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보궐선거 출마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 |
당초 손 대표의 출마론을 제기한 쪽은 비주류인 쇄신연대모임이었다. 문학진 의원이 지난 2월 21일 당 개혁특위 전체회의에서 “손 대표가 여러 고민이 있겠지만 당과 대표 개인을 위해서도 승부수를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분당을 출마를 주장했다. 문 의원은 “분당을에서 손 대표가 당선될 가능성이 있고, 설령 낙선하더라도 손 대표가 손해 볼 게 없다”면서 “혁신적인 지각 변동을 만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손 대표 측이 “전체 재보선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서 출마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거부했고, 당내에서도 “실현 가능성이 낮은 얘기”라며 큰 이슈로 삼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강원도지사 선거를 위해 공을 들여오던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의 영입이 불발에 그치고, 경남 김해을에서 유력 후보로 거론돼온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당내 기류가 바뀌었다. 재보선 전망에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파격적인 돌파구가 마련돼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분당을은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인식되는 ‘준강남’ 지역이고, 정운찬 전 총리의 출마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터여서 손 대표가 출마를 선언할 경우, 일시에 최대의 빅 매치로 부상해 선명한 대진표가 완성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분당을 출마 주장이 손학규 체제를 견제하려는 비주류의 정치적 의도성보다는, 재보선 승리 전략의 핵심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손 대표 출마 주장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이 지역의 전 의원이었던 임태희 대통령 실장은 지난 2008년 4·9 총선에서 71.1%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다. 당시 민주당 김종우 후보는 26.7%였다. ‘경기도의 강남’이라고 부를 만한 결과였다. 하지만 지난해 6·2 지방선거 결과는 판이한 결과를 보여줬다.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이재명 현 성남시장은 분당에서 44.6%를 기록해 50.6%를 얻은 한나라당의 황준기 후보와 6%포인트 차이를 보였다.
분당지역 성남 시의원 분포를 보면 민심의 변화상이 더 확연해진다. 전체 14명 중에 한나라당이 8석, 민주당이 5석, 민주노동당이 1석을 차지했지만, 야 4당의 정당 지지율을 모두 합산하면 47.7%로 한나라당 지지율 49.5%에 불과 1.8%포인트 뒤진다. 경기교육감 선거에서도 진보 성향의 김상곤 교육감은 분당에서 40.6%의 득표율로 1위를 기록했다. 이때부터 ‘강남좌파’라는 말이 나돌았는데, 지속된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자산가치 하락과 신도시의 특성에 따른 재개발 문제가 겹치면서 ‘야도’(野都)가 됐다는 분석이 많았다. 이런 지역정서에 부응해 중도 성향인 데다 대학교수 출신의 ‘엘리트’인 손 대표가 깃발을 꽂는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민주당 의원은 “지금 제기되고 있는 ‘손학규 출마론’은 등 떠밀어서 절벽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 손을 잡아끌어 손쉽게 산을 넘게 해주는 필승전략의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손 대표가 이명박 정권과 민생, 정치 현안은 물론 청와대 회동문제 등을 놓고 개인적으로도 대척점에 서 있는 정국 속에서 정권심판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것보다 더 유리한 정치환경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보탰다.
하지만 손 대표 측 인사들은 “분당을까지 넘보는 것은 그야말로 과유불급”이라고 고개를 젓는다. 이미 전남 순천에서 야권연대를 위해 무공천을 결정한 마당에 나머지 세 곳에서 모두 승리를 노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손학규 흔들기’가 아니냐고 대응했던 초반 기류와는 확연히 다른 논리다. ‘선택과 집중’의 선거전략에서 보면 강원도지사 선거와 경남 김해을 선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손 대표의 측근인 차영 대변인은 “만약 손 대표가 분당을에 출마한다고 하면, 과욕을 부린다고 하거나 정세를 안이하게 판단하고 있다는 정반대의 비판이 빗발칠 것”이라고 응수했다. 강원도지사 선거와 김해을에서만 이겨도 재보선 승리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손 대표 측의 계산법인 셈이다.
논란 속의 ‘출마론’에 대해 손 대표는 아직 이렇다 할 ‘공식적인’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주변 인사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현재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치 1번지’ 종로에 대한 강한 애착을 여전히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년 4월 총선에서 종로에서 당선되는 것이 대권가도의 발판이라는 당초 구상을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당내 경쟁자인 정동영, 정세균 최고위원 등이 텃밭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만큼, 정치적 상징성을 갖는 종로에서의 당선은 이들과 질적 차이를 부각시키면서 본선 경쟁력에서도 더 한층 절대적인 위상을 굳힐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손 대표는 4일 광주를 방문해 순천 무공천 방침을 염두에 둔 듯 “광주·전남은 민주당의 모태이자 텃밭”이라며 “무한한 빚을 지고 있고 무한 책임을 느낀다”고 민심 달래기에 주력했다. 그는 지역 국회의원들과 가진 비공개 만찬 자리에서도 순천 무공천에 대해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정치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야권연대의 원칙과 명분을 지키는 것이 결국 큰 승리로 돌아온다는 ‘통큰 양보’의 일환이다. 인물난을 겪고 있는 ‘남의 땅’ 분당을에 연연하지 않고, ‘우리 땅’이었던 강원도와 김해을에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당내에선 “후보 영입이 더욱 난항을 겪을수록 손 대표에게 결단을 요구하는 여론은 더 거세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출마를 결정하든, 불출마를 선택하든지 간에 손 대표에게 분당을 선거는 녹록지 않은 과제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