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시장이 비수기인데도 전세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문제는 전세가 기록 행진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달 들어서도 전세가 상승세가 계속되고 있어서다. 부동산정보업체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수도권 전세가는 이달 들어 상승폭이 더 커지고 있다. 이달 첫째 주(6월 3~9일) 0.05%이던 것이 지난주(6 월 10~16일)엔 0.09% 뛰었다. 닥터아파트 이영진 이사는 “하반기 전세 매물은 더 줄어드는 반면, 전세 수요는 늘어날 전망이어서 한동안 전세가 상승세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전세가가 이렇게 오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찾는 사람은 많은데 물건이 부족해서다. 무엇보다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지금 집을 사면 집값이 떨어져 손해를 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주택산업연구원은 올 하반기 수도권 집값이 1% 정도 떨어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상황이 이러니 전세 거주자는 매매 수요로 전환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여기에 신혼부부 등 새로운 전세 수요가 가세하니 전세 수요는 계속 늘어나는 것이다. 강남구 개포동 W 공인 관계자는 “집을 사려던 사람도 당분간 전세에 머물면서 시장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반면 공급은 부족하다. 전세 물량을 가장 많이 공급하는 건 새 아파트 입주단지다. 그런데 올 하반기 입주물량이 급감한다. 매년 6개월 평균 입주물량은 15만 가구 수준이다. 하지만 올 하반기는 평균의 3분의 1인 5만 가구에 머문다. 기존 전세 거주자는 대부분 그대로인 상황에서 새 집 공급이 줄어드니 전세 물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주택산업연구원 김덕례 연구위원은 “추가 금리인상, 보금자리지구 5차 지정 등으로 매매 불안심리가 커져 전세수요가 매매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다”며 “하반기에도 이런 추세가 심화되면서 전국 아파트 전세가는 5% 정도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 강남권(강남 서초 송파)과 양천구, 경기도 광명시 학군 선호지역은 벌써 신호가 강하게 나타난다. 강남구의 경우 청실아파트 재건축을 위한 이주수요의 움직임의 영향이 크다. 7월부터 이주에 들어가는 청실아파트는 규모만 1400가구다. 이들은 자녀 교육 때문에 대부분 이 지역을 떠나지 못한다. 인근 선경, 우성아파트는 물론 은마, 미도아파트 등에 전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쉽게 찾아지진 않는다. 대치동 T 공인 관계자는 “전세 물건이 없으니 한 달 사이 5000만 원 이상 전세가를 올린 경우가 많다”며 “내달 이주가 본격화하면 전세가는 더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천구의 경우도 여름방학 이사철 수요로 전세가가 크게 올랐다. 지난해 말과 올 초와 같은 급등세를 우려해 미리 전셋집을 구하는 학부모가 많고, 외국 지방 등에서 찾는 문의도 많은 편이다. 목동 대원칸타빌2차 138㎡형의 경우는 일주일 새 3000만 원씩 오르기도 했다. 경기도에서는 혁신교육지구로 지정된 광명시에 진학 수요가 몰리면서 전세가가 폭등하고 있다.
전세가가 오르면 으레 매매가 상승 전망이 뒤를 잇는다. 전세비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높아지면 전세를 끼고 적은 돈으로 집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5월 전국 아파트 평균 전세비율은 59%로 60%에 근접했다. 이는 지난 6년 6개월 이내 최고기록이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아파트의 전세비율도 49.7%를 기록해 2006년 8월 이후 가장 높았다.
유앤알컨설팅 박상언 사장은 “부동산업계에서는 보통 전세비율이 60% 이상이면 매매가격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10년 전 비슷한 경험도 했다. 2000년 2월부터 2002년 9월 사이에 이런 현상이 뚜렷이 나타났다. 당시 수도권 전세비율은 계속 60% 이상을 유지했고, 집값은 39%나 올랐다.
그런데 전세비율이 올라간다고 반드시 집값이 뛰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지난달 광주 지역 아파트의 평균 전세비율은 75%를 기록했다. 이는 국민은행이 조사를 시작한 199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광주는 2001년 2월 이후 변함없이 70% 이상 전세비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집값은 별로 안 올랐다. 광주 집값은 전세비율이 70%를 처음 넘은 2001년 2월부터 현재까지 10년 4개월간 28.4% 오르는 데 그쳤다. 이 기간 수도권(102%)은 물론 전국 평균 집값 상승률(75.1%)에 비하면 한참 낮은 수준이다. 전세비율이 높다는 게 바로 집값 상승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주민들이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집을 사려고 하지 않아서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나비에셋 곽창석 사장은 “집값이 오르지 않으니 집을 살 필요를 못 느끼고, 전세금이 올라도 매매가보다는 낮기 때문에 그냥 전세로 눌러앉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지역에서 집주인은 전세보다는 월세를 선호한다. 집값 상승에 따른 시세차익을 누릴 수 없고, 저금리여서 전세를 놓으면 수익이 거의 나지 않아서다. 광주는 임대차 분포에서 전세 비율이 27.6%로 전국에서 가장 낮다. 임대차 시장에서 70% 이상이 월세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 수도권 임대시장에서는 여전히 전세가 58.5%로 월세보다 많다. 수도권 임대시장에서 전세 비중이 높은 이유는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전세보증금을 활용해 집을 사고 기다리면 집값이 오를 것으로 생각하는 집주인이 여전히 많은 것이다. 리얼투데이 양지영 팀장은 “서울 및 수도권은 여전히 새로 주택을 구입하는 대기수요가 많아 경기 회복 신호가 나타나거나 규제완화 등 여건이 조성되면 언제든 집값이 뛸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수도권에서는 전세비율이 높아지면 매매로 돌아서는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저렴하게 집을 사서 시세상승을 기다리려는 수요다. 부동산부테크연구소 김부성 소장은 “서울 및 수도권은 전세비율이 올라가면 전세보증금을 보태서 집을 사려는 수요가 여전히 많다”며 “전세비율이 올라가는 것이 매매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박일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jumpcu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