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출신 뇌 과학자 크리스토퍼 채브리와 다니엘 시몬의 책 <착각의 과학(원제: The Invisible Gorilla: And Other Ways Our Intuitions Deceive Us, 2010년)>이 최근 일본에서 번역 출간돼 화제다. <착각의 과학>에서 두 과학자는 “퍼즐 풀기, 퀴즈 맞히기, 간단한 계산 등 흔히 추천되는 뇌 훈련 프로그램이 치매 예방에 아무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대신 언뜻 보면 뇌 기능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으로 보이는 걷기가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두 저자에 따르면 한마디로 산수 풀기나 단어 맞히기 등의 훈련으로 뇌 기능이 향상되지는 않는다는 것. 단기적 기억력을 훈련할 수는 있어도 문제 처리 능력이나 인지 능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저자들은 1998년 미국 국립위생연구소가 후원한 대규모 실험에서도 이 사실이 증명됐다고 한다. 실험에서는 무작위로 추출한 2832명의 고령자를 4개 조로 나눠 3개 조에는 각기 언어 기억, 문제 해결, 문제 처리 속도 향상 등의 훈련을 시키고, 나머지 1개 조는 대조군으로 아무런 훈련도 시키지 않았다. 훈련 그룹은 약 6주간 하루에 1시간씩 두뇌 훈련을 받았다. 그 결과 실험 참가자는 훈련받은 것에 대한 해결 능력은 좋아졌으나 치매 예방이나 개선 효과는 없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신경과학자 아드리안 오웬이 두뇌 훈련 게임으로 실제로 기억력이 향상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 논문을 실었다. 이 논문의 결론은 ‘실험 참가자에게 두뇌 능력이 향상된 뚜렷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것. 일반인들의 인지 기능이 향상되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저자들은 엄마가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태아의 머리가 좋아진다는 태교에 관한 속설도 비판한다. 1993년 <네이처>에 게재돼 유명해진 ‘모차르트 효과’ 논문은 그 후 여러 과학자 그룹이 실험한 결과 완전히 낭설로 판명 났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즈니사의 유아용 DVD ‘베이비 모차르트’ 등 온갖 태교용 음악이 날개가 돋친 듯 팔리고 있는 것을 두고 장삿속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인지심리학자인 시모조 신스케 캘리포니아 공대 교수도 “모차르트 곡이 태교에 좋다는 건 과학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일축한다. 물론 태아가 청각능력을 갖고 있는 점은 확실하나 엄마 몸에 마이크로폰을 넣어 들어본 결과, 뱃속에서는 전혀 다른 소리로 바뀌기 때문에 아무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임신 중인 엄마가 심리적으로 안정되는지는 몰라도 그 외의 효과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
그렇다면 뇌를 건강하고 젊게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이 두 저자는 뇌에 가장 좋고 치매 등을 확실히 예방하는 방법은 ‘걷기’라고 말한다. 유산소 운동인 걷기로 뇌의 혈류를 증가시키고, 인지능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인 뇌척수의 회백질 감소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들은 노인들이 가만히 앉아서 퀴즈나 퍼즐, 카드놀이를 하거나 산수를 푸는 것보다 야외에서 조금이라도 걷는 편이 뇌의 건강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일리노이대학 인지신경학자 아더 크레이머도 같은 견해를 피력한 바 있는데, 고령자를 무작위로 실험한 결과 매주 3시간씩 걷기가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착각의 과학> 저자들은 인간의 인지 메커니즘과 신경심리학 및 인식과 기억의 한계를 주제로 연구해왔다. 지난 2004년 하버드대학이 기발한 과학 연구에 대해 수여하는 이그 노벨상(Ig Nobel Prize)의 심리학 부분을 수상한 바 있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