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비자 물가가 5개월 연속 4%대의 고공행진을 기록하며 서민 경제에 시름을 안겨주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이명박 대통령이 양재동 하나로클럽 매장을 방문, 물가를 점검하는 모습. 청와대 사진기자단 |
물가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기획재정부의 한 간부는 최근 물가대책을 마련하면서 느끼고 있는 어려움을 이렇게 털어놨다. 정부는 얼마 전 치솟는 돼지고기 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군에 들어가는 돼지고기 일부를 쇠고기로 바꾸는 방안을 내놓았다. 얼핏 보기에는 군이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것 같지만 실제 반응은 차가웠다는 것이 재정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왜 그랬을까.
군에서 한우를 안 받겠다는 것을 재정부와 농림수산식품부 등이 사정해서 떠안기다시피 한 것이 실제 상황이었다. 군에서는 병사들 간에 쇠고기와 돼지고기에 대한 기호 차이가 있는 데다 나중에 한우를 다시 돼지고기를 바꿀 경우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재정부 간부는 “군 관계자들이 ‘한우를 공급하다가 결국 나중에 돼지고기로 돌아갈 것 아니냐. 그때는 병사들에게 뭐라고 설명할 것이냐. 병사뿐 아니라 그 부모들까지 설득할 방법은 가지고 있느냐’며 돼지고기의 한우 대체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면서 “군에서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반응하니 당혹스러웠다. 물가대책을 마련하면서 군과 군대에 자식을 고민하는 부모들의 반발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들어 우리나라 물가 상승률은 브레이크가 없이 고속질주하고 있다. 5개월 연속 4%대의 물가 상승률을 기록하면서 서민 가계에 엄청난 부담을 안기고 있다. 게다가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하고 있고, 중국 물가도 뛰고 있어 식품물가 상승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분위기에 서민들이 즐겨 찾는 식품들의 가격도 크게 뛰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돼지고기의 가격이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29.5%나 뛴 것을 비롯해 콩 59.3%, 달걀 26.1%, 고등어 28.4% 등 서민들의 애호품목 가격이 급등했다. 또 쌀이 10.2%나 오른 것을 비롯해 마늘과 고춧가루가 각각 57.6%, 25.1% 올랐다.
정부도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돼지고기 가격이 급등한 것은 지난 겨울에 불어 닥쳤던 구제역 파동의 영향이 컸다. 당시 우리나라 전체 돼지 사육두수의 30%에 달하는 330만 마리가 매몰됐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이 돼지고기 중 삼겹살을 유독 좋아하는 경향까지 겹치면서 돼지고기 전체 가격을 끌어올렸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정부가 내놓았던 정책은 돼지고기 무관세 수입이었다. 돼지고기 수입시 매겨지는 현재 관세는 25%다. 그런데 가격 안정을 위해 수입 돼지고기 11만 톤(t)에 대해서는 할당관세를 적용해 관세를 없앤 것이다. 할당관세란 수급안정을 위해 관세율을 40%포인트 범위 내에서 한시적으로 내려 운용하는 탄력관세제도. 이렇게 들여오기로 한 돼지고기는 삼겹살 6만t, 육가공원료육 5만t이었다.
이런 조치를 취했건만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냉동이 아닌 냉장 돼지고기를 선호하는 데다 대형마트에서 수입 돼지고기 판매에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돼지고기를 들여왔던 초기에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수입 돼지고기는 거의 없었다”면서 “사정을 알아보니까 대형마트에서 수입 쇠고기와 달리 수입 돼지고기를 팔면 격이 떨어진다고 판매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군에 들어가는 돼지고기 물량을 줄이기 위해 돼지고기 대신 한우를 공급한다는 방침이었다. 다행히 우여곡절 끝에 군에서 돼지고기 대신 한우를 공급하는 방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던 것이다.
돼지고기의 한우 대체는 줄다리기 끝에 통과됐지만 묵은 쌀 공급은 군의 강력한 반대로 시도 자체가 무산됐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쌀 수확량은 기상이변에 따른 흉년으로 2009년보다 무려 62만 1000t(12.6%)이나 감소했다. 이 때문에 쌀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정부는 급등하는 쌀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군에 2009년산 쌀을 공급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당장 군의 반발에 부닥쳤다. 묵은 쌀을 쓸 경우 밥맛이 떨어지는 데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군대에 아들을 보낸 부모들이 가만있겠느냐는 반박이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생각해보면 군의 반발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임오군란이 일어난 것도 월급으로 제대로 된 쌀을 주지 않아서 발생한 것 아니냐”면서 “가뜩이나 이 정부는 대통령을 비롯해 핵심인사들이 군대 미필자가 대부분인데 군에 묵은 쌀을 보냈다가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묵은 쌀은 밥맛이 다르기 때문에 떡으로 만들거나 쌀국수로 만들어 공급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군의 반발에 묵은 쌀을 군에 공급하는 계획을 백지화하고, 묵은 쌀은 청와대와 정부청사 식당에만 공급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또 시중에 2010년산의 반값 수준인 40㎏당 2만 6180원의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정부 내부에서 사회 저소득계층에게 묵은 쌀을 공급하는 문제를 검토했으나 자칫 안 하느니만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없던 일로 했다는 후문이다.
정부는 정유사를 압박해 리터당 100원씩 인하시켰던 가격 인하 문제를 놓고도 여론을 눈치를 보면서 해결책 마련에 끙끙 앓고 있다. 정부가 정유가격 태스크포스(TF)까지 마련하며 연구를 했지만 가격 인하 요인을 찾지 못하자 정유사를 압박해 100원씩 인하시켰는데 7월 6일이면 그 기간이 만료되는 탓이다. 정부는 그 사이에 국제 원유가격이 내리리라 기대하고 추진했지만 유가는 여전히 배럴당 100달러를 웃도는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진 것도 정부 물가 정책 추진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배추와 과일이다. 배추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이상기온으로 가격이 한때 평년보다 2∼3배 가까이 뛰면서 금배추로 불렸다. 정부는 가격 안정을 위해 올해 중국산 배추 2000t을 수입했지만 일반인들은 거의 찾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이 배추들은 대부분 김치공장으로 보내졌다. 재정부 관계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산이라고 하면 쳐다보지 않는다”면서 “물론 중국산 제품들에 하자가 있던 경우가 많았던 탓이기는 하지만 무턱대고 불신하는 경향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과일도 정부의 온갖 정책에도 가격이 잘 내려오지 않는 대표적인 품목으로 꼽힌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과나 배와 같은 알이 큰 대과(大果)를 좋아하지 알이 작은 소과(小果)나 중과(中果)는 별로 찾지 않는 탓에 대체재 가 적다. 이래저래 물가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정부 관리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