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호가 4남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왼쪽)의 독립경영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오너일가의 계열분리 과정서 박철완 부장(오른쪽)의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지난달 9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여수산업단지에서 열린 합성고무 2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기자간담회를 갖고 독자경영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날 박 회장은 “선친의 창업 정신이 담겨 있는 금호 사명과 브랜드는 계속 유지하겠다”면서도 “채권단과의 협약에 따라 금호아시아나그룹과는 철저하게 분리 경영을 하겠다”고 밝혔다.
금호 오너일가는 지난해 2월 채권단과의 합의에 따라 박삼구 회장 부자가 금호타이어를, 박찬구 회장 부자와 금호가 2남 고 박정구 회장 아들 박철완 부장이 공동으로 금호석유화학을 맡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그룹 전략경영본부 기능을 대체할 회장부속실을 신설하고 독자적 공채를 통해 신입사원을 선발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빨간색 날개 로고 사용을 중단한 금호석유화학은 기업이미지(CI) 교체작업도 진행 중이다.
박찬구 회장은 박삼구 회장 측과의 지분관계 해소 계획도 밝힌 상태다. 현재 금호석유화학은 금호타이어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달 9일 여수 공장 준공식에서 박찬구 회장은 “석유화학부문의 경영정상화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금호석유화학이 보유한 금호타이어 지분을 보호예수기간(6개월)이 끝나면 전량 팔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분관계 정리 움직임은 박삼구 회장 쪽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 지분 169만 4370주(지분율 6.66%)를 보유해온 박삼구 회장 아들 박세창 금호타이어 전무는 지난 1월 28일 25만 주를 매각한 데 이어 지난 2월 16일부터 2월 22일까지 금호석유화학 주식 36만 1572주를 매도했다. 이로써 박 전무의 금호석유화학 지분율은 4.26%로 줄어든 상태다.
이에 대해 금호 측은 “대출금 상환을 위한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박삼구 회장의 서울 한남동 자택을 담보로 한 박세창 전무 채무 내역에 최근 변화가 있었다. 이 집 등기부상엔 지난 2009년 2월 박세창 전무가 채무자로, 외환은행이 근저당권자로 설정된 채권최고액 32억 5000만 원의 근저당권 설정 내역이 나와 있다. 그런데 이 계약은 박 전무가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매각한 직후인 지난 2월 24일자로 해지됐다. 채무자인 박세창 전무가 근저당권자인 외환은행에 빚을 갚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재계에선 박세창 전무의 금호석유화학 지분 매각을 단순한 채무 상환 의미를 넘어 ‘지분 정리를 통한 갈라서기 수순’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이는 지난달 9일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이 보유한 금호타이어 지분을 매각할 것”이라 발언한 것과 그 궤를 같이하는 움직임으로도 풀이된다.
박찬구 회장이 최근 금호석유화학 지분 늘리기에 나선 것도 눈길을 끈다. 박 회장은 지난달 28일 금호석유화학 주식 500주에 이어 3월 2일 2882주를 매입했다. 박 회장의 이번 지분 거래량은 지분율로 치면 0.01%에 지나지 않지만 금호석유화학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겠다는 의지만큼은 뚜렷해 보인다.
현재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 지분율은 7.62%(보통주 기준)로 3대주주다. 최대주주는 박철완 부장으로 지분율은 11.96%에 이른다. 2대주주는 박 회장 아들 박준경 부장으로 지분율은 8.59%다. 박 회장 부자 지분율을 합치면 16.21%로 박철완 부장에 4.25%포인트 앞선다.
금호아시아나가 ‘형제경영’을 표방하던 당시 박철완 부장의 주요 계열사 지분율은 박삼구-박세창 부자나 박찬구-박준경 부자의 몫과 동일했다. 박철완 부장의 선친 고 박정구 회장 몫을 박철완 부장이 물려받는 식으로 지분 분배를 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현재 지분 구조에 대해 박철완 부장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박찬구 회장이 자신과 한 배를 탄 박철완 부장의 지분율을 박 회장과 아들 박준경 부장의 지분 합계와 동일하게 늘려주려 할지, 아니면 자신의 지분율을 더 늘려 박철완 부장과의 지분율 격차를 더 벌리려 할지 또한 관심사다. 후계구도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박찬구 회장이 아들 박준경 부장의 지분율을 높여주려는 과정에서 박철완 부장과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지에도 시선이 쏠린다.
금호석유화학 안팎에선 박찬구 회장 부자와 박철완 부장의 협력관계에 대한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엔 ‘박철완 부장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박찬구 회장이 이서형 대표이사 사장과 상의하지 않고 독단적인 인사를 한다는 내용의 항의 서한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된 일도 있었다. 이 일 이후로 박찬구 회장 부자와 박철완 부장 사이가 전보다 소원해졌다는 이야기가 재계에 나돌기도 했다.
박삼구-박세창 부자의 금호석유화학 지분율도 9.56%로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박철완 부장의 향후 스탠스가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박철완 부장이 만약 채권단과의 합의를 뒤로하고 박찬구 회장 대신 박삼구 회장과 손을 잡는다면 금호석유화학 지배구조에 일대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는 셈이다.
박찬구 회장은 형인 박삼구 회장과 등을 돌리고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했지만 박철완 부장까지 숙부인 박삼구 회장과 등을 돌렸다고 볼 수만은 없는 상태다. 박삼구 회장 한남동 자택 등기부엔 박철완 부장이 담보 대출을 한 기록이 남아 있다.
지난 2009년 2월 박철완 부장은 박삼구 회장 집을 담보로 채권최고액 21억 4500만 원의 근저당권 설정을 외환은행과 맺었다. 박철완 부장이 박삼구 회장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방증이다.
박철완 부장은 금호석유화학에서 박찬구 회장과 한 배를 탄 몸이지만 언제든 박삼구 회장의 구애를 받을 수 있는 상태다. 그러나 금호그룹 계열분리는 지난해 2월 채권단의 동의를 받은 사안이고,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올린 박찬구 회장이 지난달 25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사로 재선임됐기 때문에 당분간은 박찬구 회장 체제가 순항할 것으로 보인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
형님도 아우도 친MB 인사 콕!
최근 공시를 통해 박삼구 회장의 금호타이어와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이 나란히 친 정부 성향의 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한 것으로 드러나 눈길을 끌고 있다.
박삼구 회장의 금호타이어는 지난 3월 25일 주주총회를 통해 박명재 전 행정자치부 장관을 사외이사로 재선임할 예정이다. 박 전 장관은 현 정부 내 파워그룹으로 논란을 빚은 영포회(영일·포항 출신 공직자 모임)의 초대 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도 현 정부와 돈독한 관계의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을 지난 2월 25일 주총에서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 전 장관은 신한은행장 외환은행장 은행감독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17대 대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취임준비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냈다. 현재 대통령자문 국민원로회의 위원을 겸하고 있다.
금호 계열사들의 친 정부 성향 인사 영입 경쟁은 최근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이 산은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에 내정되면서 더욱 주목을 받는다.
이 대통령 최측근인 강만수 전 장관이 금호아시아나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수장에 오르면 금호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입김이 커질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