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화면 캡처 사진. |
온라인 게임 사이트 직원까지 가담한 그야말로 ‘짜고친 고스톱’인 ‘짱구방’ 사기도박 사건 속으로 들어가 봤다.
영화 <타짜>에 등장하는 사기도박단은 능수능란한 손짓으로 순식간에 패를 바꿔치기하거나 패를 섞는 중 손 안에 쥐고 있던 유리한 패를 자기 패 안에 슬며시 넣는 숙련된 ‘기술자’ 3~4명으로 팀이 구성돼 있다. 돈을 잃은 피해자는 오히려 ‘한 번 더’를 외치며 더 큰 돈을 가지고 다시 도박판을 찾게 되고, 결국 전 재산을 잃게 되는 것이 여태껏 적발된 사기도박의 전형이었다.
최근 적발된 온라인 사기 도박판은 피해자가 홧김에 더 큰 돈을 구해오는 ‘악순환’ 고리는 비슷해도 별다른 기술력을 요하지 않았다는 점이 달랐다. 오히려 더 안전하고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는 사기 시스템이었다.
베팅금액도 어마어마하다. 바다이야기의 경우 경품취급고시를 기준으로 1시간에 9만 원 이하만 베팅할 수 있지만 고스톱과 포커, 장기, 바둑 등처럼 컴퓨터 화면에 하나의 보드를 만들어놓고 진행하는 웹 보드 게임의 경우 1분에 400만 원까지 베팅이 가능하다.
그렇다보니 수사기관에선 온라인 게임 사이트를 사기도박계의 ‘블루오션’으로 묘사하고 있다. 온라인 사기도박은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왔다 바보가 돼서 나간다는 의미에서 ‘짱구방’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비교적 단순한 유형의 사기 도박이긴 하지만 최근 2~3년 사이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까지 가세해 수법이 다양해지고 있는 데다 매년 진화해 단속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에 따르면 짱구방이 처음 적발된 것은 2003년이었다. 이때만 해도 짱구방은 사기도박단들이 모인 소규모 사무실을 뜻했다. 5명이 여러 대의 PC가 마련된 사무실에 모여 컴퓨터로 동시 접속해 각자의 카드패를 서로 알려주면서 포커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모르는 사용자가 접속해 포커게임을 시작하면 사이버머니를 몽땅 털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방법은 최소한 4명의 인원이 동시에 필요한 데다 장소섭외까지 해야 하는 수고가 필요했다.
그러나 2003년 6월경 한 중소 소프트웨어 업자가 호기심에 만든 일명 ‘짱구 프로그램’이 시중에 보급되면서 온라인 도박 사이트의 판도를 바꿔 놨다. 당시 업자 안 아무개 씨(전문 프로그래머)는 한 대의 컴퓨터로 나머지 4대 컴퓨터 화면을 동시에 볼 수 있고, 키보드 조작까지 가능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은 설치하게 되면 한 대의 컴퓨터를 가지고 4~5명의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었다.
이때만 해도 게임 사이트에서 단속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동일인이 동시에 2개 이상의 ID로 접속하는 것을 막기 위해 2명이 같은 IP 그룹으로 동일 게임방에 접속하면 화면에 빨간색 경고 표시가 나타나도록 해 신종 프로그램을 막았다.
그러나 ‘짱구방’ 운영자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각각의 컴퓨터에 다른 통신회사의 회선을 사용하거나 IP 주소를 다르게 세팅하는 프로그램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검찰에 따르면 짱구 프로그램 개발자들은 사기도박이 가능한 컴퓨터를 월 100만~200만 원에 임대해 줬다. 생활정보지에 광고를 내거나 쪽지를 보내 고객을 모았다. 압수된 안 씨의 통장에 찍힌 금액만도 수억 원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계좌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송금받는 금액까지 합산하면 수십억~수백억 원에 달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담당 수사관의 전언이다.
일단 짱구 프로그램만 구입한다면 돈을 불릴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검찰에 따르면 사기도박단들은 하루 에 최소 500조 원(환전금액 50만 원 상당)의 사이버머니를 획득했다. 컴퓨터를 보유한 사람은 장소를 제공해 시간당 사용료를 받거나 이득금 중에서 얼마(3분의 1 정도)를 받는 방법으로 한몫을 챙겼다.
짱구 프로그램은 어떤 사이트에나 통용됐는데 사이버머니의 현금 거래가는 사이트마다 달랐다. ‘한게임’ 사이버머니의 경우 100조 원에 7만~15만 원, ‘피망’ 사이버머니는 1조 원에 9만~16만 원선에 거래됐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이버에 존재하던 돈이 실제 현금으로 탈바꿈될 수 있을까. 정부는 웹보드 게임의 사행성이 높기 때문에 게임머니의 현금거래를 규제하고 있지만 게임 사이트들은 개인 캐릭터를 표현하는 아바타를 구매하면 충전해주는 방식으로 사실상 게임머니를 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가령 휴대전화 소액결제 등을 통해 해당 사이트의 사이버머니를 산 뒤 이를 이용해 아바타를 구매해 게임머니를 얻는 방식으로 현행법망을 교묘히 피하고 있다.
아예 사이버머니를 현금으로 환전해 주는 환전상도 존재했다. 환전은 주로 맞포커를 통해 이뤄졌다. 환전을 원하는 사람이 사이버머니를 1:1 포커를 통해 환전상에게 전부 잃어주면 환전상은 그 사이버머니에 해당하는 현금을 통장으로 송금해주는 방식이다.
이번에 적발된 짱구방 브로커 김 아무개 씨와 변 아무개 씨 역시 이러한 온라인 사기도박판에 뛰어든 ‘꾼’들 중 하나였던 셈이다. 이들은 온라인 게임 사이트의 게임이용자의 위법행위 등을 감시하고 제재하는 팀이 자회사 개념으로 분리돼 있는 점에 주목했다. 결국 박 씨를 비롯한 4명의 직원을 꾀어내 사례비를 건네고 단속을 피할 수 있는 ID를 교부받았다.
이들이 접근한 온라인 사이트는 하루 방문자만 해도 300만 명을 상회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사이트였다. 더욱이 짱구 프로그램 이용자들의 주 타깃은 웹보드 게임으로 분기당 1164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곳이었다. 따라서 겉으로는 사이버머니로 포장됐지만 실제로는 현금이나 다름없는 거액의 판돈이 오고가는 사행성 도박이 이 사이트에서 열렸던 셈이다.
결국 사이버 상에 존재하는 돈이 현금화되는 것이 범죄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관련 법률은 실태에 비해 느슨했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중앙지검 첨단수사2부 김영대 부장검사는 “게임산업진흥법에 의거해 게임물의 이용을 통해 획득한 유무형의 결과를 현금으로 환전, 알선하는 영업 행위는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어디까지를 영업행위라 볼 수 있는지 구체적인 횟수나 액수 등은 적시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