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해 5월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 화원읍에서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지원 유세를 했다. 연합뉴스 |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은 영광스럽다. 그러나 (박 전 대표로선) 이 타이틀 때문에 선거전에서 말 한마디 하기도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한 최측근 인사가 ‘선거의 여왕’이라는 박 전 대표의 닉네임에 대해 최근 밝힌 견해다. 박 전 대표가 이러한 타이틀을 얻게 된 것은 지난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피습당한 뒤 “대전은요?”라는 한마디로 대전시장 선거 판세를 역전시키면서부터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6·2 지방선거 당시엔 선거운동기간 2주 동안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에 머무르면서 한나라당 후보의 선거지원 활동을 했지만, 무소속 김문오 후보가 당선되면서 타격을 받은 바 있기도 하다. 4·27 재보선이 가까워지며 당내에서 박 전 대표를 향해 선거 지원 요청이 잇따르고 있는 시점이어서, 이 인사의 얘기가 새삼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정가에서는 박 전 대표가 평창동계올림픽유치특위 고문직을 수락한 것에 대해서도 심상치 않게 여기는 기류가 적지 않다. 아직까지도 ‘대표’ 직함으로 불릴 만큼 일개 정치인과는 다른 대우를 받는 그이지만, 박 전 대표는 유난히 직함을 맡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정치인 중 하나다. 공식 직함을 맡은 것도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선거대책위 상임고문을 맡은 이후 근 4년 만의 일. 여기엔 박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대해 사사건건 ‘대권행보’로 인식하는 세간의 관심에 대한 경계 심리도 있지만, 박 전 대표가 워낙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이유도 크다. 한 친박계 관계자는 “직함을 맡는 것만으로도 너무 큰 관심들을 갖지 않느냐. 솔직히 친이계와의 긴장모드를 언론에서 먼저 형성할 때도 있다. 박 전 대표로서는 사소한 행보로 보일 만한 일정도 신중하게 결정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 측은 공식적인 일정 수행마저 ‘대권행보’로 비춰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크다고 한다. 지난 대선을 겪어본 박 전 대표 측에서 가장 경계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조기 대세론’이다. 대세론이 한순간 꺾일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했기에, 친박계 내에선 현재 박 전 대표의 독보적 지지율을 크게 반기진 않는다. 박 전 대표의 측근인 이정현 의원 역시 얼마 전 블로그를 통해 “지지율 1위의 유력주자라는 타이틀로 박 전 대표에게 정치 현안에 대한 입장을 요구하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이렇듯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박 전 대표가 평창동계올림픽유치특위 고문을 맡은 것은 그래서 이례적이다. 또한 15일 강원 춘천에서 열리는 특위 발대식에 직접 참석할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번 ‘강원행’을 4·27 재보선과 연결 짓는 시선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더구나 이날 발대식에는 재보선에서 강원지사 선거에 출마하는 한나라당 예비후보들도 참석하게 된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 측은 “특위 고문으로서 발족식에 참석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날 일정 중에 재보선 출마 후보들도 참석하도록 되어 있을 뿐”이라며 ‘재보선 지원’ 성격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그동안 박 전 대표가 선거 때마다 끼친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박 전 대표의 이번 방문을 단순하게만 바라볼 수 없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박 전 대표의 성향상 이번 재보선에 직접적인 지원 유세를 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측은 재보선 ‘개입 수위’를 두고 고민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한 친박 인사는 “선거 지원 방식을 두고 여러 참모들이 다양한 의견을 냈지만 대체적으로 직접 나서는 건 위험 부담이 크다는 데에 동조하는 분위기”라며 “또 박 전 대표는 평소 소신대로 선거는 당 지도부 중심으로 치르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인사는 “그러나 평창동계올림픽이 강원 지역 민심을 ‘움직일’ 수 있는 최대 현안인 만큼 고문직을 맡는 ‘간접적’ 방식으로 당을 돕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덧붙였다.
당에서는 박 전 대표가 특위 고문직을 수락한 것만으로도 반기는 분위기다. 강원지사 선거에 대한 한나라당 내의 전망은 매우 어두운 상황. 한나라당 사정에 밝은 한 정치권 인사는 “한나라당 내에서도 엄기영 전 사장이 이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내부 분석을 하고 있다”며 급박한 선거전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또 비공개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엄기영 전 사장과 최문순 전 의원 간의 대결이 ‘박빙’으로 나타나기도 했다는 것.
강원지사 선거를 두고 해볼 만한 싸움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던 민주당은 박 전 대표의 최근 행보에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교묘하게 대권주자로서 이득만 챙기려고 한다. 여러 명이 함께 이름을 올린 평창동계올림픽유치특위 고문직을 맡음으로서 선거에 이길 경우엔 이득을 챙길 수 있고, 만약 지더라도 혼자 뒷감당은 하지 않겠다는 계산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번 재보선에서 강원지사 선거가 여야의 최대 승부처로 떠오른 만큼,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사활을 건 경쟁을 펼칠 수밖에 없다. 강원지사 선거판이 커지며 박 전 대표 측에서는 이번 선거를 하반기부터 본격화될 대권 행보의 ‘첫 발판’으로 삼자는 의견을 내놓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한 친박 인사는 “15일 춘천 방문 이후 보다 힘을 실을 수 있는 (간접지원) 방안에 대한 고민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인사는 “중요한 것은 이번 재보선이 아닌 내년 총선”이라고 선을 그었다. 박 전 대표가 ‘선거의 여왕’으로 ‘직접’ 나선다면 그 시점은 총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한 정치권 인사는 “박 전 대표로서는 고문직을 맡는 것 정도로 선거 지원의 ‘모양새’를 갖추며 선거 후폭풍에 대한 여파를 줄일 수 있는 최대한 ‘영리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연 박 전 대표가 ‘선거의 여왕’이라는 명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게 될지 이번 재보선은 중요한 하나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