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대형 증권사인 대우증권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극비리에 내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질문 내용은 국내 증권시장에서 2004년도에 가장 영향력을 행사했던 외국인 투자자는 누구인가하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서 상위를 차지한 곳은 소버린, 헤르메스, 템플턴 등 3개 외국계 투자회사였다.
어느새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투자회사들이 국내 증시를 좌지우지하는 존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올해는 재계 서열 3위의 SK그룹의 경영권이 외국계 펀드에게 넘어갈 뻔할 정도였으니, 그 파워를 익히 알 수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투자펀드는 뉴질랜드에 본거지를 둔 소버린자산운용(크레스트 시큐리티), 헤르메스펀드, 템플턴자산운용 등 세 곳.
이들은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국내 증시에서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지만, 투자하는 방식이 확연히 다르기도 하다.
이들이 2004년 한 해 동안 국내 증시에서 벌어들인 돈은 얼마나 될까.
올 들어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곳은 소버린자산운용펀드다. 소버린은 영국계 자산운용펀드로 올해 SK그룹과 경영권 분쟁을 벌여 여러모로 관심의 대상이 됐던 곳이다.
하지만 소버린이 굳이 SK와의 경영권 분쟁으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더라도, 그들이 벌어들인 수익만으로도 관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소버린펀드의 특징은 한 회사에 거대자금을 집중 투자한다는 것. 처음부터 투자 대상을 정해놓고 자금을 ‘올인’하는 것이 특징이다.
소버린은 지난 2002년 3월 1천6백억원을 SK(주)에 투자했는데, 현재 주식평가액이 1조5천억원이다. 소버린이 아직 ‘엑시트(EXIT: 외국계 펀드들이 주식에 투자했다가 팔고 나갈 때 사용하는 용어)’ 하지 않은 관계로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지금 상황대로라면 원금의 8배 이상은 벌어들이게 된다.
소버린은 지난 2002년 3월 1백96만8천 주(8.64%)를 사들였다. 당시 소버린이 매입한 평균주가는 8천3백원대. 이후 소버린은 4월에 3백30만2천1백10주를 더 사들여 SK(주) 주식 총 14.99%(1백90만2만8천 주)를 확보했다. 평균 취득단가는 1만2천원 정도. 이후 소버린과 SK의 경영권 분쟁이 공식적으로 시작되면서, 이들이 보유한 SK(주)의 주가는 연일 상승세를 이어갔다. 불과 1년 반 만인 지난 12월3일 SK(주)의 주가는 7만원을 뚫었을 정도.
현재 SK(주)의 주가는 이보다 낮은 6만원대를 기록하고 있으나, 소버린이 순수하게 증시를 통해 번 돈이 1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최근 증권가에서 소버린보다 더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곳은 또 다른 영국계 펀드인 헤르메스. 헤르메스의 가장 큰 특징은 비교적 안정적인 국내 대기업 4~5군데에 대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투자한다는 것과 단기투자를 선호한다는 점. 이들은 다른 외국계 펀드처럼 2~3년 시간을 두고 장기 투자를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두 달 안에 주식을 사고팔아 수익을 남기기도 한다.
헤르메스가 최근 투자한 회사는 SK(주)와 현대산업개발, 현대해상보험, 삼성물산, LG산전, 한솔제지 등 대기업들이다. 헤르메스는 이들 회사에 투자하면서 ‘속전속결형’ 투자패턴을 여실히 보여줬다. 삼성물산에 투자한 경우가 대표적.
헤르메스는 2004년 3월 삼성물산 주식 4백만5천 주를 보유한 상황에서 추가 매입을 시작했다. 3월4일 15만 주를 사는 등 3월 초에 삼성물산 대주주(5% 7백77만2천 주 보유)가 됐다. 평균 매입단가가 1만2천원대니 대략 1천억을 투자한 것.
이후 증권가에서는 헤르메스가 삼성물산을 적대적 M&A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급속도로 퍼져가면서 주가가 폭등하기 시작했다. 결국 헤르메스는 지난 12월7일, 단 하루 만에 보유 주식 7백70만 주를 모두 팔아버렸다. 단가는 평균 1만4천6백4원. 1천억원을 투자, 9개월 만에 2백50억원의 이익을 남겼다. 국내 증시가 침체되는 상황 속에서도 25%의 투자수익률을 기록했다.
헤르메스는 올 초에도 현대해상보험 주식을 통해서도 거액의 수익을 거뒀다. 헤르메스는 지난 1월 주당 3만4천원대에 이 회사의 주식을 사들였고, 1월 말 7.38%(66만 주)를 보유하게 됐다. 이후 현대해상의 주가가 오르면서 헤르메스는 두 달 만에 투자를 회수했다. 지난 3월17일 8천8백70주, 18일 2만1천6백80주를 판 것. 매도 금액은 4만2천원대였다. 55억원을 투자해 9억원을 벌어들인 것. 두 달 만에 기록한 수익률은 13%대였다. 헤르메스는 LG산전 주식으로도 짭짤한 이득을 남겼다. 지난해 6월 이 회사 주식 7.04%(2백11만2천 주)를 평균 5천8백원에 사들였다 석 달 뒤 3%가량을 주당 8천1백원에 팔아 수익률 50%를 기록했다.
다음은 미국계이면서도 주로 홍콩과 싱가포르 등 아시아 금융본산지에서 활약중인 템플턴자산운용펀드. 템플턴펀드의 특징은 장기 투자를 선호한다는 것과 국내 재벌그룹의 주식뿐 아니라 중소기업주식에도 눈을 돌린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여태까지 템플턴이 주식에 투자한 회사는 SK(주), 현대산업개발, CJ, LG석유화학, 삼성정밀화학, 풍산, 영원무역 등이다. 올해 들어서는 웅진코웨이와 하이트맥주에도 새롭게 투자하기 시작했다.
템플턴은 지난해 SK(주)에 12억원을 투자해 40여억원을 벌어들였다. 템플턴은 지난 2002년 7월23일 SK주식 8만4천90주를 평균 1만2천5백50원에 사들였다. 올 초 템플턴은 SK(주) 지분 5.04%(6백39만4천3백90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SK(주)의 주가가 오르자 두 달 만인 지난 3월11일 3만1천6백80주, 12일 12만8천2백80주를 평균 4만원대에 팔았다. 지난 4월2일에는 3천8백주, 27일 29만4천50주 등 총 1백31만4천6백20주를 4만원대에 팔아 3.5배의 이득을 챙겼다.
템플턴은 평균 투자기간이 3~5년으로 장기투자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주식에 투자해 돈을 회수한 경우는 SK(주)가 처음이다.
하지만 이들이 투자한 회사의 주가가 꾸준히 오르고 있어 향후 템플턴이 국내 증시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