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 |
현재 삼성그룹 계열사 중 건설업을 영위하고 있는 곳은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삼성중공업 건설부문,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에버랜드 등이다. 시공능력으로 따지면 삼성물산이 가장 큰 규모다. 4개 계열사는 지금껏 서로의 영역이 겹치지 않는 선에서 사업을 진행해왔다.
삼성 측은 공식적으로 부인해왔지만 이부진 사장이 특히 삼성물산 건설부문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건 재계에선 ‘정설’이다. 이는 이 사장 담당 계열사 실무자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사장의 ‘힘’을 믿고 삼성물산 주식을 사들이는 삼성 직원들도 적지 않았을 정도다. 이에 재계에서는 그룹 건설 분야의 구도 재편에 관심이 집중됐다.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을 합병해 이 사장이 맡을 것이다” “삼성물산의 상사와 건설부문을 분리한 후 삼성에버랜드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건설사에 삼성물산 건설부문을 합병시킬 것이다” “건설 관련 분야를 모두 통합해 새로운 회사를 만들 것이다” 등 이 사장 중심의 다양한 건설업 재편 시나리오도 흘러나왔다.
게다가 지난해 이 사장이 삼성그룹 내 건설 분야에 대한 경영진단(감사)을 주도하면서 건설 분야에 대한 구도 재편 작업은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삼성그룹이 계열사에 대한 경영진단을 실시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지만 지난해에는 건설업을 영위하는 계열사에 대한 경영진단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삼성물산 건설부문에 대한 경영진단이 이뤄졌으며 11~12월에는 삼성SDS에서 실시되던 경영진단이 ‘올 스톱’되고 돌연 삼성중공업 건설부문에 대한 경영진단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다. 이 사장이 직접 관여하고 있던 삼성에버랜드 이외의 건설 관련 계열사 세 곳에 대한 감사가 실시된 셈이다. 삼성그룹 계열사 관계자는 “당시 이 사장이 직접 아버지 이건희 회장에게 허락을 맡아 감사가 시작됐고 직접 감사 보고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사장이 건설 계열사 경영진단 결과를 꼼꼼히 챙겼다는 것이 삼성 계열사 감사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런데 최근 경영진단 결과를 검토한 뒤 이 사장은 사실상 건설 분야에서 손을 떼기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장은 지난해까지 삼성물산 상사부문과 건설부문에 대한 보고를 함께 받았으나 최근에는 상사부문 보고만 받는다고 한다.
또 다른 삼성 계열사 관계자는 “이 사장이 경영진단 결과를 바탕으로 그룹 경영진과 상의한 끝에 조직 장악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마음을 접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관계자가 말한 ‘조직 장악’이란 어떤 의미일까.
이와 관련해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 쪽 일은 한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팀의 결속력이 강해서 팀장이 회사를 옮기면 팀원들도 함께 회사를 옮기는 게 일반적이다. 이는 공적을 나눠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로의 약점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사장이 건설 분야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인적 구성 자체를 새롭게 가져가야 한다. 결국 기존의 임원들을 정리해야 하는데 이 경우 조직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사장은 삼성에버랜드를 맡은 후에도 인허가 담당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임원을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삼성물산 건설부문 조직은 에버랜드보다 더 큰 데다 강한 결속력을 갖고 있어 이를 무리하게 해체시킬 경우 오히려 ‘긁어 부스럼’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이 사장과 삼성그룹 수뇌부의 판단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 계열사의 한 임원은 “가능성 있는 얘기”라고만 짧게 답했다.
최근 일부 언론을 통해서 4개 건설 계열사가 ‘영역침범 금지’라는 원칙을 깨고 무한 경쟁체제에 돌입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것도 이 사장이 건설 분야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한 다음에 정해진 방침이라고 한다. 뛰어난 경영 능력을 보이며 자신의 몫을 키워가던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사실상 건설 분야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진 그의 다음 목표가 궁금해진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
에버랜드 타고 ‘바이오’ 핸들링
삼성그룹이 최근 진출을 선언한 바이오제약 산업과 관련해 가장 주목되는 것 중의 하나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역할이다. 삼성은 오는 2012년까지 미국 바이오제약 서비스 업체인 퀸즈타일과 3000억 원 규모의 합작사를 설립키로 했다. 합작사 지분은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가 각각 40%, 삼성물산과 퀸즈타일이 10%씩 나눠 갖기로 했다.
지난해 전 세계 바이오의약품 시장 규모는 1442억 달러로 삼성그룹 주력 분야 중 하나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958억 달러)보다 50% 가까이 크다. 만약 삼성이 바이오제약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다면 이 사업은 삼성전자와 함께 삼성의 차세대 성장동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합작사에 지분을 투자한 삼성 계열사 중 이부진 사장의 영향력이 미치는 삼성에버랜드와 삼성물산 지분이 50%라는 점에서 이 사장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 사장이 경영에 대한 애착이 강한 데다, 때마침 삼성에버랜드가 신성장동력 찾기에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바이오제약 산업이 이 사장 주도로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게 재계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반면 삼성에버랜드의 개인 최대 주주가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25.1%)이라는 점에서 섣부르게 주도권을 점치기엔 아직 이르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