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 차병원 본관 건물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차병원은 지난 1960년 현 차경섭 이사장이 서울 중구 스카라극장에서 개원한 ‘차산부인과’가 모태다. 현재는 국내외에 10개의 병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설 연구기관과 학교도 보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 5개, 해외에 8개에 이르는 계열사도 거느리고 있는 중견그룹이기도 하다.
병원 창립자인 차 이사장은 90세가 넘는 고령으로 차병원은 이번 사건이 있기 전만 해도 후계구도가 어느 정도 굳어진 상황이었다. CHA의과학대 대외부총장인 누나 차광은 씨가 차홀딩스컴퍼니와 차인베스트먼트 등을 맡고, 동생 차광열 회장은 그룹 계열 코스닥 상장사인 차바이오앤과 성광의료재단, 성광학원 등 의료·교육 관계 회사를 맡아왔던 것.
차병원그룹은 비단 의료 관련 사업뿐만 아니라 차량용 블랙박스 제작이나 화장품 사업 등 다방면으로 영역을 확장해갔다. 해외에서는 차병원의 의료관광상품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벌어들인 차병원그룹의 지난해 전체 매출이 1조 8000억 원에 이른다. 국내 종합병원 랭킹 1위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누나와 동생이 투자 사업을 놓고 이견을 나타냈던 것. 아들 차 회장 측이 영입한 황영기 대표이사가 투자업에 의욕을 보이고, 딸 차광은 부총장 측도 투자업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충돌이 빚어졌다.
차 회장은 지난해 1월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을 직접 차병원그룹 부회장 및 그룹 산하 바이오기업인 차바이오앤디오스텍 대표이사 회장으로 영입한 바 있다. 황 대표는 차 회장과 1952년생 동갑내기로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차병원 측은 “황 전 회장이 국내외 산업계와 금융계에서 경영능력을 인정받았고 국제적인 경험까지 두루 갖췄다”며 “노화방지 사업 등 그룹이 추진하는 사업의 세계화 추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영입 배경을 설명했다.
황 대표는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당시 그의 동생인 황준기 전 여성부 차관의 분당 출마설이 흘러나오면서 갖가지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황 대표가 금융권에서 오래 몸담았던 경력을 바탕으로 그간 차병원그룹에서 투자업을 주도해왔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 차광열 회장 측에서 일간지 두 곳에 게재한 광고. |
이 광고를 통해 차병원그룹은 차 전 부총장 소유의 ‘차홀딩스컴퍼니, 차인베스트먼트’와 전혀 무관하고 어떠한 계약이나 권한을 위임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이 광고는 의료법인 성광의료재단·학교법인 성광학원 차경섭 이사장과 차바이오앤디오스텍 황영기 대표 이름으로 실렸다. 동생 측에서 누나가 경영권을 가진 회사들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알리며 선을 그은 것이다.
이에 차홀딩스컴퍼니 측은 광고 게재 6일 후인 지난 13일 황 대표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로 강남경찰서에 고소했다. 차홀딩스 측은 고소장을 통해 “차홀딩스컴퍼니와 성광의료재단 사이에 업무용역 위탁계약이 체결돼 있는 만큼 두 회사는 차병원그룹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투자업에 대한 양측의 주장은 완전히 엇갈렸다. 황 대표이사 측은 “우리는 차광은 씨 측과 투자 관련 계약을 맺은 적이 없다”면서 “코스닥 상장사인 차바이오앤을 둘러싸고 잘못된 소문이 나게 되면 선의의 투자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신문 광고를 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누나 차 전 부총장 측은 자신들이 투자업을 하기로 하자 황 대표가 구상하는 투자사업의 입지가 위태로워져 의도적으로 허위 광고를 낸 것이라고 고소장에서 주장했다.
법정 소송으로 비화될 뻔했던 사건은 송사가 언론에 보도된 후 차 전 부총장이 곧바로 소를 취하하면서 일단락됐다. 여기에 아버지 차 이사장이 직접 나서서 차 전 부총장을 보직해임하고 병원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극약 처방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차 이사장은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마자 곧바로 재단이사회를 개최했고 이 자리를 통해 “이번 사안은 재산 다툼이 아니라 ‘차인베스트먼트’가 이사회 의결이나 이사장 허락 없이 재단이나 학교법인(성광학원)과의 업무용역 위탁계약서를 위조한 데서 비롯된 범법행위가 핵심”이라고 결론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차 전 부총장 측이 소송을 취하한 것도 차 이사장이 나서 계약서 위조에 대해 형사고발을 검토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차 이사장은 재산 문제 역시 “재산관계는 이미 유언장 공증을 통해 정확하게 정리된 상태인 만큼 더 논의될 여지가 없다”고 못을 박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차병원그룹 측의 바람과는 달리 아들과 딸 간의 분쟁이 쉽게 사그라질 것으로 보는 업계 관계자는 많지 않다. 차병원그룹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차 전 부총장이 평소 사업 확장에 큰 관심을 보여 왔기 때문에 이번 조치에 적지 않은 불만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며 “아버지 차 이사장이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상황이 오면 (차 전 부총장이) 반격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차 전 부총장은 여전히 차바이오앤디오스텍 등에 적지 않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