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업무 능력뿐만 아니라 상사, 동료, 부하 직원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처세술이 필요하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최근 한 취업포털이 직장인 2322명을 대상으로 ‘직장생활 처세술의 필요성’에 대해 조사했다. 응답자의 97.8%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거의 대부분의 직장인들, 특히 신입사원들이 입사 전 따로 공부를 할 정도로, 원만한 인간관계 유지를 위한 처세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얘기다. 유통회사에 근무하는 H 씨(여·29)도 지금은 퇴사한 입사 동기를 보면서 처세술이 뭔가를 알게 됐다고 말한다.
“그때는 둘 다 아무것도 모르는 스물다섯 풋내기 신입이었는데요, 그 친구는 저보다 한 달 먼저 인턴으로 들어왔다가 정식사원이 된 경우였죠. 그런데 실세였던 상무님의 사랑을 독차지했어요. 권력의 핵심인 데다 카리스마 있는 상사여서 접근하기도 무서운 분이었는데 그 동료는 매일 상무님 책상에 꽃을 가져다 놓았어요. 솔직히 동기들 중에서도 실력은 제일 별로였는데 그 상무님은 임원들을 대동하고 180명이 넘는 직원 중 그 친구 작품전에만 참석을 했다니까요. 동기들은 그 친구가 순수한 마음이 아니어서 별로 좋아하진 않았어요. 잘 보여야 이용할 수 있다고 늘 말했으니까요. 결국 그렇게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하면서 퇴사하더군요.”
토목업체에 근무하는 K 씨(31)도 동기를 보면서 혀를 내두르게 된단다. 신입시절부터 사서 고생을 하는 것 같았지만 돌이켜보면 상당한 테크닉의 소유자였다는 생각이다.
“일단 현장에 자주 나갔어요.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하고 술자리도 자주 갖고, 갈 때마다 먹을거리도 잔뜩 사가더라고요. 술자리에 갈 때는 술 깨는 음료도 꼭 챙기고요. 그때는 그저 피곤하게만 보였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현장 직원들과 원만한 관계가 되니까 공사 진행도 빠르고 협조도 잘 되면서 인정받기 시작했어요. 현장에서 불만이 있을 때도 친분이 있는 그 친구가 나서서 주도적으로 해결하니 승진도 빠른 편이었습니다.”
K 씨는 “동기였지만 여러 가지로 배울 점이 많았다”면서 “지금도 신입들이 들어오면 그 동기를 예로 들면서 직장 내 처세술에 관해 조언하고 있다”고 전했다.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C 씨(여·32)는 회사에 ‘무결점’ 동료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험담의 대상이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제 경우 직장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게 ‘뒷담화’였어요. 그런데 늘 뒷담화 자리에서도 좋은 평을 듣는 대리가 있습니다. 한번은 자세히 관찰해보니 항상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그래요? 그랬구나’ 하면서 맞장구는 치는데 직접 남을 흉보진 않더군요. 진지하게 들어주긴 하지만 본인의 속 얘기를 하진 않아요. 싫다는 표현을 쓰거나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으니 적이 없더라고요. 사실 회사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괜찮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 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처세술이란 게 나서는 것도 있지만 그렇게 나서지 않는 방법도 있더라고요.”
마케팅 회사에 근무하는 Y 씨(33)도 사무실에 ‘칭찬의 달인’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칭찬을 많이 해주니 대화를 할 때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
“저희 부서 과장은 상대방의 장점을 짚어내는 데 도가 텄습니다. 여직원들 머리 스타일 변화한 것까지 눈치 채고 꼭 화사해졌다고 한마디라도 해요. 도저히 장점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직원인데도 예상치 못한 칭찬을 합니다. 예를 들면 치아가 참 고르다거나 손이 통통해서 잘 살겠다고 하는 거죠. 아부가 아니라 상대방이 가진 사소한 장점도 말로 표현을 해주니까 다들 그 과장을 좋아해요. 업무상으로도 지적할 건 똑 부러지게 말하면서 스스로도 몰랐던 부분을 칭찬해 주니까 좋죠. 제 경우 기획력이 좋다는 소리를 들은 뒤에는 인정받기 위해서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직장생활 처세술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술자리다. 사무실 내 평판이 좋았더라도 술자리에서 밉보이면 생활이 힘들어진다. 가구업체에 근무하는 S 씨(34)는 술자리의 중요성을 동기를 통해 절실히 깨달았다.
“좀 적당히 하면 좋은데 그 동기는 뭐든지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었습니다. 회식을 해도 다른 동기들은 적당히 2, 3차에서 빠지는데 4차까지 따라가고 대리기사까지 불러서 상사들 다 모시고 그랬죠. 다른 동기들은 일이나 열심히 하지 오버한다고 그랬어요. 회사 내 술자리는 물론이고 거래처 술자리에도 빠지지 않고 다 참석하는데 그 노력이 빛을 발한 건 그 동기 결혼식 때였습니다. 하객이 바글바글 하더군요. 거래처에서 1000만 원이 넘는 TV까지 선물로 받았어요. 3년차 때 결국 좋은 회사로 스카우트돼 가더군요.”
IT회사에서 일하는 N 씨(여·28)도 회사 부장을 통해 처세술을 알게 됐다. 대체로 ‘예스맨’(Yes Man)이어야 할 때가 많다는 걸 느꼈단다.
“그 부장은 실행하기 어려운 지시가 내려와도 무조건 예스예요. 부하직원이건 윗사람이건 대화할 때 아무리 기분이 상해도 표정에 감정을 싣지 않아요. 분석력 좋고 일도 잘해서 다른 직원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요, 한번은 워크숍을 갔는데 사장이 술에 취해서 부장 모자를 확 벗겼어요. 평소 가발을 쓰는데 그날은 모자만 쓰고 있었거든요. 처음엔 당황하는 것 같았지만 그 모습대로 허허 웃으면서 술잔을 돌리더라고요. 저는 솔직히 그날 가발 벗은 모습을 처음 봐서 되게 놀랐거든요. 화 한 번 안 내는 것도 처세술이겠구나 싶어 조금은 씁쓸했어요.”
직장인들의 처세술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 직장인들이 현재 활용하고 있는 처세술 중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재미없는 이야기도 참고 들어준다’였다. 뒤를 잇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내색하지 않는다’다. 앞서 나온 사례들과 이 결과를 관통하는 한 단어가 있다. 바로 ‘인내’다.
‘오늘도 내가 참는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