안했죠. 결국 이사를 결정했습니다. 가족들과 떨어져 있어서 외로운 건 말할 것도 없지만 위험한 상황이 닥쳐도 바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예요. 고향에서 살 때는 가족들이 같이 살아서 그런지 이웃끼리 잘 알고 지내고 했는데 여긴 그렇지 않아서요.”
지방 출신 직장인들은 경제적으로도 불리한 점이 많다. 물가도 그렇지만 일단 거주비용이 상당하다. 한마디로 돈 모으기가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식품회사에 근무하는 S 씨(31)는 며칠 전 입사 1년 후배와 이야기를 하다가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회사는 1년이나 먼저 들어왔는데 모은 돈이 후배와 별 차이가 없었단다.
“밥 먹고 친한 후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산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 후배는 이제 입사 3년차, 꽉 채워 2년인데 5000만 원 가까이 모았다고 하더군요. 저는 평소에 아끼고 아껴서 그렇게 모은 건데 그 후배가 헤픈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허리띠 졸라매면서 사는 것 같지도 않았거든요. 저는 일단 월세에 각종 공과금, 관리비를 합하면 50만 원이 훌쩍 넘어요. 약속 좀 잡고 하면 적금 넣기도 빠듯하죠. 부모님과 함께 사는 그 후배는 순수한 자기 용돈을 제외하면 따로 들어가는 돈이 없는 것 같더군요.”
최근의 전세대란도 지방 출신 직장인들을 서럽게 만든다. 어차피 들어가야 하는 비용이지만 언제 얼마나 오를지 늘 걱정이다. 외식업체에 근무하는 O 씨(여·32)는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이사 갈 집을 알아보고 있다. 얼마 전 집주인으로부터 갑작스런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계약만료 한 달이 조금 안 남은 시점에서 집주인이 월세를 올려달라고 하더군요. 보증금을 2000만 원 올려주든가 월세 20만 원을 올려주든가 해야 하는데 둘 다 여의치가 않아요. 갑자기 목돈을 마련하는 것도 어렵고, 안 그래도 월세가 적지 않았는데 여기서 20만 원을 더 올리면 생활이 너무 힘들어져서 이사를 결정했습니다. 전세대란 뉴스가 계속 나올 때도 남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바로 영향이 오네요. 일단 집이 안정이 안 되니 업무에도 집중하기가 힘들더라고요.”
낯선 도시에서 생활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힘들다. 올라와 직장에 다니는 것도 그렇지만 거꾸로 고향에 한번 내려가는 것도 만만치 않다. 물류회사에 다니는 P 씨(29)는 지난해 설 연휴에 서울에 사는 직장동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단다.
“최악의 연휴였어요. 토, 일, 월 이렇게 3일이었잖아요. 금요일까지 근무하고 토요일에 집에 내려가는데 연휴가 짧아 그런지 교통체증이 굉장했어요. 부산까지 갈 때만 8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그렇게 갈 때 하루, 올 때 하루 잡으니 좀 편하게 쉴 수 있는 건 일요일뿐이었는데 그것도 여러 친척들에게 인사드리고 하다 보니 금세 갔죠. 월요일 밤에 올라와서는 완전히 녹초가 됐어요. 서울에서 주말에 쉴 때보다 두 배 이상은 힘들었어요. 서울이 고향인 동료들은 편히 쉬었겠죠. 그래서 설이나 추석 때 연휴가 짧으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고 말이에요.”
지방 출신이라서, 지방 출신이기 때문에 겪는 애로사항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사투리’다. 금융회사에 근무하는 C 씨(26·여)도 사투리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다. 입사 전부터 고치려고 일부러 서울말을 연습하기도 했다고.
“입사 전에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회사에서 사투리를 많이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입사하니 실제로 심하게 사투리 쓰는 분들이 없었어요. 특히 회의할 때나 공식적으로 보고를 올릴 때는 분명히 지방 출신인데 거의 티를 내지 않더군요. 저도 고쳐야겠다고 절감한 게, 그냥 기분 좋게 이야기한 건데 의외로 공격적인 말투로 오해를 하시더라고요. 고객과 전화통화를 할 때도 상대방이 못 알아들어서 애먹은 적도 몇 번 있었고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는데 요새도 시간 날 때마다 연습하곤 합니다. 하지만 20년 넘게 쓴 말투를 완벽하게 바꾸는 건 쉽지 않네요.”
객지에서 혼자 사는 것도 힘든데, 직장생활도 녹록지 않다. 자립심이나 생활력은 높아지겠지만 뭐든지 비싼 서울에서 터전을 일궈야 할 앞날이 걱정이다. 가뜩이나 애환 많은 직장생활인데 지방 출신이라 애환이 두 배로 커진다.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는 밥 먹고 출퇴근하는 서울 출신 직장인들이여, 옆에 지방 출신 동료가 있다면 오늘 위로주라도 한잔 사시라.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