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삼성 회장 | ||
금융지주회사법 등 현행 법령에 따르면 한 회사의 총자산 중 금융 자회사 주식이 50%를 넘으면 금융지주회사로 분류하고 비금융사 지분을 갖고 있지 못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삼성그룹 오너인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삼성 계열사 지배구조의 핵심고리가 되고 있는 삼성에버랜드가 이 50%선을 수시로 넘나들고 있어 삼성가의 애를 태우며 삼성 구조본의 최대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 대한 상속 작업이 마무리단계에서 금융지주회사법이라는 ‘시한폭탄’을 만난 것.
만약 삼성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삼성은 금융그룹과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전자그룹으로 나눠져야만 하는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이와 관련, 삼성에버랜드는 지난 12월13일 에버랜드가 갖고 있던 삼성생명 주식 19.34% 중 6%를 5년간 제일은행에 신탁하는 계약을 맺었다. 삼성에버랜드가 ‘이재용→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물산→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이기 때문에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처분할 경우 삼성 지배구조를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에 삼성의 고민이 큰 것이다.
삼성그룹 구조본부장인 이학수 부회장은 “에버랜드를 지주회사로 만들 생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이재용 상무에 대한 상속작업을 거치면서 사실상 에버랜드가 지주회사로 등장했다.
이는 지난 12월 말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분 구조 매트릭스’에서도 확인됐다.
삼성 계열사들의 대주주로 겹치기 출연을 하고 있는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의 주요주주가 삼성에버랜드이고, 삼성에버랜드의 대주주가 이재용 상무라는 점과 삼성에버랜드가 중심고리가 된 5개의 순환출자고리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이라는 게 ‘공인’된 것.
때문에 일각에선 삼성이 금융지주회사법을 피하면서 이재용 상무에 대한 재산 승계 작업을 완성하려면 결국 비금융 계열사를 처분하든, 금융계열사를 처분하든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돌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도 삼성생명이 급변하는 금융시장 환경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부동산’ 같은 유동자산인 계열사 지분을 처분하는 게 유리하다는 지적이 진작부터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관련당국에서도 금융계열사가 갖고 있는 계열사 지분에 대한 의결권 축소를 추진하고 있는 등 ‘정치 경제적인 환경’도 금융과 제조업 양대축을 굴리려하는 삼성에게 불리하기만 하다.
삼성그룹이 삼성생명 계열과 비금융사인 삼성전자 계열 등 그룹의 양대축 중 하나만을 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상황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복잡한 문제의 시발점은 에버랜드가 갖고 있는 삼성생명 주식의 가치가 총자산의 반을 넘는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 문제에 대해 삼성 구조본에선 에버랜드가 갖고 있는 삼성생명 주식의 은행신탁으로 현안 해결을 뒤로 미루는 방법을 택했다.
삼성생명의 2004 회계연도 상반기(4~9월) 실적을 보면 순익이 9천34억원에 이르는 등 실적이 호조를 보이며 주식 평가액이 오르고 있어 연말 결산 시점에서 삼성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가 될 가능성이 커지기에 삼성에서 응급조치에 나선 것이다.
에버랜드는 지난 2003 회계연도에선 삼성생명의 지분평가액이 자산총액의 54%를 넘어서 지주회사로 자동 편입됐다가 올 상반기 결산에선 자산총액의 48%로 줄어 지주회사에서 제외되는 등 삼성생명의 실적에 따라 일희일비하고 있다.
삼성생명의 지난 상반기 실적이 좋아지자 2004 회계연도 연말 결산에서 에버랜드가 삼성생명 때문에 다시 지주회사가 될 게 확실해지자 은행신탁이란 ‘묘수’를 찾아낸 것이다.
삼성에버랜드의 총자산은 지난 3분기 실적을 기준으로 3조1천억원 정도다.
하지만 삼성 구조본의 이 묘수도 감독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이 나오고 있지 않아 유효한 카드인지는 확실하지 않은 상태다. 공정거래위에선 삼성에서 사용한 ‘지주회사로 편입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주식 신탁 사례는 처음이라 법률적인 검토를 하고 있다’는 입장인 것.
삼성이 에버랜드의 지주회사화를 막을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에버랜드의 몸집을 불리는 것이다.
에버랜드는 지난 12월 말 2004년 한 해 매출액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에버랜드측의 예상 매출액은 1조1천억원, 예상 순익은 9백80억원 안팎이다. 또 에버랜드의 3분기까지 매출은 8천7백억원, 순익이 1천2백억원이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지난 2000년과 비교해 에버랜드의 자본금은 그대로 이지만 고정부채가 5천9백억원에서 9천5백억원대로 두 배가량 늘고 매출도 7천5백억원대에서 1조1천억원대 안팎으로 느는 등 외형이 커졌다는 점이다. 문제는 삼성생명 주식가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계열사 지분 등 투자자산의 규모가 세 배로 커져서 다른 부분의 성장에도 자산 중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커져 에버랜드를 옥죄고 있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에버랜드의 자산가치가 투자자산 이외의 부분에서 커지면 문제는 좀더 수월하게 풀릴 수 있다. 그래서인지 에버랜드의 박노빈 사장은 오는 2010년까지 에버랜드의 매출 3조원대를 올리겠다는 공격적인 목표를 발표해 주목받고 있다.
에버랜드는 일반에겐 놀이공원으로 더 익숙하지만 영업내역을 보면 놀이공원의 수익인 레저사업 부문(25.7%)보다는 단체급식 사업인 유통부문(37.9%)과 삼성 계열사 부동산 관리 사업인 자산관리 부문(28.0%)의 매출액 의존도가 더 크다.
놀이공원 기능으로 매표 수익을 올려 몸집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은 에버랜드도 이미 알고 사업다각화에 나선 것이다. 안양베네스트나 가평베네스트 등 이미 국내 최대 골프장 사업자인 에버랜드가 보유 부동산을 이용해 골프나 레저사업에 획기적인 규모의 투자를 해 부동산 평가액을 높이고 매출 규모를 늘리지 않는 한 삼성으로선 근본적인 지배구조 개편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주식 신탁’이라는 응급조치를 취한 뒤 재계 최고의 아이디어 뱅크라는 삼성에서 어떤 카드를 들고 나올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