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만 회장이 두산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야구장을 찾은 모습. 사진 제공=두산 그룹 |
“역대 최소 경기(227경기) 만에 300만 관중을 돌파할 만큼 올 시즌 야구 인기가 대단합니다. 때문에 야구장을 찾는 기업 오너들 수도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그중 출석률이 가장 높은 구단은 아무래도 두산이죠. 대부분의 구단주들이 포스트시즌에만 얼굴을 비추는 데 반해 두산은 구단주는 물론이고 그룹 내 회장님들이 잠실 경기 때마다 오실 정도니까요.”
두산가(家) 오너들의 야구 사랑을 못내 부러워하는 프로야구 한 구단 관계자의 이야기다. 두산그룹 회장들의 야구사랑은 맏형 박용곤 명예회장으로부터 비롯됐다. 박 명예회장은 그룹 회장에 오른 다음 해인 1982년, OB 베어스의 창단을 직접 주도했다. 삼성, 현대, 금호 등 굴지의 기업들 중에서 구단 창립 제안을 가장 먼저 받은 건 OB였다. 평소 야구에 관심이 많았던 박 명예회장은 그 자리에서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고, 직접 야구단 창단을 지휘해나갔다.
특히 OB 베어스 초대 감독 선임에 심혈을 기울였다. 박 명예회장은 당시 MBC 청룡 감독 물망에 오르던 재일교포 출신 김영덕 감독을 회장실로 불렀다. “우리 한번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는 그의 제안은 MBC 청룡 쪽에 기울어져 있던 김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다. 박 명예회장의 눈은 정확했다. 프로야구 원년 OB베어스 사령탑에 오른 김 감독은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거머쥐며 구단주의 기대에 부응했다. 또한 그는 외환위기로 촉발된 그룹 구조조정 시기에 프로야구단의 매각을 일선에서 막는 야구애를 보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박 명예회장은 팔순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잠실 홈경기 때 빠짐없이 야구장에 나와 두산 선수들을 응원한다. 두산 구단 관계자는 “정규 시즌 130여 경기 중 평균 60경기 이상을 관람하신다. 초대 구단주라고 해도 야구를 어지간히 좋아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출석률이다”면서 “30년 가까이 야구를 지켜봐온 만큼 경기 규칙은 물론 선수들의 장단점까지도 꿰뚫고 계시다. 전문가 수준이다”라고 덧붙였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를 직접 챙기는 자상한 면모도 눈에 띈다. 박 명예회장은 매년 봄, 두산에 입단한 신인 선수들을 직접 만나 격려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는 선수들의 사기 진작 차원에서 박 명예회장이 시행한 두산의 오랜 전통이다. 지난 2008년엔 코칭스태프 전원에게 골프채 한 세트씩을 돌렸다. 2008 시즌 팀 타율 2할 7푼대 이상을 기록하면 골프채를 선물하겠단 약속을 지킨 것. 1군뿐 아니라 2군 지도자 전원에게 같은 선물을 선사했다고 한다.
박 명예회장의 부인 역시 남편 못지않은 야구 마니아라고 한다. 두산 베어스 김승영 단장은 “경기장은 물론 전지훈련 캠프 때도 두 분이 함께 오셔서 선수들을 격려하시곤 했다. 회장 부인께선 선수들 건강을 직접 챙기셨다. 운동선수에게 좋은 음식, 피해야 할 음식을 연구해 구단에 전달하는 등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야구 지식도 해박하셨다”고 전했다.
박용만 (주)두산 회장의 야구사랑 역시 형 못지않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야구팬들과 소통을 즐긴다. 트위터로 야구장 ‘번 개모임’을 주도해 두산 팬들과 함께 응원함은 물론, 경기 내용과 야구장에서 일어난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트위터에 실시간 중계한다. 트위터로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박 회장이다.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 2차전을 직접 관전한 그는 허리 부상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따낸 임태훈 투수를 “업어주고 싶다”며 트위터에 글을 올렸었다. 결국 지난해 12월, 박 회장은 임태훈 선수를 직접 업고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려 팬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트위터를 통해 구단 입장을 직접 밝히기도 한다. 지난 1월, 두산 베어스 고영민, 고창성 선수가 야구선수 연루 폭주 사건과 무관하단 사실을 재치 있는 랩으로 전달했다. 그는 “‘고’요한 아침에 ‘고’ 놈의 ‘고’씨가 ‘고’영민, ‘고’창성 둘이나 있어 ‘고’민했는데, ‘고’씨 선수는 우리 선수가 아니란다”라며 “회사로 ‘고고’씽. ㅋㅋㅋ 오늘은 ‘고’기 먹어야지”라고 밝혔다. 지난 10월, 김경문 감독의 롯데 이적설과 관련해 “구단에 물어보니 사실무근이랍니다”란 글을 올려 소문을 가라앉히기도 했다.
박 명예회장이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를 직접 챙겼다면 동생인 박 회장은 두산 팬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지난 4월, 한 야구팬이 아들이 팔을 다쳐 수술하게 됐다며 박 회장의 트위터에 글을 남긴 적이 있었다. 박 회장은 “아들이 좋아하는 야구선수가 누구냐”고 물은 뒤 “다치면 엄마 아빠가 힘들다. 얼른 나아라”고 직접 적은 메모와 함께 김현수 선수의 사인볼과 장난감을 선물해 감동을 자아냈다. 뿐만 아니다. 30년째 두산의 열성팬인 말기암 환자 이환 씨(41)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그는 가족, 주치의를 포함한 총 5명에게 VIP석을 제공하기도 했다.
두산 베어스 구단주인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의 ‘야구애’는 그의 아버지이자 초대 구단주인 박용곤 명예회장으로부터 이어졌다. 신인 선수들의 투구 폼까지 지적할 정도로 야구 지식이 해박한 박 회장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직접 야구장을 찾는 등 열의를 보이고 있다. 두산 베어스 관계자는 “승패를 떠나 선수들의 컨디션과 그날 경기 내용을 더 유심히 살펴보신다. 야구장을 방문해도 선수단에 부담을 줄까봐 경기만 보고 돌아가신다. 야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지만 이를 밖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으신다. 큰 줄기를 정한 뒤 세부 사항은 구단에 전적으로 일임하시는 편이다”고 전했다.
그러나 박 회장 역시 두산의 매 경기를 챙겨볼 정도로 구단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지난 2월 말, 두산이 스프링캠프를 차린 미야자키에 화산이 터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화산재가 흩날리는 상황이라 구단주가 직접 오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박 회장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미야자키로 날아왔고, 사흘 동안 머물며 선수단을 독려하고 격려금을 전달했다.
뿐만 아니다. 지난 5월부터 자진 사퇴하려는 김경문 감독의 마음을 돌리려 애쓴 것도 바로 박 회장이다. 김 감독이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격려하며 끝까지 그를 붙잡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기업 경영만큼 야구단에 관심을 쏟고 있는 박용곤, 박용만, 박정원 회장. 이 두산그룹 세 오너들 중 ‘야구애’ 정도가 가장 큰 이는 누굴까. 야구 관계자들은 “모두 야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만큼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야구지식이나 관심이 비슷하다고 볼 때 아무래도 초대 구단주로서 30년 동안 구단에 애정을 쏟은 박용곤 명예회장이 아닐까”라고 입을 모았다. 두산가(家) 회장들의 대를 잇는 야구사랑. 잠실곰의 부활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
아픔 딛고 평창 유치 ‘올인’
▲ 2004년 8월 아테네올림픽에서 박용성 IOC 위원이 남자유도 60㎏급 동메달을 획득한 최민호 선수에게 꽃다발을 수여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박 회장은 1982년 대한유도회 부회장을 시작으로 스포츠계에 입문했다. 그때만 해도 국제 유도계에서 한국의 이름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종주국 일본의 위상이 너무 높았기 때문. 박 회장은 1986년 대한유도회 회장 취임 직후, 스포츠 마케팅을 도입하는 등 유도계에 기업 경영 기법을 도입했다. 흰색뿐이던 유도복에 파란색 색상도 쓸 수 있도록 하고, 신속한 경기 진행을 위해 규칙을 대폭 수정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국이 유도 강국으로 이름을 떨치게 될 무렵, 박 회장은 1995년 국제유도연맹(IJF) 회장 경선에 나섰다. 유도 종주국인 일본유도연맹 가노 유키미쓰 회장과의 접전 끝에 국제유도연맹 수장에 오른 박 회장은 2002년 IOC 위원으로 선임되며 국내 체육계 거목으로 떠올랐다.
어려움도 있었다. 지난 2005년 ‘형제의 난’으로 불렸던 두산그룹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친형 박용오 전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였던 박 회장은 2006년 2월, 비자금 조성과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에 IOC는 사법 당국이 최종 판결을 내릴 때까지 모든 권리와 특전, 직무 자격을 임시 박탈하는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다. 그는 IOC의 최종 징계가 유보된 가운데 이듬해 2월, 대통령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돼 최종 면죄부를 얻어 IOC 위원 자격을 회복했다.
2009년 6월, 대한체육회 회장에 오른 그는 체육계 내부의 혁신을 주도했다. 체육회와 올림픽위원회의 정관을 통합하고 위원회·이사 수를 대폭 축소해 효율성을 꾀했다. 또한 업무성과를 중시해 직원들 간의 경쟁체제를 확립했다. 기존의 간부회의를 축소하는 대신, 이메일과 전화로 속도를 높였다.
올림픽 등 국제스포츠 행사 유치는 그 나라의 스포츠 외교력이 승패를 좌우한다.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국 결정을 앞두고 IOC 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여온 박 회장의 노력과 역량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정]